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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Aug 13. 2019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출마하는 거예요"

튀니지 대선 출마를 발표한 오픈리 게이, 무니르 바투어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케냐의 비냐방가 와이나이나(Binyavanga Wainaina)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일보 [가만한 당신]에 실린 그의 부고 기사는 여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퀴어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이자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프리카의 비상(Africa rising)이라 부르건, 정치적인 변화, 혹은 더 많은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 그리고 심지어 더 많은 길들이 있다는 사실로 부르건, 이것은 사람들이 조직화하고, 공간을 만드는 길을 터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공격과 위협에 더 취약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요즘 모든 것엔 양면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열성적인 일당과 안전을 위해 뚫리지 않는 벽을 세워야 해요.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의 퀴어 공동체는 블랙베리(보안으로 유명한 스마트폰)와 블랙베리의 보안 덕분에 존재하고 번성할 수 있었어요. 그들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 거죠." - 비냐방가 와이나이나, A Lost Chapter Found: Interview with Binyavanga Wainaina


비냐방가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하기도 한 이 시대에 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 튀니지에서는 한 공개적인 게이(Openly Gay)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주 목요일 (8월 8일), 튀니지의 자유당(Liberal Party) 당수이자 인권 변호사인 무니르 바투어(Mounir Baatour)가 튀니지 대통령에 출마를 위해 튀니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청서를 접수한 것이다. 만약 바투어의 입후보 신청이 승인된다면, 바투어는 아랍 세계에서, 어쩌면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최초로 성소수자임을 밝힌 채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된다. 충분히 "역사적"이라고 할만하다. 


대선 입후보를 위한 서류를 내며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는 바투어 후보. Photo: Twitter / @mounirbaatour


그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게이라는 사실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요. 저는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출마하는 거예요. 저는 모든 튀니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정책을 가지고 있어요."라며 그의 성적 지향을 부각하지 않는 담담한 태도를 취했지만, 튀니지에서 동성애는 처벌 대상일 정도로 공개적 게이의 대선 출마는 보통 일이 아니다. 


튀니지 형법 230조는 "남색"을 최대 3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범죄로 간주하고 있는데, 국제 앰네스티는 튀니지의 성소수자 NGO인 Damj를 인용하며, 2018년 한 해에만 튀니지 경찰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이유로 최소 115명을 체포했고, 이 중 38명이 형법 230조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약 20여 년 전 커밍아웃했던 바투어 후보도 2013년 17세 학생과의 "남색"을 이유로 3개월간의 징역형에 처해진 적이 있다. 그는 이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가 진짜 미성년자 성폭행범인지 아닌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튀니지에선 경찰이 동성 성관계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강제 항문 검사를 실시하는 등, 성소수자들이 일상적인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일부 성소수자 권익 보호 단체들은 바투어의 출마가 성소수자 공동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그의 출마를 반대하고 있고, 과거 그가 했던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이유로 그의 출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바투어는 튀니지 내에서 LGBT를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모든 후보들이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하게 되긴 희망한다고 밝혔다. 


바투어가 정식으로 대선 후보가 될 것인지 여부는 이번 달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원래 튀니지 대선은 11월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지난달 25일, '자스민 혁명'이후 첫 민선 대통령이었던 에셉시 대통령이 92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대통령 유고시 9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이 취임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에 의해 9월 15일로 앞당겨졌다.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251959001&code=970209) 이에 따라 입후보 신청 접수는 지난주 금요일인 8월 9일까지 진행되었고, 무려 98명이 선청서를 냈으며, 선관위는 이들의 서류를 검토하여 이달 31일 후보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선거운동은 9월 2일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입후보한 주요 인사로는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지고 있는 튀니지 최대의 정당이지만, 2011년 민주화 혁명 이후 지금까지 대선후보를 낸 적이 없던 Ennahda당의 부대표 압델 파타 무루(Abdel Fattah Mourou)와 현직 총리인 유세프 차헤드(Youssef Chahed), 출마를 위해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압둘 카림 알-주바이디(Abdul Karim al-Zubaidi) 등이 있다. 

  

바우어 후보가 대선에서 경쟁해야 할 후보들이 쟁쟁한 정치인들이라는 점도 그에겐 큰 어려움이지만, 더 큰 문제는 튀니지 사람들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다. 올해 발표된 Arab Barometer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근소한 차이지만 튀니지 사람들은 "명예 살인"을 동성애보다 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명예 살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8%였고,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7%였다. 이 수치는 다른 아랍 국가들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으로, 튀니지 사회가 유독 동성애에 폐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것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거 캠페인을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인권 변호사와 운동가로 경력을 쌓아온 바투어 후보가 시민, 특히 소수자의 자유를 위한 캠페인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그가 선거 기간 동안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 이렇게 성소수자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사적"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인터넷에서 혐오주의자, 차별주의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표지 사진: 무지개기를 흔들고 있는 바투어 후보. Photo: Twitter / @mounirba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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