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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Sep 30. 2015

생일

뭣도 없이 나이만 먹는 날

일 년에 한 번씩,

'나이'라는 천재지변

딱히 일궈 놓은 것 없는 인생밭에 

의미를 내려다.


그날이 바로 오늘, 생일이다.

오늘 하늘은 유난히도 많은 비를 뿌린다.

빗소리를 듣는 느낌과 생일날의 느낌은 뭐랄까,

사뭇 닮았다.


괜히 두근거린다거나,

다소 센치해진다거나,

이따금씩 울컥하기도 하는

그런 기분들이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일을 맞는 태도에 있어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에는
날 잊은 사람들만 보았는데
지금은 단 몇 초라도
나를 기억해준 사람들이
보인다는 거다.


지금 내 옆에는

직장 없는 딸에게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 주겠다며

한우를 두둑이 넣어 주시는 엄마도 있고,

앞가림은 알아서 좀 하라며 잔소리를 하시면서도

지폐 몇 장을 손에 꼭 쥐어주시 아빠도 있고,

빗속을 뚫고 먼 길을 달려와 주친구도 있고,

sns에 짧게나마 몇 줄 축하 인사를 남겨주는

고마운 지인들도 있다.


가장 잊고 싶은 날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오늘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날로 만들어 준 그들 앞에서

"고맙다"는 한 마디는 턱없이 작기만 하다.


나이 하나를

꾸역꾸역 넘기느라 그랬을까.

먹은 거 없이 배가 부르다.

동갑인 친구들을 보 새삼 느끼지만

그들의 나이는

내 것과 한참 다른 듯 보인다.


숫자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나이보다

먼저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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