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수영장엔 텃세부리는 사람은 없어요.그냥꼰대만있을 뿐

start again #5

by 더앨리스

처음 수영센터에 등록을 한 날 나는 무지 설레었다.


어떤 마음을 갖고 가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을 열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수영을 시작하고 수영복 러버가 된 어떤 분의 글을 보고 있었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점점 더 화려하게 나타나는 예쁜 수영복 사진에 눈이 현옥 되어 아차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링크된 수영복을 몇 벌 살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른 분의 글을 읽었다.


이분은 수영대회에 여러 번 출전한 일반인 선수였다.


뒤늦게 시작한 수영에 빠져 각종 수영대회를 섭렵하며 대회를 준비하는 방법과 팁들을 전수 중이셨다.


너무 멋있었다. 나는 수영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수영대회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상상을 해버렸다.


즐겁게 여러 개의 글을 읽고 있는데 눈에 띄는 글들이 반복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수영장 텃새에 관한 내용이다.


기존의 회원들이 유치 찬란한 방법으로 새로 온 회원을 따돌리는 내용부터 반을 승급하면 무조건 예쁘지도 않은 단체 수영모를 맞춰야 하고 기존 회원들에게 떡을 돌려야 하는 쌍팔년도 스타일의 문화가 있었고 그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 센터도 그런 문화가 있는 건 아닐까?’

‘만약 나도 유사한 상황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기싸움에 매우 취약한 인간이다.


텃세가 존재하는 곳이 회사나 학교 같은 선택불가결한 곳 이었다면 나는 늘 그렇듯 재빨리 내 존재감을 작게 만들어 눈에 띄지 않는 약자 포지션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쟁터가 내가 선택한 운동센터라면 나는 당연히 초장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센터에 고인 물은 많았지만 텃세는 없었다.


고로 지금까지도 열심히…는 아니지만 계속 다니고 있다.


수영장 탈의실엔 특이점이 있다.


처음 출석한 새로운 회원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초보가 눈에 띄는 이유는 보통 탈의실에는 홀딱 벗은 사람과 일상복을 입은 사람 그리고 유니폼을 입고 청소를 해주시는 여사님만 존재하는데 이 세 가지 유형이 아니면 신입회원인 것이다.


탈의실에서 바로 수영복을 갈아입는 사람 = 신입



신입회원 3명 중 1명 꼴로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샤워를 생략 한 체 샤워실을 통과해 곧장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샤워를 꼭 하고 샤워실과 연결된 수영장 입구로 들어가야 하는데 처음이라 그 룰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씻지 않는 초보자가 나타나면 주변사람 몇 명이 자연스럽게 주목한다.


그리고 서로 눈치를 본다.


기존회원들은 텔레파시로 ‘저분 그냥 들어간다. 네가 얘기 좀 해라!’

‘아냐, 네가 얘기해 네가 더 가깝게 있잖아!’라며 서로 뜨거운 눈빛교환을 한다.


그때 70대 회원님 한 분이 앞으로 성큼성큼 나오셨다.


“아가씨! 처음인가 봐 용? 수영장은 씻고 들어와야 혀~ 모를 수는 있지.”

“아니, 내가 말혔는데 왜 그냥 들어가? 집에서 씻고 왔다고? 우리도 다~~ 씻고 왔어유~.”

"안씻고 들어가면 물이 드러워지잖유~. 한 명이 두 명 되고 두 명이 세 명되고~ 아유~."


신입회원인 그녀는 이런 지적이 민망했는지 서둘러 수영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뭔가 불편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부터는 씻고 오겠지....


얼마 전 탈의실에 있는데 한 사람이 자꾸 눈에 띈다.


예쁘고 어려서 눈에 띄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어색한 초보루틴이 내 레이더에 걸려버렸다.


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날따라 탈의실에 사람들이 적었고 70대 회원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모른 척할까?’

‘아~. 아무도 신입회원의 존재를 눈치 못 챈 거 같네..’

‘지금 얘기해주지 않으면 오늘 뿐 만 아니라 매일 그냥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씻고 들어오셔야 해요~!”


역시 그녀는 고전적인 대사를 한다.

“집에서 씻고 왔는데요?”


“저희도 다 씻고 왔어요. 수영장 룰입니다.”


말하면서 사실 좀 떨렸다.


괜히 예쁘고 젊은 신입회원에게 이유 없이 텃세 부리는 고인 물 같은 느낌이 난다.


그러나 그녀가 날 텃세 부리는 사람으로는 안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냥 꼰대 정도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건 사실이니까.


요즘은 타인에게 하는 모든 말이 조심스럽다.


특히 MZ세대 혹은 젠지세대라고 하는 이들의 가치관은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 기준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인과 자신 사이의 [선]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느 세대나 관계 속에서 서로 간의 거리와 선(기준)이 중요하지만 유독 그 선이 매우 타이트하고 민감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했음에도 괜한 오지랖을 부려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뭐 또 좀 그러면 어떤가!

내가 오지랖이 태평양이라서 문제 되는 건 없지 않을까?


우리 수영장의 모든 회원들이 깨끗한 수영장 물속에서 쾌적하게 수영을 하는데 일말의 보탬이 된다면야 언제든 기꺼이 나는 꼰대가 되려 한다.


그러니...




우리 수영장엔 텃세는 없습니다. 그저 걱정 많은 꼰대만 있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