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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Mar 03. 2019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

[영화] 가버나움 (2018)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꺼려한다. 그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거나, 무지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난민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마치 가난이 죄인양 낙인찍힌다.


가버나움 포스터. 광화문 씨네큐브. Photo: 우승훈


<가버나움>은 가난한 사람들의 억울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전한다. 레바논의 배우이자 감독인 나딘 라바키(Nadine Labaki)가 감독도 하고, 출연도 한 <가버나움(Capernaum)>은 '혼돈'이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슬럼가에서 자란 자인(Zain)이라는 십 대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나를 낳은 죄'로 고소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하루살이에 급급한 자인네 식구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자인의 형제자매는 학교도 못 가고 어떻게 가계경제의 한 자원으로 취급되는지, 레바논에서 가짜 신분으로 살아가는 불법 이민자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등등의 모습을 아주 가슴 아프게 그렸다. 보는 내내 눈물이 너무 나서 힘들었다.


https://youtu.be/1pgANyekXwI


자인의 고소로 법정에서 만나게 된 자인과 자인의 부모. 자인은 부모가 자신을 낳아놓고도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분노했고, 자인이 부모는 자신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자신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자인을 잘 키우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자인의 변호사에게는 당신이 만약 나와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 영화는 내내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국가의 보호망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지를 보여주는데,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한 인터뷰(링크)에서 감독인 나딘 라바키는 이 영화를 만든 동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과 관련된 부정의에 대한 분노와 좌절에서 시작되었어요. 그 아이들은 여기에 있길 원하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분쟁과 전쟁, 정부의 결정이 몰고 온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어요.


사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자칫하면 '빈곤 포르노'가 되어 그들의 무력한 모습을 강조하고, 우리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가버나움>은 가난하고 소외되었지만, 동시에 화가 나 있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인과 주변 인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며 이들을 능동적인 인간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 점에서 이 영화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왜 빈민과 난민을 도와야 해?'라고 묻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그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에게는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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