그리고 변화를 위한 다섯 가지 제안
국제 비영리 구호 단체인 케어 인터내셔널(CARE International)에서 "침묵을 깨다: 2022 보도되지 않은 10개의 인도주의 위기들(Breaking the Silence: The 10 most under-reported humanitarian crises of 2022)"라는 제목을 가진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주류 미디어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은 인도주의 위기 10개를 소개했다. 10개의 위기 모두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것이었는데, 아프리카 소식을 가끔씩이라도 챙겨보려고 하는 나도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보고서에 꼽힌 40년 만에 최악이라고 불린 앙골라의 가뭄, 말라위를 강타한 싸이클론 아나(Ana)와 콜레라, 오랜 경제 위기로 국민 70%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부룬디 대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강제이주와 인도주의 위기를 훨씬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케어 인터내셔널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분쟁이 전면전으로 번진 2022년 2월 이후 2백만여 개의 관련 기사가 온라인을 통해 쏟아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2021년 케어 인터내셔널의 같은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의 인도주의 위기는 2021년 가장 잘 다루어지지 않은 인도주의 위기 2위에 올라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에 이미 우크라이나는 장기화된 동부의 분쟁과 코로나19로 UN추산 여성과 아동 68%, 노인 38%가 인도주의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상태였다.
2021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 다루어지지 않은 인도주의 위기를 겪던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그다음 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도주의 위기의 중심이 되었을까?
영국의 언론/미디어학 교수인 마틴 스콧(Martin Scott), 케이트 라이트(Kate Wright), 멜 번스(Mel Bunce)는 공저인 "인도주의 저널리스트: 경계 지역에서 위기를 다루다"와 케어 인터내셔널의 보고서의 제언에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지정학적 중요성이고 둘째는 '뉴스 가치(news values)' 혹은 뉴스 편집부에서 이야기를 선택할 때 적용하는 묵시적인 기준이다. 이 기준에는 목표 독자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극적인 요소, 시의적절함, 친숙함, 명료함, 복잡하지 않음 등이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유럽에서, 백인들이 피란을 떠나게 된, 폭격 장면이 생중계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어떤 인도주의 위기들보다도 큰 뉴스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https://www.theeastafrican.co.ke/tea/rest-of-africa/angolans-flee-to-namibia-due-to-drought-3382244
온라인 언론 매체는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창이지만, 이처럼 그 창은 모든 방향으로 나있지 않다. 특히 아프리카 각국이 겪고 있는 오래된, 때론 회복보다 충격이 더 빠른 위기는 언론 보도와 연대, 국제사회의 약속 정하기까지 모든 방향에서 잊히곤 한다. 이는 미국의 환경인문학자 롭 닉슨(Rob Nixon)이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에서 그 제목부터 내세운 두 개념의 문제의식과도 닿아있다.
극적이지도 즉각적이지도 않지만 점점 더 불어나고 축적되며, 그 영향력이 넓은 시간 규모에 걸쳐 퍼져가는 폭력(p.18)인 느린 폭력의 주된 피해자는 자원이 결핍된 가난한 이들(p.20)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가난은 삶의 수많은 영역에 파고드는 느린 폭력의 비가시성으로 인해 더욱 악화한다. 눈에 보이는 폭력에 치우친 우리 시대 미디어의 경향성은 터보자본주의에 의해 일회용으로 치부되는 생태계의 취약성을 가중시키는가 하면, 그와 동시에 케빈 베일스(Kevin Bales)가 또 다른 책에서 "일회용 인간(disposable people)"이라 부른 이들의 취약성을 한층 악화한다(p.21). - 롭 닉슨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롭 닉슨은 두 개념을 통해 "이미지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센세이션 중심의 테크놀로지가 보기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재난을 어떻게 이미지며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느냐"는 큰 고민거리를 던진다. 어떤 화제든 주류 언론에서 일주일 이상을 버티기 힘들고,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처럼 몇 초 단위로 돌아가는 미디어 채널이 사람들의 눈과 시간과 뇌를 사로잡은 이때, 잘 보이지도 않고, 친숙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극적이라기보다는 서서히 사지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고 중요한 정치/사회적 의제로 삼을 수 있을까?
비영리 언론 단체인 <The New Humanitarian>은 캐어 인터내셔널의 보고서를 소개한 기사에서 아까 언급한 영국의 세 학자가 책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제안을 소개했다. 이 내용은 인도주의 저널리즘에 관한 내용이지만,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무시되곤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는 그 내용의 번역본이다.
1. 문화적으로 친숙한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동등하게 보도하기
전통적인 뉴스 보도는 그들의 독자/시청자에게 문화적으로 친숙한 인도주의 위기에 초점을 둠으로써 부적절하게 '인간 생명의 계급'을 강화하곤 한다. 인도주의 저널리스트는 '문화적 친숙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할 뿐 아니라 보도되지 않은 위기들을 다뤄 뉴스 보도의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어디서든 고통은 같고, 같은 관심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어요. 모든 관심이 여기 쏠리고, 저기는 무관심하고.. 이런 것들을 볼 때면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한 기자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
2. 차별받는 목소리를 증폭하기
인도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뉴스 보도는 UN이나 정부 대변인 같은 일부 기관의 정보에 크게 의존하곤 한다. 이는 위기의 영향을 받은 공동체 대신 국제적인 구호 노력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곤 하는데, 인도주의 저널리스트는 차별받는 목소리, 혹은 한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도주의 구조에서 참고되지 않는 부분들(unconsulted parts of the humanitarian architecture"인 현지 봉사자, 반군, 원조 노동자, 싱크탱크의 목소리를 증폭한다. 이를 통해 독자/시청자들은 현장의 현실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리고 인도주의 활동과 관련된 사람들을 더 주체적이고 존엄하게 다룰 수 있다.
3. 저널리스트가 옹호자가 되지 않고도 영향을 좇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인도주의 저널리스트는 종종 보도를 통해 '변화 만들기'를 시도하곤 한다. 위 만평에서 사람이 뉴스를 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그들이 '고통의 종식'이라는 인도주의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림에서 파도는 더 전통적인 저널리스트, '활동가'와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영향을 만드는 것에 대해선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어떤 저널리스트는 보도를 통해 '무언가 이루려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향과 옹호는 다른 것이다. 인도주의 저널리스트는 예컨대 '잊혀진' 위기를 다룸으로써, 그리고 정책 결정자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더 장기적이고 설명하는 기사를 씀으로써 인도주의에 대한 주류 언론 보도에 '가치를 더하는' 영향을 만들려 노력한다. 이를 통해 인도주의 저널리스트는 그들의 객관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도주의 위기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4. 인도주의 보도의 더 큰 비용과 위기를 인지하기
모든 기자들이 그렇겠지만 재정적 압박은 인도주의 기자들에겐 특히 더 크게 다가온다. 인도주의 위기는 더 많은 이동 시간과 비용, 안전과 물류에서의 어려움으로 보도에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주제 중 하나다. 또한 이런 보도를 직접 지원할 광고주, 독자/시청자, 혹은 기부자도 적다. 시의적절함이나 문화적 친숙함과 같은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가치에서 벗어난 인도주의 저널리스트는 '저널리스트'라는 이름이 주는 상태와 신뢰까지도 잃어 자칫하면 자금 조달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5. 인도주의 보도를 위한 재원을 늘리되 조심스럽게
인도주의 저널리즘의 불안정성과 가치에 비추어 볼 때 인도주의 저널리즘은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아 마땅하다. 다른 형태의 저널리즘과 같이 기보자에 의한 재정 지원은 투명하고 믿을 수 있고 편집자의 독립성을 완전히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나 사립 재단은 그들의 재정 지원 조건과 절차가 인도주의 저널리즘을 지원받아 마땅하게 만드는 특징들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너무 좁게 정의된 주제에 대한 지원은 저널리스트가 위기를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다룰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도주의 저널리스트를 향한 모든 지원은 인도주의 저널리스트,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공동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The New Humanitarian>의 원본 기사 보기: https://www.thenewhumanitarian.org/opinion/2023/01/16/Forgotten-crises-media-humanitarian-journalism?utm_source=The+New+Humanitarian&utm_campaign=aa95ab3381-EMAIL_CAMPAIGN_2023_01_20_Weekly&utm_medium=email&utm_term=0_d842d98289-aa95ab3381-75916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