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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Aug 08. 2018

냐루바카에서의 첫 밤

문해교실 선생님들과 함께 한 옛날이야기, 그리고 어려운 질문들

지난 4월쯤, 문해교사 합숙교육이 있었다. 2박 3일 중 마지막 밤엔 나도 같이 합숙했는데, 저녁엔 다 같이 둘러앉아 문화와  역사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뜬금없이 웬 문화와 역사인가 했는데, 성인 문해교육을 할 때, 읽고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문화와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이면 수업의 흥미가 더해진다고 했다. 


Photo: 우승훈


문해교사분들은 돌아가며 냐루바카 이름의 유래, 옛날 여성에게 가해지던 차별들, 옛날 왕이 있던 시절의 역사이야기 등을 들려주셨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지명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 선생님은 우리 사업지 이름인 냐루바카(Nyarubaka)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지금은 우리 사무실 뒷산인데, 거기 위치한 숲에 우루바카(Urubaka)라는 새가 많이 살아서 지역 이름도 그 새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였다. 궁금해서 우루바카가 어떤 새냐고 여쭤봤더니, 지금은 볼 수 없는 새고, 혹자는 우루바카가 동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나는 느낌상 우루바카는 새 이름이 맞는 것 같다. 그럼 우리 지역 이름은 '참새마을'같은거랑 비슷한 건데, 정말 예쁘다.


우리 지역 안에는 냐지함바(Nyagihamba)라는 지역이 있는데, 다른 선생님은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원래 냐지함바 지역은 냐지후니카(Nyagihunika)라 불렸다. 키냐르완다어로 구후니카(Guhunika)가 농산품을 저장함이라는 뜻이고, 이 지역에 카사바가 많이 나서 그렇게 불렸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수도인 냔자(Nyanza)로 가는 길에 동행하던 왕자가 그 지역에서 병에 걸려 사망한 이후로 지명이 냐지함바로 바뀌었다고 하셨다. 키냐르완다어로 구함바(Guhamba)는 사망한 사람을 묻는 것을 의미한다. 왕자가 묻힌 마을이라니, 멋있다고 하긴 그렇고, 아주 역사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할머니 댁에 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자는데, 그렇게 나란히 누워있으면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동네 이장이었던 할머니의 오빠 이야기, 우체국에서 일하시다가 경찰이 되신 할아버지 이야기, 큰아버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여러 작전(?)을 펼치셨던 할머니 이야기 등등 매번 비슷한 옛날이야기를 하셨는데, 나는 그 이야기 듣는 게 참 좋았다.


아무튼,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해달라고 하시길래, 어쩌면 좋지 하다가 일단 한국의 전통 음악, 아리랑을 불러드리고(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날이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열창했다) 간단히 한국 관련 Q&A 시간을 가지려 했는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 쏟아졌다.
 
내가 예상했던 질문은 한국사람의 인사예절이나 식사문화 그런 거였는데, 전혀 그런 거 없고 남북이 왜 갈라져 있는지, 발전된 나라에서 온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르완다의 발전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까지  어떤 나라들을 방문해 봤고 그 나라들과 르완다를 비교하면 어떤지 등등 거의 에세이를 써야 할 것 같은 질문들이 훅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이 진중한 분들의 취향을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문해교사분들은 2012년 기준으로 지역 내 중등교육 이수율이 8% 미만인 상황에 최소 중학교는 마치신 분들로 지역의 인텔리 분들이다. 영어나 스와힐리어를 하시는 분들도 꽤 있어서, (내가 불어를 못해서 모르겠지만, 불어 하시는 분은 더 많을 것이다) 르완다어를 잘못하는 나와 스와힐리어로 대화하거나, 내가 영어로 뭔가 이야기를 하면 통역하기 전에 박수를 치곤 하셨다.
 
냐루바카에서의 첫 밤, 그리고 문해교사분들과 나눴던 이야기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쪽으로 일 하면서 이렇게 참여자분들과 가까이 이야기 나누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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