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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Sep 25. 2018

한국 사회가 이제라도 들어야 하는 이야기

[책 리뷰] 아픔이 길이 되려면 (2017)

한국 사회에서 약자들과 연대해온 사회역학자(Social Epidemiologist) 김승섭이 내놓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들을 다루며, 그것들이 어떻게 사람을 병들게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해외에서 '의료관광'을 올 정도로 의료기술이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이라지만, 사람들은 자살하고,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죽어가고, 검증되지 않은 화학물질로 인해 병들어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가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학문"이다. 이런 사회역학을 공부한 저자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성소수자, 세월호 생존 학생, 삼성 반도체 노동자 등이 사회의 무관심과 차별 속에 어떻게 고통받고 병에 걸리고, 죽어갔는지를 연구하며 해온 이야기는 이 어렴풋함을 뚜렷하게 만들어주었다. 그가 했던 일은 이들과 연대하며, 이들이 눈에 보이도록 하고, 그들이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김승섭이 사회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해온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2017. pp319


책의 1장,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에서 사회역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사람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 저자는 2장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에서 일과 건강에 대해 논한다. 얼마 전 복직이 발표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부터 전공의 근무환경 조사,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까지, 노동 환경과 건강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저자는 해고당한 사람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에서 '해고는 살인'이 될 수 있고,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은 삶을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용불안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아파도 참고 일하고, 그러다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마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3장,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은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실태조사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우회하고서는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갈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까지, 수많은 참사를 겪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에 대한 기록이 놀라울만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이기에, 그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한 채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

 

세월호 이야기 다음에 따라오는 이야기는 성소수자와 비서구권 출신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소수자와 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비서구권 출신 이민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박해받는 사람들이다. 제6차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2010~2014)에서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한국 사람의 비율은 77.6%나 된다.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용도를 보이는 국가이며, 세 번째로 낮은 수용도를 보인 에스토니아(48.2%)와 약 30%나 차이 난다. 정말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진행된 성소수자 건강 연구 결과를 통해 동성결혼 합헌이 성소수자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한다. 동성결혼을 비롯한 동성 파트너와의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가 생길수록 스스로를 성소수자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건강상태가 개선되었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성소수자 문제는 '나중에' 해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신 경제성장이나 '적폐 청산'같은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는 사람들을 진짜 죽이고 있다. 최근 극단주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혐오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황을 봤을 때, 그 '나중에'가 왔을 때, 지금 고통받는 성소수자들이 살아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는 고통받는 성소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을 10대 성소수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가 필요한 건 여러분이 아니라 이 사회라고. 인간의 가치는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상대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혐오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분병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에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저자도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해 말하며 언급했지만, 19대 국회 국회의원 이자스민 전 의원의 경우, 정말 모든 기사마다 인종차별 악플이 달려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었다. 특히 비서구 출신 이민자이자 여성이라는 이자스민 의원이 가진 특성을 볼 때, 이 의원에 대한 혐오는 부끄러울 정도이다.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백인 남성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멋지다며 동경하면서, 이자스민 의원은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전후 맥락 따질 것 없이 무시한다. 앞서 인용했던 세계가치조사에서 '다른 인종의 사람이 이웃으로 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은 응답자의 34.1%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시행된 설문에 참여한 OECD 14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반면 미국, 폴란드, 스페인, 스웨덴 등 북미와 유럽 국가들은 5%대 미만이었다. 책에서 저자도 말하고, 나도 짧은 유럽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들이 그렇게까지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큰 차이는 저자가 지적한 지점에 있다. 많은 한국 사람은 다른 인종에 대한 최소한의 교양조차 없다.


다만 미국인은 적어도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자신의 답변이 인종차별적이지는 않을까 조심하는 최소한의 교양을, 한국인에 비해 좀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지금의 한국인에게 딱 필요한 '교양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혐오주의자나 차별주의자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도 큰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풍부한 데이터로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4장,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은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아픔'을 '길'로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사회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결론을 다룬다. 저자는 '길'을 공동체에서 찾는다. 미국에서 진행된 사회적 관계망과 건강에 대한 연구들을 소개하며, 사회적 관계망이 어떻게 우리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소개하고, 로세토 공동체의 사례를 통해 어떤 공동체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을 챙길만한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고갈되어가고 있다. 개인이 사회적 결속과 지지를 기대할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도저희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라는 저자의 다짐, 혹은 부탁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김승섭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 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다 읽을 때쯤엔 그의 팬이 되어 있었다.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세상에 기여하는 그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회에서 잊히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어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지요.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이라는 표현이 정말 좋았고 와 닿았다. 그는 이기적이라고 했지만, 정말 아름다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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