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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Jun 29. 2019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정체성

[책 리뷰] 숨통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 2009/2015)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라고 불리는, 77년생 나이지리아 출신의 젊은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가 쓴 '숨통'이라는 작품을 비롯해서 12편의 단편이 실린 「숨통」(The thing around your neck)은 아주 흥미롭다. (이 글은 2014년 8월에 쓴 글을 옮긴 것이다.)



주로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단편들에서 현대 아프리카인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각 단편에서는 미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숨 막혀하는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 미국에서 더 미국인스럽게 변한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 격변하는 시기에 혼란을 겪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아메리칸드림'과 현실의 괴리 같은 것들을 공감되게 그리는 동시에, 나이지리아 아니, 이보족스러운 생각들을 독특하면서도 낯설지 않게 풀어놓았다.


단편선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단편선 전체의 제목과도 같은 '숨통'이다. 운 좋게 미국 비자를 얻어 건너오게 된 젊은 나이지리아 여성이 겪는 일들에 대한 글인데, 이 단편은 내가 보기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전개된다. 미국에서의 삶에 부조리함을 느껴 숨통이 막히는 듯한 갑갑함을 느끼는 주인공 이야기와 그 주인공이 아프리카 애호가와 만나고 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비판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남자 친구이자 미국인이자 아프리카 애호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 그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다 온 나라 목록에 하나 더 추가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에 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 사람들은 결코 그의 삶을 구경할 수 없을 테니까. 당신은 어느 화창한 날 그가 당신을 롱아일랜드 해협에 데려갔을 때 이 이 얘기를 했고, 당신들은 말다툼을 했고, 고요한 바닷가를 따라 걷고 있던 당신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는 당신이 그를 독선적이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당신은 그가 뭄바이의 가난한 인도인만이 진정한 인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당신도 진짜 미국인 아니잖아? 당신과 내가 하트퍼드에서 본 가난하고 뚱뚱한 사람들과 다르니까 말이야. .... (민음사,「숨통」p.165)


이 부분은 내가 항상 고민하는 주제인 비 아프리카인인 내가 아프리카에 대해 말한다는 것, 아프리카에 대해 쓴다는 것, 아프리카를 좋아한다는 것과 맥락이 닿아있어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결국 이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고, 주인공은 아버지가 자동차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멀리 고국에서 들으며 이야기는 끝나는데, 이 순간에 주인공의 숨통을 턱턱 막히게 했던 무언가가 사라진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다른 단편인 '점핑 멍키 힐'에도 나오는데, 아프리카 작가들의 워크숍에서 일어나는 일화를 다루고 있다.


(전략)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긴 듯 한참 파이프를 씹더니, 이런 유의 동성애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느 아프리카요?" 우준와가 불쑥 말했다.

남아공 흑인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에드워드는 더욱더 파이프를 씹어 댔다. 그러고는 마치 교회에서 얌전히 앉아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애를 보듯 우준와를 쳐다보더니, 자신은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아프리카 학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참 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프리카라는 공간에 서양식 사고를 투영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말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중략)

"지금이 2000년일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에게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는 여자 이야기가 대체 얼마나 아프리카적이라는 거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그러자 세네갈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하더니 약 1분 동안의 일장 연설을 마친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네갈인이에요! 내가 세네갈인이라고요!" 이 말에 에드워드는 똑같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대답하고 나서 영어로,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저 사람은 고급 보르도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군요"라고 말했고 몇몇 참가자들이 킥킥 웃었다. 


이 일화 속에서는 '아프리카 적인 것'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에드워드와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고 항변하는 세네갈인의 대립이 인상적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과, 서구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프리카 글 쓰기가 다르다는 점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미국으로 건너와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지만, 그 또한 이 단편들에서 나오는 불안과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전적 소설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을 찾아온 이주자들이나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에게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화의 장을 만드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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