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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Nov 21. 2015

콩깍지

내가 너의 페이스북을 보지 않는 이유

콩깍지.

콩을 떨어낸 껍기를 가리키는 단어로,

눈을 가려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흔히 연애나 썸의 현재진행형인 이들에게

이것이 씌였다고들 하지.


나 역시 이미 몇 해 전부터 이 녀석을 

데일리 렌즈 마냥 눈에 끼고 살아왔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내 콩깍지는

당신이 기대하는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지금 내 두 눈에 씌인 건
오로지 보고픈 것만 보게 하고
불편한 건 애초에 차단해 버리는,
아주 위험한 콩깍지다.


것은 내 안에 상주하면서

외부정보들을 편파적으로 검열

썩어빠진 아집살찌우고

자기합리화 성벽 견고하게 다진다.


예전 만큼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이유도 

이 콩깍지의 자가필터링 덕분이다. 

로그인과 동시에 

실시간 행복경쟁이 시작되는 이곳에서는

내가 입은 원피스가 대학동창이 입은 그것보다

더 예뻐 보여야 비로소 안심이 되곤 했는데,

나는 이 치열한 런웨이진저리 나도록 싫었다.

좋아요가 실은 좋아요가 아닌,

축하할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보다

상대적 박탈감이 앞서는,

내 삶보다 멋져 보이는 것들은

마주하기도 싫은 치기

언제부터인가 거대한 콩깍지로 둔갑하여

내 눈과 귀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설령 뉴스피드에 실린 이미지들이 전부

허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sns와 절교한 지금,

왜 나는 여전히 콩깍지를 벗지 못한 채

삶을 편식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점점 고립되는 거겠지.
겹겹이 쌓인 콩깍지 섬에 영영 파묻혀 버리겠지.


고해성사를 해야겠다.

나는 그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오픈마인드인 척,

뭐든 받아들일 수 있는 척을 해왔습니다.

상대가 어떤 지적을 하건

쿨하게 상처 받지 않은 척했고,

누군가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박수를 쳐 본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겉으론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도

속으론 두 사람을 비교선상에 놓고

 잘난 이와 더 못난 이를 구분 짓는 사람,

그게 바로 나랍니다.

저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우리 좀 더 솔직해져 보자. 

당신도 그렇잖은가?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처럼, 

더 잘난 삶 앞에서 겪을 패배감이 싫어 

부러 외면한 적, 있지 않은가? 


물론 주변에 존경받아 마땅한 누군가가 있다면

보고 반성하고 본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설사 그가 나와 동갑일지라도,

혹은 나보다 한참 동생일지라도,

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내 스승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나에득도의 경지

다음 생에나 찾아올 것 같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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