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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Feb 19. 2016

놀라지 마라(2)

뉴스에 놀라다



놀람 프리퀄_놀람 센서는 왜 예민해졌는가


[놀라지 마라(1) - 똘레랑스가 부족한 사람이 잘 놀란다]에서는 '인간의  놀람'이라는 사적인 감정을 외부의 이질적 자극에 얼마나 유연하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태도로 확장해 보았다. 좋은 놀람과 나쁜 놀람(혹은, 불필요한 놀람)을 구분하여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에는 기꺼이 놀라자고 했다. 반면에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차이를 발견한 경우, 차별로 이어지기 쉬운 1차적 감정인 '놀람'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관용'의 마음가짐이 더욱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데, 현대 사회는 소소한 아름다움에 대한 놀람을 쉽게 지나치도록 만들었고 나의 존재감을 위협하는 '다름'에 대해서는 크게 놀라도록 지속적으로 훈련시켰다. 정상과 비정상, 선과 악의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일탈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이색적 시도나 개성 표현에는 인색한 평가를 내리곤 했다. 이런 배타적 구분의 시초가 되는 '놀람'이 사회의 다양성을 억제하고 주류적 대세를 추종하도록 강요받는 보수적인 사회문화를 형성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도대체 누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놀람 가속페달을 이토록 비대칭적이고 예민하게 만들었을까.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를 조금씩 성형해 나가는 창구인 '뉴스'에서 단서를 관찰할 수 있었다.



뉴스를 보는 두 가지 이유


위키피디아는 뉴스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뉴스는 뉴스가치에 의해  선택된 사실이다. 즉,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실이나 사건을 보도의 틀에 맞도록 재구성한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뉴스가치는, 즉 무엇을 전달할지는 영향력, 시의성, 저명성, 근접성, 신기함, 갈등 그리고 시사성이 있다고 한다.

뉴스 공급자 입장에서 바라본 의미에 가깝다. 뉴스는 뉴스 수용자에게 전달됨으로써 비로소 뉴스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어느 재화나 서비스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뉴스라는 컨텐츠가 소비된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정보를 알거나 알지 못하냐에 대한 기준점이 된다. 어떠한 상품보다 파급력이 크며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뉴스를 보는 것일까. 두 가지로 추려 보았다.


첫째는 겸허한 호기심이다.

뉴스 소비는 세금납부처럼 정부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매일 밤 저녁뉴스를 보기 위해 TV 리모컨을 찾고, 매일 새벽 차가운 현관 밖을 맨발로 나가 반으로 접힌 신문을 챙겨 들어오고,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통해 포털사이트 뉴스를 습관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점은 모두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내가 잠든 사이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일한 동안 누가 무슨 사고를 쳤을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뉴스를 본다면 왜 이것이 '겸허'하다는 걸까.


우리는 오늘 하루를 각자의 일정과 리듬에 맞게 살고 있다. 나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없다. 24시간이 인구수만큼 동시에 병렬적으로 흘러간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4시간 X 74억, 1776억 시간(약 2,027만 년)이 되어야 맞다. 이 많은 시간 동안 단 1초도 똑같은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해도 '나'라는 단 하나뿐인 존재가 살아낸 고유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뱃속에서 나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 넓은 나라(혹은 지구)에 나 혼자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나의 일생과 함께 남의 인생, 다른 사건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차차 깨닫는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지만 보고 듣고 느끼며 경험적으로 체득한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구나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 귀로 들리지 않는다고
세상이 조용한 것이 아니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고유한 시간 속에서 각자의 사건을 경험하고 있겠구나


인간이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추가하며 얻어낸 첫 번째 깨달음이다. 인간은 점차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좀 더 능동적인 오늘을 늘려나간다. 동시에 앞서 배운 중요한 전제를 서서히 무시해 가기도 한다. 나의 오늘과 74억 개의 오늘들이 공존함을 실감하지 못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자기가 자기 인생을 직접 살아낸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하루를 반복해서 맞이하다 보면 타인의 오늘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특히 내가 모르는 사람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오늘은 나에게 없다. 나의 오늘 그리고 나보다 훨씬 많은 남들의 오늘이 이 순간에도 동일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기에는 나의 오늘만으로도 숨 가쁘고 벅차다.


뉴스가 신경 쓰인다는 것은 자기의 우주에 갇혀 살다가 우리의 우주로 확장시켜보는 과정에서 나온다. 지구 반대편의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오늘 또한 존중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만약 이 세상에 나의 오늘밖에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뉴스를 인정하지 않고 일기만을 쓸 것이다. 남의 오늘 이야기로 가득한 뉴스는 내가 그들의 오늘이 존재함을 일단 인정해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섰던 오늘의 무대에서 내려와 남들의 수많은 오늘들에게 기꺼이 무대를 양보하는 것. 다른 동네, 다른 나라 혹은 지구 밖에서 꾸며진 전혀 다른 오늘들을  궁금해하는 것. 이것이 뉴스를 보게 하는 겸허한 호기심이다.



둘째는 예방적 공포심이다.

사람들은 뉴스 보기를 시작하며 깜짝 놀랄만한 사건사고들을 은연중에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어감은 '기대'와 '예상'의 사이에 있다. 단순한 예상보다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느낌을 주는 '기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적극적 바람으로서의 '기대'보다는 약하다는 점을 적고 간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사악하고 못돼서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나에게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끔찍한 사건들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을 먹기 시작했다. 언론에 의해 이슈가 되고 널리 퍼져나간 사건들은 그 농도가 짙을수록 향기는 더 빠르고 멀리 퍼져 나간다.  훈훈하고 유쾌한 전개의 뉴스만을 기대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차라리 충격을 덜 받고 덜 겁먹도록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선제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뉴스는 타인의 수많은 오늘을 보여줌으로써 제한적인 시공간에 묶여있는 개인의 오늘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무시무시한 뉴스들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적어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남 일 보듯 속 편하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남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겪은 일들이 나와 내 주변에서도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옅게 품는다. 뉴스 속 사건들을 자기 삶에 적극적으로 대입함으로써 자신의 내일의 평화를 유지하고 불상사를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뉴스 소비의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 냈다. 다른 이들의 오늘을 통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사건의 경우의 수를 간접적으로 헤아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일종의 시뮬레이션 행위로서, 무슨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지 또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 알려주는 예방책으로서 뉴스를 찾는다는 말이다.



뉴스를 보면 잘 놀라게 되는 이유_수용자 관점에서


요컨대, 뉴스는 겸허한 호기심 그리고 예방적 공포심에 의해 소비된다.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나는 컨텐츠를 미룬 채 자발적으로 뉴스 앞에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질만한 화두는 대개 본래의 위험성이나 영향력보다는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신문은 할당된 지면 수로, 인터넷 뉴스는 기사수(어뷰징)로, 방송국 뉴스는 첫 소식 선정으로 그 이슈의 화제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대중은 뉴스를 어느 한 채널로만 단독으로 접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보기도 하고 출근길 버스나 택시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의도치 않게 듣기도 한다. 밤 10시 드라마 시작 전 켠 텔레비전에서 나온 뉴스도 본다. 각 뉴스 공급자는 저마다 그 시기에 가장 화두인 이슈를 최선을 다해 취재, 편집, 보도하겠지만 여러 매체에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되어있는 수용자 입장에서는 상당 부분이 중복되고 또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뉴스 공급자가 의도한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사건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사람들은 더 자주 그리고 더 쉽게 놀라도록 훈련된다. 벌써 놀람 작동 센서가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면 잘 놀라게 되는 이유_공급자 관점에서


뉴스를 제공하는 쪽도 사람들을 놀라기 쉽게 만들도록 적지 않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언론시장 자체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뉴스를 공급하고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매우 다양해졌다. 라디오, 방송, 신문, 잡지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부터 포털, 소셜 네트워크, 카드 뉴스, 블로그, 1인 언론 등 정보기술기반의 미디어까지 뉴스매체에 대한 선택권의 폭이 넓어졌다. 뉴스 수용자들은 어느 한 매체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그리고 비순차적으로 소비한다. 공급자 입장에선 고정 뉴스 소비자를 확보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소비자들에겐 언제나 매력적인 선택지들이 주어져 있고 손가락 하나 까딱으로 옮겨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디어 공급자들은 다급해졌다. 특색 있는 뉴스 컨텐츠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모바일 중심화, 유료 전환에 대한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찾은  듯해 보인다.


두렵게 만들자! 놀래키자!

낮시간, TV 채널 수를 올리다 북한에 대해 다루는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멈춘 적이 있다. 이젠 새삼스러운 북한의 전쟁 불사 성명을 두고 심각한 표정의 앵커는 한 톤 높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마치 북한의 장사정포가 서울 중심부에 떨어져 지금 당장 대피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인 것처럼 분위기를 주도했다. 화면의 절반 아래는 붉은색 배경을 둔 굵고 커다란 활자의 자막으로 뒤덮였다. 심장박동이 조금 가빠진 게 느껴졌다. 두 동공도 조금 커졌을 것이다. 앵커가 패널들에게 던지는 질문도 그들의 대답도 시청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만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인간이 내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별 거 아닌 일도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면 별거가 된다. 새삼스러운 일도 위급하게 말하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무슨 일이 날 것 같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그들의 연출법에도 채널을 고정하게 되는 힘, 공포 장사다.


물론 모든 뉴스 프로그램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뉴스 특유의 전달 방식이 주는 엄숙함도 있다. 앵커와 기자 자신들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무기력한 시청자 입장에서는 되려 그런 모습에서 사회에 대한 냉소와 소외를 느끼기도 한다. 활자매체도 마찬가지이다. 정제된 언어로 사실을 공정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지만 유가족이 울고 있는 결정적 장면이나 무심해 뵈는 서늘한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을 얼게 만들기도 한다.


정보의 유통채널을 사실상 독과점한 언론들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시키려는 이해와, 신뢰 그리고 사실을 앞세운 언론 기본의 가치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오늘날의 순진한 뉴스 수용자는 두렵고 놀라워하며 그들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수많은 언론사들 가운데에서 인지도를 얻고 구독층을 늘리는 방식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특종 경쟁이다. 특종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독(희소성)으로 가장 먼저(신속성) 어떤 사실을 알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화제성) 원리에 있다. 긴 줄 끝에 서서 비슷한 뉴스를 따라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줄을 만들고 여유롭게 깃발을 휘날리는 것, 이것이 많은 언론사들이 단독보도, 특종 혹은 낙종에 울고 웃는 이유다. 경쟁 언론사들을 단 한 번에 제압하고 뉴스 수용자들을 압도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짜릿한 특종도 결국은 누군가를 놀라게 하고 싶은 기자들의 간절한 기다림이 빚어낸 성과였던 것이다.


둘째, 현대 사회의 복잡성이 크게 증가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문제는 나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너의 문제, 우리의 문제 그리고 저들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사회가 촘촘히 연결되어 개인과 개인의 교차점이 증가할수록 갈등은 더 빈번해진다. 또 다양해진다. 그만큼 뉴스 공급자들을 바빠졌다. 보도할 내용은 넘칠 정도로 많기 때문에 각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과 지면 분배를 해야 한다. 물론 어떤 날은 뉴스로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들이 적을 수 있다. 이럴 땐 시의성이나 속보적 성격이 덜한 기획특집물 등을 추가로 구성해 당일 정해진 분량이 채워지는 편이다.

내 기억에 한해, 단 한 번도 뉴스 앵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딱히 전해드릴 소식이 없어 이것으로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신문사가 어제의 소식이 적다는 이유로


금일 신문 쉽니다


라고 알려온 적 없다.


오늘이 조용했건 시끄러웠건 뉴스 컨텐츠를 담는 전체 분량이 고정되면서 뉴스거리가 적어서 초조해지기보다는 너무 많아서 걱정인 경우가 많아졌다.  앞서 말한 대로 다양한 선택권을 가진 뉴스 수용자를 한껏 의식한 공급자들은 더 넓은 범위의 다채로운 뉴스를 제공하는 백화점식 나열을 선호한다. 자연히 문제를 제기한 개별 사건에 대한 대안 제시, 보도 이후의 상황 점검 같은 깊이 있고 입체감 있는 컨텐츠 제작은 보기 드물게 되었다. 소수의 식견 있는 독자, 시청자들만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써 뉴스의 깊이와 품질을 끌어올리기엔 상업적인 계산이 맞지 않는다. 섣부른 대안은 책임문제를 야기하고 괜한 적을 만든다는 뼈아픈 기억들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안전한 정의의 벽 뒤에 서서 남들이 잘못한 행위(언론사 자신의 과오를 깊게 보도하는 법이 없다.)를 캐내 시민들을 자극하고 놀래키는데 열중한다. 수용자는 뾰족한 대안이나 해결책은 없이 끊임없이 나오는 새로운 '문제들'에 안도감, 평화로움을 느낄 기회를 잃고 더 쉽게 놀라고 분노하며 공포에 떠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리고 뉴스는 마치 시민들로 하여금 문제를 직접 나서 해결하도록, 알아서 조심하도록 부추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난 네 편이야. 그래, 정의의 네 편 말이야.
오늘 누가  이런저런 나쁜 짓을 했대... 어이가 없지? 놀랍지 않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네가 직접 가서 혼내 줘! 난 내일 꺼 취재해야 돼. 나 먼저 간다!


복잡하고 첨예한 사안들은 언론에 의해 '다뤄지기만' 하고 있고 뉴스 수용자들을  '놀라게 하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무기력함을 일깨우며 끔찍한 사건에 대한 면역을 키워주고 있다.



절제하는 놀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은 뉴스와 함께 쉽게 놀라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다. 겸허한 호기심으로 우리들의 오늘을 다룬 뉴스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포심 내놓고 뉴스를 소비했다. 중첩되는 뉴스에 의해 사건을 과장해서 인식하며 놀라움과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뉴스 공급자는 언론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람들이 강한 잔상을 남기도록 뉴스를 전달했다. 또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뉴스거리들을 전달하기에도 바빠 뒷이야기를 마저 전하는 데에는 소홀했다. 사람들을 정의감에 불타오르게 한껏 자극시켜 놓고는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에 소스라치게 반응하는 우리의 '놀람' 기질이다.


뉴스는 수용하기에 따라 내가 겪지 못해본, 앞으로도 겪을 일 없는 사람들의 풍경을 관찰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나만의 세상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인식하고 세상에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더 자극적이거나 더 놀랍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없는 이미 놀라버린 세상이다. 우리는 적어도 인간과 사물에 대한 내 첫 반응인 '놀람'을 조종하는 리모컨을 아무에게나 내어 주어서는 안된다.




놀람을 절제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실제로 놀랍게 바꿔나갈 것이다.






[놀라지마라] 시리즈에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은 잘 못써도 새로운 관점을 진심을 담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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