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나는 과외 선생님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두 명을 가르치고 있다. 과목은 영어다. 두 학생 모두 영어 문장 읽기를 힘겨워한다. 지켜보고 있으면 독해라기보단 아리송한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 끝으로 영어 단어를 가리키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내려간다. 손가락이 과속방지턱을 만난 듯 자주 멈춘다. 오랜 시간을 들여 도착한 마지막 마침표에도 표정은 밝지 않다.
겨울 방학을 맞아 특별 훈련을 하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먹어보자는 취지이다. 지난 2017학년도 수능 영어 기출문제로 수업 교재를 만들었다. 45개의 문제가 출제되는 수능 영어에서 듣기 평가를 제외한 27개의 지문으로 연습한다.
그러다가 35번 문제를 만났다. 전체 흐름과 관계없는 문장 한 개를 골라내야 하는 문제였다. 지문에 실린 단어 수준이나 문장 구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실제 정답률도 63%로, 가장 낮았던 33번의 28% 보다 높은 편이다.
날 사로잡은 건 그 내용이었다. 앞선 지문들은 '언어의 모호성', '건물의 상징성', '지도의 이데올로기 전달자로서의 역할'처럼 도통 재미가 없었다. 난이도 조절을 위해 일상에서 쓰지도 않는 어려운 단어를 나열한 느낌뿐이었다. 솔직히 그런 지문들을 아이들에게 소개할 때도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런데도 35번 지문은 초등학교 주변의 스쿨존처럼 과속방지턱이 많았다. 공감 가는 내용에 손가락이 자주 멈췄다. 물론, 요즘 업과 적성을 고민하던 시기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곱씹어 볼, 좋은 메시지로 불룩해진 방지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코리아와 독취사 카페를 매일 드나드는 청년들, 육아 출산으로 경력이 끊긴 여성들, 처자식과 노부모님이 있어 당신 꿈을 접은 중장년 아버지들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생각하게 돕는 인생 과속 방지턱이다.
Most often, you will find or meet people who introduce themselves in terms of their work or by what they spend time on.
당신은 자기 자신을 그들의 일이나 그들이 시간을 쏟는 것으로 소개하는 사람을 매우 자주 만나게 될 겁니다.
These people introduce themselves as a salesman or an executive.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판매원이나 이사로 소개하죠.
There is nothing criminal in doing this, but psychologically, we become what we believe.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심리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People who follow this practice tend to lose their individuality and begin to live with the notion that they are recognized by the job they do.
이런 관행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직업으로 자신이 인식된다는 개념을 갖고 살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However, jobs may not be permanent, and you may lose your job for countless reasons, some of which you may not even be responsible for.
그러나 직업이란 영원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은 수많은 이유로 그 직업을 잃을 수도 있죠. 그중 일부는 심지어 당신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죠.
In such a case, these people suffer from an inevitable social and mental trauma, leading to emotional stress and a feeling that all of a sudden they have been disassociated from what once was their identity.
그런 경우에 이런 사람들은 불가피한 사회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한때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믿었던 것과 갑작스럽게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유발합니다.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어려워진 불수능에 좌절할 수험생들을 미리 다독이려 했을까? 일과 관련 없는 만남에서조차 직위나 회사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걱정스러워 보였던 걸까?
작년에 다녔던 영어회화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를 포함한 수강생 3명과 미국인 강사 1명이 소그룹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강사는 자신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옆에 있던 학생이 강사에게 물었다.
옆 학생: 여기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됐어?
미국인 강사: ...
옆 학생: (...?)
미국인 강사: 다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일했는지만 물어봐. 난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기도 해. 근데 왜 너희들은 모두 내 강사 경력 같은 것에만 관심이 있는 거지?
사실, 강사님이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건 맞다. 처음 듣는 질문이든 수백 명이 똑같이 했던 질문이든 영어 강사는 학생들에게 성실하게 답해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에게 묘한 연민이 느껴졌다. 타국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는 그녀가 그 나라 사람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직업'에 관한 것뿐이라면 그녀도 인간으로서 답답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마주 앉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서 일하는지로 그들을 신속히 규정해버렸다. 결국 유일하게 궁금하거나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들이 비슷비슷해진 거다. 내가 남을 그렇게 바라본다는 건 나도 나 자신을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내가 나를 직업으로 정의하고 소개하는 것은 나만의 독특한 습성이 아니라 상호 간의 관계에서 학습된 사회적 인식의 결과물인 셈이다.
35번 지문에서 지적한 대로 직업과 역할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했을 때의 나중에 겪을 상실감과 허무함은 매우 크다. 30년 동안 애지중지 키우던 딸을 시집보낸 부모가 느끼는 공허함은 자기 자신을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역할로서 크게 이입한 결과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살림에 간섭을 하는 것도 당신의 삶을 희생하고 엄마라는 정체성에 몰입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후유증일 수 있다. 전 세계에 어느 부모가 자식에 애착을 갖지 않겠냐만은 문제는 비중이다. 자식이 부모의 전부가 돼서 '김명자'가 아니라 '00 엄마'로만 살아간다면 노년이 되어서도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에 마음이 쓰이고 서로가 힘들다.
부작용은 더 있다. 한마디로 모든 걸 말해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내가 누군 줄 알어?
자신을 향해 숙여지는 고개 숫자와 높은 연봉 그리고 힘 있는 지인을 근거로 자기 자신을 무장한 상태이다. 동네에선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배 나온 아저씨일 뿐이다. 이 들 때문에 주변 사람이 괴로워진다. 극진히 모셔야 하는 서비스 업종, 비서진, 부하 직원, 심지어 가족들도 장군님을 받들어야 하는 신세다. 인간으로서의 '나'와 명함에 적힌 '나님'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아직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직업조차 가지지 못하는 청년들이다. 변변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한 자신을 '나'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취업자는 취업자대로 상상과는 다른 업무 환경에 좌절스럽다. 취준생들은 배부른 소리라며 그마저도 부럽다 하지만 솔직히 자기도 오래 버티며 일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이번 생은 틀렸다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얘기는 진심이다. 인생 초반에 겪은 일자리 문제로 인생 전체가 망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나도 얼마 전 열심히 준비했던 인턴에서 불합격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회사가 원하던 인재상과 내가 달랐을 뿐이지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했다고 느낄 필요는 없어
일자리를 구하고 내가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XX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나, 작은 △△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나, OO에서 대리로 근무하는 나를 나 자신과 100% 동일한 존재로 믿어선 안된다는 뜻이다. 나는 한 가지 기준으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다. 특히 돈벌이를 위해 내 몸을 고생스럽게 만드는 직업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간단한 실천으로 바꿀 수 있다. 비지니스 관계가 아니라면 나를 다른 방식으로 소개해보는 거다.
아침에는 반드시 모닝커피가 있어야 하는 김승주입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임승혜입니다.
주말에는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드라마를 몰아보는 정민아입니다.
나에게 다시 한번 깨달음을 준 수능 영어 35번 문제는 이렇게 시작한다.
35번 문제의 답은 2번이었다. 그럼 아래 주관식 문제의 답은 뭘까?
이 문제는 앞으로 절대 틀리고 싶지 않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제 브런치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첫 글을 게시한 지 오늘로 꼭 1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부족한 필력을 신선한 생각들로 채워나가려 합니다. 처음 시작했던 마음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