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 턴 #5
수린이의 시선으로 마스터반의 스타트를 보고 있으면 그저 경이롭고 멋있고 프로의 향기가 솔솔 나는 게 그저 부럽다.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다니!
하~ 기대된다.
그런데 좀 두렵기도 하다.
물속으로 훌렁 떨어질 때의 공포와 물 표면과의 강한 마찰로 인해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숨을 쉬지 못하고 물을 먹어 버릴까 봐 신경이 쓰인다.
강사님은 시범을 보여주시고 스타트할 때의 주의사항을 강조하셨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몸을 던지면 큰 부상도 입을 수 있기에 강사님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몸을 숙여 무릎을 살짝 굽힌 후 두 손과 한쪽 발의 발가락을 수영장 테두리에 걸고 또 다른 한쪽 발은 내 몸을 지탱한다.
시작 소리와 함께 다리를 펴고 팔을 두 귀가 스치게 올려 손을 포개 스르륵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스타트 기초를 배우는 중이라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아니라 포물선을 그리며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퐁당 점프가 아니라 쏘옥 하고 잠영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잠시의 두려움만 이겨 낸다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크나큰 나의 오산이었다.
불과 몇 분 전, 물 밖에서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을 바라보며 평온함을 느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수영장 풀이 마치 지옥의 유황불처럼 느껴졌다.
심장은 두근두근하며 뒷골이 오싹해진다.
사정없이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강사님이 알려 주신 방법대로 스타트를 해본다.
철퍼덕! 우왁! 코로 물이 들어갔다.
두려움에 떨다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들어 올린 채 들어갔나 보다.
크게 물 따귀를 맞았다. 따꼼얼얼하다.
강사님이 다시 한번 회원들에게 강조하신다.
배로 떨어지면 아프니깐 조심해서 하셔라, 포물선을 그리면서 몸을 살짝 던져라…
특히 배가 빨개지면 자세 잘못하고 있는 거니깐 신경 쓰셔라 등등…
여러 번의 연습을 하고 나니 감이 오는 것 같았다.
그때 내 눈에 띈 젊은 남자회원의 배, 그냥 배가 아니고 새빨개진 배였다.
처음 볼 때 피가 나고 있는 줄 알았다.
"와~! 진짜 아팠겠다."
'자세를 요래 요래 바꾸면 될 것 같은데, 계속 저렇게 하면 꽤 통증이 있겠는데?'
'몸통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서 하면 저 정도의 겨울쿨톤레드색깔 배는 안될 텐데.. '
그가 연습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자꾸 참견을 하게 된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열정의 시간을 보내고 샤워실로 갔다.
난 오늘 나름 잘한 거 같다.
뿌듯한 맘을 안고 함박웃음 지으며 거울에 낀 수증기를 닦아냈다.
헉!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 배에도 새빨갛고 커다란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내 배도 이런데 내가 누굴 걱정하고 판단한 거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성경의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그리고 어릴 때 울 엄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도 떠올랐다.
너나 잘해라!
샤워하는 내내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느낌이다…
그래 나나 잘하자!’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이 또한 내겐 마음공부의 화두를 던져준 소중한 에피소드가 되어 주었다.
다음날 나는 [빨간 신호등 깨달음]을 가슴에 새기며 수영장에 갔다.
교만할 뻔했던 내 마음을 점검하고 나니 스타트 연습을 할 때마다 기분 좋은 수련을 하는 듯 느껴질 것 같았다.
내 몸과 마음의 동시성장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웬걸?
갑자기 센터 방침상 중급반은 스타트를 금지한다고 한다.
왜? 왜? 도대체 왜?
“다시 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아쉬운 마음을 애써 접어 넣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상급반 어떤 고령의 회원님께서 자유수영시간에 혼자서 스타트 연습을 하시다가 부상을 당하셨다고 한다.
센터는 비상이 걸렸고 모든 반이 조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그냥 상상 스타트라도 실컷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