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TURN 턴 #7

by 더앨리스

몇 년 전 어느 날 아침,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득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에 너무도 낯선 내가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었고 그 눈빛도 너무 낯설었다.


얼굴은 푸석해 보였고 생기가 없었다.


평소 아빠를 붕어빵처럼 닮았다는 말을 듣던 나였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은 40대 후반쯤의 피로함 가득했던 엄마의 모습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런데 이때 내 나이는 고작 서른일곱이었다.


이 시기는 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1년의 육아휴직을 보낸 뒤 복직을 해서 한참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두 번의 출산이 가져다준 급속노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새벽부터 저녁까지 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흔적이었을까?’


‘딱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뭘까??’



기분이 좋지 않아 대충 가방을 챙겨 출근을 했다.


다음날에도 거울 속 나라고 하는 낯선 여자가 또 다른 나를 쳐다본다.


나는 이 낯선 감정에 좀 놀라긴 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분명 큰 감정의 동요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이날은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눈물은 긴 시간 멈추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게다가 이렇게 생뚱맞게 흐르는 눈물에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다 보니 슬퍼졌다. 그리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갑자기 서러웠으며 수치심도 들었다.


급기야 내 존재 자체가 싫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번아웃?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또다시 생각하지도 못했던 타이밍에 이상한 증상을 겪어야 했다.


앞서 과호흡을 겪었던 얘기를 했었는데 그 일이 있기 전에 전조증상이 있었다.


회사에서 가끔 직원들 앞에 나가 발표할 일이 있었는데 그날도 특별하지 않게 발표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 두근거리는 심장, 더듬더듬 무슨 얘기를 한지도 모르게 그 시간을 겨우 보냈다.



나는 이 때도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내가 무대공포증이 생겼나 봐. 개망신만 당했네,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지금 당장 사표 던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너무 짜증 나!,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고는 그날의 고통만 되새기며 별기대감도 감흥도 없이 그냥 살았다.


특별하지 않은 장소, 특별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이런 식의 이상증상을 여러 번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늘 그랬듯 그 신호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리고 일 년 후쯤이었을까?

극심한 어지러움증으로 쓰러졌다.

눈을 뜨면 눈앞의 모든 게 흔들렸다.

마치 내 마음상태가 내 몸의 상태로 표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돌고 도는 나.

어떠한 확신도 희망도 없이 어제도 빙글빙글 오늘도 빙글빙글.


가만히 누워 있어야만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첫째의 초등학교 진학시기에 휴직을 냈는데 이 어지러움증이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 시기를 딱 맞춰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힘없이 침대 위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내 남편, 아이들, 부모님, 친구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에 대해서는 몰랐다.


나는 꿈이 없었고 취미도 없었다.


그나마 꿈이라면 돈이나 많이 벌어서 집도 사고 차도사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였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 이라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 드라마나 실컷 몰아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모른다는 그 사실을 마주하고 인정하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를 억울하게 만들고 수치심이 들게 했던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음을…


그래서 나는 나를 몰랐지만 이제 나는 나를 알아야만 했다.


낯설어진 내가 거울을 통해 나의 내면을 보여주며 경고를 해 준 그날,

나는 깨달았어야 했고 변화를 시도했어야 했다.


한동안 불편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나는 문 하나를 열었다.


타이밍이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나는 본격적으로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를 알고 성찰하는 [마음공부]라는 것과 마음공부의 실천으로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마음챙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마음공부란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명 도를 아십니까?로 통칭되는 사이비종교인들이 길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어머~!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잠시 시간 내주시면 같이 마음공부 하면서 조상님께서 님께 주시려고 하는 복 받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던 장면이다.


그런데 마음공부라는 단어가 이렇게 심오하고 중요하며 귀한 의미가 있었다니!



이렇듯 마음공부를 통해 내 마음을 알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배우고 익히다 보니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세상이 원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나만 갖고 있는 진짜 나의 모습을 만날 때의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충격적이고 때로는 슬프고 또 때로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용서와 치유를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돈이나 명예 같은 반짝이는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걸로 부족하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내 삶의 목적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