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여행] Gisovu Tea Estate
연말을 맞아 나와 1년 넘게 이웃사촌으로 지내준 코이카 봉사단원 두 명과 여행을 다녀왔다. 연말 업무로 많이 지쳐있던 상황이라 쉼이 있는 여행지를 찾다가, 우연히 Gisovu Tea Estate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Silverback Tea Gisovu Tea Estate 홈페이지: http://silverbacktea.com/
르완다에 2년 넘게 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모르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이곳에서의 1박 2일은 환상적이었다.
르완다에서는 Silverback이라는 브랜드로 홍차를 생산하고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차 회사 중 하나인 Mcleod Russel 그룹에 속해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홍차는 케냐 몸바사를 거쳐 영국에서 종종 보았던 Yorkshire Gold 블랜드를 포함, 세계 각국에 판매된다고 한다.
Yorkshire Tea에서 올린 Gisovu의 차 재배 관련 영상: https://youtu.be/WkJyGOkGRr8
나는 홍차보다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홍차를 거의 마시진 않지만 홈페이지에 나와있던 차 재배지의 풍경들이 정말 예뻤고, 이동수단만 마련하면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의 모든 식사와 재배지 투어, 숙박을 모두 해결할 수 있어서 1박 2일로 예약하고 Gisovu로 향했다.
Gisovu는 르완다 서부, 키부 호수가의 카론지 디스트릭트(Karongi District)에 위치해있고, 늉웨 국립공원 (Nyungwe National Park)에 접해있다. 만약 수도 키갈리에서 출발한다면 무항가와 키부예를 거쳐 약 6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이 될 것 같다. 키갈리-무항가-키부예까지는 큰 도로로 이동해서 괜찮은데, 키부예에서 Gisovu에 들어가는 게 꽤 힘들었다. 이륜구동 SUV를 타고 갔는데, 비포장길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정말 느릿느릿 가야만 했다. 비포장에서만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만약 이곳을 다시 방문한다면 사륜구동 차를 빌리거나 키부예까지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서, 농장에 픽업을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차가 중간에 고장 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던 끝에 들어선 Gisovu, 동네 전체가 차밭이라 온통 초록이었고, Gisovu Tea Estate 내에 위치한 숙소의 전망은 마치 옛날 윈도 배경화면 같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주변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숙소 관리자가 홍차를 내왔다. 홍차를 잘 마시진 않아서 사실 어떤 홍차가 맛있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차가 맛있게 느껴졌다. 우유가 없고 Nido 분유만 있었다는 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다.
원래 회사의 관리자들이 출장을 오면 묵는 곳으로 만들었다가, 출장자가 없을 땐 방문객들에게 내어주고 있다는 숙소의 방은 아주 넓고 좋았다. 인도계 회사라 그런지, 식사로는 달(Dal)을 메인으로 구성된 인도음식이 내내 나왔다.
Gisovu Tea Estate에는 3개의 방이 있고, 한 방을 2명이 사용 시에는 모든 식사와 차밭 투어 포함 150 달러, 1명이 사용 시에는 125 달러이다.
점심식사 이후엔 공장 견학을 했다. 내부 촬영은 허용되지 않아서 내부 사진은 없는데, 홍차의 생산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완전 건조가 거의 마지막 단계였다는 점과 일종의 발효 과정에서 초록색이었던 잎이 적갈색으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거의 모든 공정은 기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장 견학 후에는 농장을 거닐며 풍경을 감상했다. 요즘 르완다가 우기라, 이날도 흐리고 가랑비가 때때로 왔지만, 풍경은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멋졌다. Gisovu Tea Estate의 크기는 300헥타르가 넘어서 어느 방향을 봐도 차밭이 저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밤에는 식사를 하는 공용 공간에 있는 벽난로에 불도 켜주고 잘 때 안고 자라고 온수 손난로도 준비해주었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이 온통 차밭이라 불빛이 거의 없어 날씨가 맑았으면 별도 참 많았을 텐데, 이날은 날씨가 흐려서 별은 많이 볼 수 없었다.
벽난로 옆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고요하고 침대도 푹신해서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나는 아침잠이 많아서 일출을 못 본 지가 꽤 됐는데, 여기서는 정말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에 밖으로 나섰다.
예상대로 해뜨기 직전의 풍경은 대단하고 신비로웠다. 광활하고 적막한 농장에서 이슬처럼 촉촉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운해로 섬이 된 동산들을 보던 그 시간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둘째 날은 날씨가 좋아서 첫날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또 인도식으로 준비된 아침식사를 마치고 차 농장을 산책했는데, 이 어마어마한 초록이 질리는 것도 없이 보면 볼수록 좋고 행복했다.
농장을 떠날 때쯤, 1박 2일이 너무 짧았던 것 같아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간이 바꿔놓은 이 엄청난 풍경이 마냥 마음 편할 순 없었다. 이 차농장의 한쪽은 원시림으로 유명한 늉웨 국립공원과 접해있는데, 아마 이 농장이 있는 자리도 원시림 일부였을 것이었을 것이고, 농장 직원은 원시림 방면을 가리키며 저쪽으로도 곧 확장될 예정이라고 했다. Mcleod Russel그룹의 홈페이지에선 조림사업을 하고 있다곤 하지만, 르완다에서 농장을 조성하며 파괴한 만큼의 숲을 다시 조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나이 든 나무들이 잘려나간 자리에선 외국에서 온 자본이 돈을 벌고, 주변에서 모여든 사람들도 돈을 벌고, 나 같은 방문자들이 위안과 추억과 사진을 얻고 있다. 아니, 사실 주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돈을 제대로 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검색해보니 몇 해 전 Mcleod Russel 그룹이 소유한 인도의 차 재배지를 BBC가 취재했는데, 농장의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 이후에 개선이 되었는지, 르완다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 마음에 걸렸다. 일단 위에 언급했던 영상에서는 생물다양성과 지속가능한 생계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 NGO Rainforest Alliance와 함께 몇몇 CSR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긴 했지만, Gisovu Tea Estate의 위용(?)과 달리 주변에 형성된 마을은 특별히 잘 사는 마을 같아 보이진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 뒤의 이야기를 알수록 홍차의 맛처럼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나는 일단 나의 몫을 단단히 챙겨 그곳을 떠났다. 다시 갈 수 있을까? 다시 가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