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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Dec 22. 2016

꽃집 주인이 건넨 뜻밖의 말

시국에 지친 당신에게 바치는 따뜻한 이야기


지하철 3호선 어디쯤에

OO역이 있다.


일산과 파주 주민들이 서울을 오갈 때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버스도 많고 사람도 많다.


수만 대의 바퀴가 굴러가고

수천 명의 발걸음이 뚜벅거리는

4차선 도로 깊은 아래 지하상가에 

한 꽃집이 있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역사 안,
무심하게 일제히 켜져 있는 형광등을 경계하듯

꽃은 저마다의 빛으로 색으로 활짝 피어있다.

꼬마화가의 파렛트처럼 다채롭고 독특한 빛깔은

아래로 내리쬐는 인공 빛을 가까스로 이겨낸다.

기술과 돈으로 파낸 지하 역사 안,

땅 속 깊이 인간이 건설한 공간을 의심하듯

나무는 자기 화분 흙속으로 뿌리를 내렸다.

한 뼘 크기부터 어린아이 키와 닿는 나무까지

넓은 땅 아래 또 작은 땅 속에 생명이 심겼다.


늦은 시간 어느 날

개찰구를 향해 서두르다 

당혹스런 장면과 마주쳤다.


영업을 마치고 불이 꺼진 꽃 가게 밖을 

자유로히 둘러싼

수십 그루의 꽃과 나무들,

이 세상에선 상품들.


"누가 가져가면 어쩌려고..."


주인도 아닌 내가 앞서 든 걱정.

동시에 궁금증 하나.


"이 집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영업 종료한 꽃집


다음 날 낮, 가게를 다시 찾았다.


요즘 집 한켠에 핀

식물을 바라보는 행복으로 사시는 어머니.

그녀를 위해 작은 선물을 드린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보탰다.


가게 안을 들어서자 

50대 여사장님이 서서 꽃을 포장하고 계셨다.


갓 태어난 셋째 딸아이를 안겨 받은 듯 

꽃을 다루는 솜씨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능숙했다.


나: 저 밖에 있는 거 선물하려는데 괜찮을까요? 저희 어머니요.
여사장님: 작은 화분에 있는 금전수요? 너무 좋죠. 꽃말도 좋아서 인기가 많아요.
나: 꽃말이 뭔데요?
여사장님: '금'자가 돈 금(金) 자라고 돈 들어오는 식물이래요. 호호호.
나: 아 그래요? 네. 이거로 할게요.


금전수를 들고 가기 편하도록 

투명 플라스틱 백에 넣어주시는 동안

어제 본 신기한 광경을 물었다.


나: 어제 늦게 지나가다 봤는데 화분들을 다 내놓고 가셨더라구요.
여사장님: 아 밤에 보셨구나. 많이들 물어보세요. 호호호.
나: 괜찮나요? 저렇게 내놔도?


그녀는 포장을 마친 금전수를 나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지켜봐 주시고 계시잖아요. 이렇게..."



괜찮아요. 정도의 답변을 기대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스운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잠시 내가 '신' 이 된 것처럼 들렸다.

나도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었구나.

함께 걱정해주는 사람이었구나.

사람에 대한 주인장의 믿음과 사랑을 지켜주었구나.


양보 없는 추위와 빠듯한 삶에 얼어버린

마음이 천천히 녹는 기분이었다.

뜨겁게 달군 쇠숟가락에 버터 한 조각을 얹은 것처럼.


어쩌면 내가 걱정했던 건

다른 마음을 먹은 누군가가 

화분 하나를 훔쳐가 손해가 나는 일.

그 자체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걱정한 건

내가 간절했던 건

지하 속 깊이 내린 어둠과 거대한 인공에 맞서

붉고 푸르른 생명들을 키우고 있는

어느 주인장의 순수함이

다칠까봐.

어느 주인장의 믿음이

깨질까봐.


언젠가 어느 늦은 밤,

가게 안으로 말끔하게 

꽃과 나무를 들여놓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OO역을 지나는 수많은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주인장은 

맘 편히 집으로 간다.


몇 시간 뒤,

어머니에게 건네진

푸른 잎의 금전수가

나를 향해 빙긋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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