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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Sep 20. 2018

창당 10년 만에 의회에 입성한 르완다 민주녹색당

르완다 민주주의와 야당

지난 9월 2일과 3일, 르완다에선 하원의원 선출을 위한 총선이 치러졌다. 늘 그래 왔듯 여당 르완다애국전선(Rwanda Patriotic Front, 이후 RPF)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르완다 민주녹색당(Democratic Green Party of Rwanda, 이후 민주녹색당)과 사회당(Social Party Imberakuri)이 처음으로 의원을 배출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르완다의 입법부는 상하원으로 구성되고, 그중 이번에 새로 구성된 하원은 총 80명의 의원으로 이뤄져 있다. 80명 중 53명은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르완다의 선거법은 5%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만 의석을 배분한다. 그 외 24명은 여성을 위한 의석으로 전국여성위원회(National Women Council)를 통해 선출되고, 2석은 전국청년위원회(National Youth Council)에서 선출된 청년에게, 1석은 장애인단체연합(Federation of Association of the Disabled)에서 선출된 장애인에게 돌아간다.  임기는 5년으로 2023년까지 의원 임무를 수행한다.


르완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이번 선거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총선 결과: 총 53석

르완다애국전선 / RPF연대(74%): 40석 (RPF 36석, PDI: 1석, PDC: 1석, UDPR: 1석, PPC: 1석)

사회민주당 / PSD(9%): 5석

자유당 / PL(7%): 4석

사회당 / PS Imberakuri(5%): 2석

민주녹색당 / DGPR(5%): 2석


지난 하원과 비교하면 RPF연대는 1석을 잃었고, 제 1 야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은 두석을 잃었지만, 각각 절대 다수당과 제 1 야당의 자리를 지켰고, 가장 소수당이었던 자유당은 1석을 잃었다. 그리고 사회당과 민주녹색당은 최소 득표수 5%에 턱걸이하며 최초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번 총선으로 의회에 진출한 민주녹색당 대표 하비네자 프랑크. Photo: 민주녹색당 홈페이지


이번 선거로 하원의 여성 의원수는 80명 중 49명 (61.25%)이 되었고, 상원의 여성 의원수는 26명 중 10명 (38.46%)으로 상하원을 합치면 여성 의원 비율이 55.66%이다. 르완다 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여성의원의 비중이 높은 의회이며, 입법부에 여성 의원이 다수인 국가는 세계에서 르완다와 볼리비아뿐이다(2018년 발표된 UNDP의 인간개발지수 HDI 기준). 참고로 한국의 여성의원 비율은 17%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민주녹색당의 의회 진출이다. 민주녹색당은 창당 직후 정부와 갈등을 겪던 와중에 당의 주요 인사가 실종되고 살해되는 일을 겪었던 당이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정식으로 총 32명의 후보(여성 14명, 남성 18명)를 내고, 득표율 5%로 당대표 하비네자 프랑크(Habineza Frank)와 사무총장 은테지마나 쟝 클로드(Ntezimana Jean Claude)가 당선되었다.


민주녹색당은 두 번째 선거만에 원내정당이 되었지만, 그 과정은 아주 험난했다. 민주녹색당은 2009년 8월 창당했지만, 정당 등록에 계속 실패했고, 그 와중에 부대표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당대표였던 하비네자도 살해 위협 속에 스웨덴으로 망명해 2년을 보낸 뒤, 2012년에서야 귀국했다. 2013년 민주녹색당은 마침내 정당으로 등록되었고, 등록 직후 하원선거가 있었지만, 민주녹색당은 준비할 시간가 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하비네자가 후보로 나섰던 2017년 대선이 민주녹색당의 첫 선거참여였다.


동아프리카지역에서 발행되는 잡지 Wildchild 7호에 실렸던 하비네자 당시 대통령 후보의 인터뷰.


대통령 선거 전, 하비네자는 잡지 WildChil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반대하는 것을,  혹은 예의상 어른을 반대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중략) 하지만 지도자에관해선 이건 예의가 아니라 그냥 두려움 때문이에요. 누구도 왕에게 반대하진 않잖아요
조깅을 좋아해서 스웨덴에 살 때 조깅을 했어요. 거긴 안전했어요. 여기선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어떤 길을 따라 조깅할 수 있지만, 같은 길로 돌아올 수 없어요. 가끔은 보통사람처럼 지내고 싶어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곤 해요.
사람들은 이해 못할 거예요. 사람들은 저를 보지만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는지 몰라요. 그냥 쉬운 일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 모든 일들을 겪으며 변했어요. 이게 제가 성숙(maturity)했다고 하는 이유예요.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카가메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았고 오히려 르완다의 정치적 자유가 개선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심지어는 같은 당의 지도자들이 사라지고 살해당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누가 저지른 짓인지 모르기 때문에 정부를 비난하지 않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녹색당이 제도권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야성'을 버리고, 정권이 허락하는 가이드라인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녹색당의 전당대회 모습. Photo: 민주녹색당 홈페이지 보도자료


하비네자의 출마는 국외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르완다 국민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정치 신인이자 무소속 후보인 음파이마나 필리페(Mpayimana Philippe)에게도 밀렸다. 2017년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투표율: 98.15%

카가메 폴(RPF): 98.79%

음파이마나 필립(무소속): 0.73%

하비네자 프랑크(민주녹색당): 0.48%


불과 1년 전에 0.48%를 득표한 민주녹색당이 이번에 5%를 득표한 것은 대단한 성과이다. 하지만 야당으로 분류될지라도 민주녹색당을 제외한 다른 당이미 정부에 우호적인 성향이고, 정권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민주녹색당이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민주녹색당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전 세계 80개 녹색당이 가입되어 있는 세계 녹색당(Global Greens) 소속이다. 세계 녹색당은 생태학적 지혜, 사회정의, 참여민주주의, 비폭력, 지속가능성, 다양성 존중이라는 원칙을 공유하며 정치적 행동을 하는 전 세계의 녹색당의 연대기구이다. 민주녹색당은 이러한 원칙에 기반한 당의 강령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 내세우는 정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세계 녹색당. Photo: 세계 녹색당 홈페이지


총선 직전 민주녹색당이 발표한 매니페스토에는 헌법재판소 설치, 수감자 대우 개선 (사회정의), 빗물 수집과 활용 증진 (생태학적 지혜), 재생에너지 사용 장려, 친환경 산업 육성 (지속가능성) 등 세계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르완다 맥락에 어느 정도 녹아있었다.


하지만 르완다에서 진정한 야당의 역할을 하겠다는 민주녹색당의 포부와 달리 민주주의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녹색당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로 매니페스토가 간략하게 소개되었으나, 전문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해당 보도자료:http://www.rwandagreendemocrats.org/news/press-statement-third-congress-democratic-green-party-rwanda-confirmed-parliamentary-candidates)


민주녹색당의 의회 진출은 각국의 녹색당에게 희소식이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이후, 유럽 녹색당은 민주녹색당의 의회 진출을 환영하며 "기후변화의 영향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심각합니다. 이 승리가 기후와 지속가능성을 의제에 확실히 포함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아프리카야말로 녹색정치가 꼭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주녹색당을 응원한다.


 

아프리카 녹색당의 대표이기도 한 하비네자는 대선 출마를 앞두고 2017년 개최된 세계 녹색당 총회에서 자신의 대통령 출마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https://youtu.be/rSd-cVs62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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