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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Jun 19. 2016

위를 보며 네 앞의 거울을 깨라

과거와 미래 사이의 나 <두 번째 이야기>



아프고 날카로우며 차가웠던 기억.

잊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게 새겨지는

사건과 당시의 감정들.


단단한 화석이 된 과거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이뤄

내 뒤에서부터 나를 밀어붙여온다.


"너에게 오늘은 사치야"

"어제 일, 작년 일을 떠올려 봐"

"너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곤 했어"

"오늘을 살 여유는 네게 없어"



그리고

내 앞에 키를 훌쩍 뛰어넘는 또 다른 벽이 서 있다.

거울이 붙은 커다란 벽은 등 뒤의 비참하고 우울한

과거가 묻혀있는 회색 벽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할 미래의 모습을

내 앞의 거울 벽뒷 콘크리트 벽으로부터  

초연하게 복사해 내고 있다.


거울 벽 또한 가만히 서있는 나에게 돌진해 왔다.

뒷벽이 나를 밀어 앞걸음 치게 만드는만큼

앞벽 또한 나를 밀어 뒷걸음치게 만든다.


"어차피 내일도 똑같을 거야"

"이미 늦었어. 끝난 거야"

"되돌이킬 방법은 없어"

"앞으로도 넌 불행할 거야"




내가 서있는 오늘로서의 공간은 좁아져 간다.

좌우로 시선을 옮겨 탈출구를 찾는 방법은

오래전에 잊었다.

나에겐 앞과 뒤에서 나를 향해 좁혀오는 압박

그리고

곧 직선에 수렴할 볕이 드는 틈새 공간뿐.


나의 운명을 한탄하며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삶을 개탄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신발코까지 좁혀온 앞의 거울 벽

신발 뒷굽까지 밀어온 뒤의 콘크리트 벽

숨은 가빠왔고 발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바닥엔

오늘을 살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를 비관하는

영혼이 병든 그림자만이 밟혀 있었다.


그 순간,

이 그림자는 왜 생긴 건가.

문득 드는 궁금증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 신발 사이즈만큼 떨어져 있는 두 벽 사이 틈으로

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 빛이 내 어둡지만 유일한 친구를 만들어 주었구나.




왼쪽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암흑을 이기고자 내내 커져있던 동공이

빛을 만나자 작아졌다.


눈물로 블러(blur) 처리된 시선의 끝에

그 작은 틈새로 들이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쳤다.

분홍색 꽃잎이 휘이휘이 흩날렸다.


"저 세계에 가고 싶다"


알 수 없는 힘이 났다.

동공을 크게 유지하느라 힘이 들어가 있던 눈도

한결 편안해졌고,


줄곧 아래로만 숙여져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려보자

두통도 사라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를 만들어낸 창조력

마음껏 떠다니는 새, 물고기, 꽃잎들의 생명력

용기를 얻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앞에 있는 거울 벽을 응시했다.

거기엔 분노에 이글거리고

상처와 좌절에 지쳐 보이는 아이가 서 있었다.

뒷배경은 보지 않고 나 자신만 살폈다.




단 한 번도

오늘을 충만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게 억울했다.

지난 수많은 오늘엔 어제 후회내일 걱정이 지배했다.

과거의 벽과 미래의 벽에 치어
더 이상 오늘을 희생시킬 순 없었다.


두 손바닥을 앞에 있는 벽에 얹고 힘을 주어 밀어보았다.

꿈쩍도 않을 것 같던 거울 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는 힘의 반작용으로서 벽이 뒤로 밀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내 손이 닿아 있는 거울 부분에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그리고 곧 와장창 깨졌다.

이상하게도 바닥에는 깨진 거울 조각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상상 속 거울이었던 거다.


오랜 기간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벽을 배경으로

파괴된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비춰내던 거울의 환영이 사라졌다.


두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이 점차 넓어졌다.

걸음을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옮겨가며 계속 밀었다.

밀 수 있을 때까지.


이제 내가 밀던 앞 벽에 거울은 없다.

아픈 과거에 생채기가 난 뒷벽은 지금도 굳건하지만

비칠 거울이 없기에

내가 돌아보지 않는 한 의식되지 않았다.


나에겐 저 위

자유롭고 멋진 세상이 있으니까.

나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처럼 좁은 틈 사이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틈새로 보일 멋진 배경을 만들어 두어야 하니까.  



과거가 나를 옭아매고

미래에도 뻔한 삶이 계속될거라 믿으며

오늘을 포기하는 분들,

을 포기하는 분들께 전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보세요.


멀리 보지 말고

돌아보지 말고

를 바라보면

당신이 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꿈이어도 좋아요.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설계여도 좋아요.

고집을 부려봐도 좋아요.


그것이 당신의 삶과 오늘

지켜줄 수만 있다면


고개를 들어

동화 같은 세상을 꿈꾸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고 태어나며

하늘을 바라보며 죽습니다.


그 사이에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눈을 영원히 감은 뒤에야 부질없는 시선이

위로 향할 것입니다.


꿈을 가질/가진 모든 분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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