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 턴 #4
서글서글한 인상에 선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여성분.
우연히 그분의 아이와 우리 큰아이가 같은 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해지면 서로 공감이 많이 될 것 같다.
매일 둘이 같이 오는 젊은 부부 한 쌍.
개인적으로 궁금하지는 않은데 이들의 입장과 동시에 알게 되는 정보 하나가 있다.
'어젯밤 부부싸움 하셨구먼...'
늘 묵묵히 열심히 하시는 1번 중년 남성분.
말은 별로 없으시지만 정말 꾸준하고 성실하시다.
회원님들에게 관심이 많은 다정하신 2번 남성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자세도 봐주시고 조언도 아끼지 않으신다.
큰 키에 카리스마 있는 말투가 매력이신데 의외로 친근하신 50대 여성분.
귀염뽀짝한 매력을 발산하시는 60대 여성분.
항상 밝게 웃으며 등장해서 회원들 한 명 한 명 눈 맞추며 인사를 하는 4번 남성분.
처음엔 수업 따라가기 바빠 관심도 없었던 회원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명확히 내 눈과 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4번 남자에게서 진한 술 냄새가 났다.
술 냄새가 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체력도 급격히 떨어진 듯 보였다.
4번으로 출발해서 수업이 끝날 때쯤엔 줄의 맨 뒤에 가 있다.
힘들다는 말을 연거푸 한다. 누가 봐도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사라졌다.
회원들은 월수금반, 화목반, 매일반 인원들이 섞여있고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장기 결석도 하기 때문에 처음엔 그가 사라졌다는 걸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하게 허전함이 느껴졌다.
다른 회원 분들도 같은 느낌을 받고 계셨다.
그리고 새삼 그 허전함의 원인이 4번 남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회원님은 술 때문에 병이라도 걸린 거 아니냐며 걱정하셨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물 안을 공유하고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나 보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해졌다.
물론 우리는 각자 어디에 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몇 살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익숙하다.
참 묘한 기분이다.
누군가를 염려하고 걱정하고 잘 되길 바란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다.
나의 가족이 아니고 친한 친구가 아니어도 그저 같은 공간을 잠시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린 서로를 염려하고 서로를 신경 써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 달 후 4번 남자가 다시 등장했다.
우리는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저 기쁜 마음으로 환영만 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때 우리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시 우리의 일부가 되어 준 것에 대한 감사였을 뿐이다.
우린 종종 타인을 통해서 나를 본다.
그리고 그들이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내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을 인연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냥 또 하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1번 남성분도 젊은 부부도 4번 남자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나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어떤 부분 하나하나가 수영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독립된 개체로 한 명씩 투영되어 존재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엔 몰랐으나 서서히 알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내 안에 늘 나와 같이 있었지만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어떤 회원의 모습에도 내가 존재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회원의 모습에도 내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는 내가 싫어하는 나도 있고 내 맘에 든 나의 모습도 담고 있다.
수영장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듯 내 안의 무의식의 장(場)을 공유하는 나의 여러 자아들의 모습이 수영장의 회원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그들을 통해 내 일상을 반추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은 어제의 나를 조금씩 성장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