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탄자니아에 처음 도착하다
얼마 전 페친분이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한 이야길 들으니 2012년 11월, 탄자니아 처음 도착한 날이 생각났다. 생각보다 오래전 일이라 좀 가물가물하긴 한데, 그날 나는 다레살람 공항에 도착해서 지부장님을 만나 어느 쇼핑몰에서 피자였는지, 에티오피아 식당에서 인제라였는지를 먹고(뭔가 둥그런 걸 먹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지부장님이 인제라를 좋아했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다음날 일찍 다레살람에서 버스로 6시간 정도 떨어진 탕가로 이동해야 해서 숙소로 갔다.
지부장님은 나와, 함께 도착했던 친구를 각각 방에 체크인시켜주고 본인 친구 집엘 가셨던 것 같은데, 그렇게 방에 덩그러니 남겨지니 꽤 무서웠다. 탄자니아 전에 케냐를 가보긴 했었지만, 그땐 단기봉사팀의 일원이어서 혼자 남겨졌던 적이 없었다. 호텔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보통 묵는 좋은 호텔이 아니라, 불도 어둑어둑하고 시설도 낙후된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레살람의 그 많은 좋은 숙소 중 왜 하필 거기였을까 싶다. 그날 밤의 기억은 아주 강렬했다. 일단 그 호텔에서 결혼식 피로연 같은 게 있었는지, 밤늦게까지 쿵짝쿵짝 비트 소리가 방을 울렸고, 샤워기에선 익어버릴 듯한 뜨거운 물만 나왔다. 찬물만 나오면 씻기라도 할 텐데, 뜨거운 물만 나오니 도저히 씻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과유불급의 현장이었다. 방 밖이 무섭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리셉션에 물어보는 건 엄두도 안 났지만, 오랜 비행으로 스스로가 너무 더러웠기 때문에 어떻게든 씻어야겠다 싶어서 수건에 물을 적시고 식혀가며 겨우 고양이 샤워를 했다. 그리고 밤에 누가 들어올까 봐 문을 의자로 막기도 했던 것 같고, 한여름에도 이불을 덮는 사람인데 침구류가 찝찝해서 이불도 안 썼던 것 같다. 그렇게 겨우 씻고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엔 새벽같이 우붕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나중엔 그 분주함이 좋아졌는데, 그날 우붕고의 분주함은 무서웠다. 지부장님을 따라서 탕가행 버스, 아마 당시 다레살람-탕가 노선에서는 가장 좋았던 심바 음토토(Simba Mtoto / 아기 사자)를 탔을 텐데, 그걸 타고 가면서도 도대체 이곳엔 체계란 게 없나 싶었다. 버스가 출발 시각도 안 지키고, 정류장도 정류장 안 같고, 물건들의 정가는 알 길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소매치기 같은 범죄를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누가 승객이고, 누가 버스회사 직원이고, 누가 짐꾼이고, 누가 도둑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몇 주, 그리고 지금까지, 탄자니아와 르완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 나름의 체계라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짜증 나는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다른 이를 탓하기보단 대체로 '바하티 음바야'(Bahati Mbaya / 운이 나빴다)라고 넘길 수 있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알고 보니 아프리카가 한국보다 좋더라'라거나 여기가 완전 편해진 건 아닌데, 그냥 사람 사는데 힘든 장르는 다르지만 정도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보니 2011년 케냐에서의 2주를 시작으로, 동아프리카와의 인연을 꽤 길게 이어왔다. 이제 좀 지겨워질 법도 한데, 여전히 아프리카가 재밌는 거 보니 이것도 병인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