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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Jun 12. 2016

송중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

선점에 의한 희생


동네를 구석구석 훑고 다니는 마을버스에 탔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같은 길을 돌고 돌 기사님이 존경스럽다.

내가 제일 못 견뎌하는 일이라 그런가.

그런 버스를 아침에 한번 밤에 한번

타고 다니는 나도 사실 다를게 없다.


하루새 뭐가 달라졌겠다고

통유리 너머의 동네 풍경을 고집스럽게 쫒는다.


같은 자리에 앉아 한결같은 풍경에 시선을 주어도

아웃포커싱 되는 지점이 매일매일 다르다.

아침저녁 다르다.


얼마 전 고개를 돌리게 하면서까지

내 시선을 소매치기하고 달아난 녀석이 나타났다.


다음 날 같은 시간에 그 녀석을 기다렸다가 냉큼 화면에 담았다.


의도하지 않은 자동 띄어읽기 taken by JS.L


한국 사람이라면,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는

'세상에 이런 일이' 속 주인공이 아니라면,


'동네 이름 + 업종 이름'이라는

사장님이 원래 의도한 바대로 곧바로 읽긴 어려웠을 거다.


동네 이름이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훨씬 더 많이 반복적으로 노출된 쪽인 유명인 이름으로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의 뇌가 제 멋대로 띄어쓰기를 한 셈이다.


뇌는 이렇게 말한다.


"난 의미 중심으로 먼저 인지되는 순서로 읽었을 뿐야"

"탓할 거면 송중기를 탓해"


우리의 똑똑한 뇌

기억창고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정보가

망막에 활자로서 맺히자마자

더 빠르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순으로

들뜬 듯 해석을 해냈다.


위인 '허준' 하면 전광렬의 얼굴이 떠오르고

외국에서 '오후 2시'를 말하다 보면 2PM이 의식된다.

'데프콘'을 들으면 웃음이 나올지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지 아직은 경계에 서 있다.


이미지 선점에 의한 상징이 만든

섬뜩한 중첩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는 우선순위.


전국의 김태희와

LG전자 올레드 TV상무 이병철(실존인물),

배우 김정은도 억울하다.


모국어를 잊지 않는 한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를 의식하지 않고

사람과 사물을 아무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방법

내가 고민해 본 한 없다.


'삼송중기'는 평생 나에게 '삼 송중기'다.

그에 대한 호감이나 관심 여부와는

관계가 없기에 더욱 무력감을 느낀다.



송중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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