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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Nov 25. 2015

향기

섬유 유연제 같은 사람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중

유독 뒤를 돌아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기분 좋은 향이 나는 사람.

그들에게서는

콧등이 간질간질해지고

온몸의 세포가 나른해지는 그런 향이 난다.


까맣게 꺼져 있던 동굴 속에

작은 불씨 하나가 튀어 든 느낌이랄까.

드물게 이런 향인(?)을 만날 때면

다소 맹목적인 수준의 호감과

뜬금없는 호기심이 번에 깨어난다.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방금 전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고

또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저 옷은 직접 빨래한 걸까?


조금은 변태스럽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좋은 향을 내뿜는 사람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내 오감을

불쑥불쑥 일으켜 세운다.


기분이 땅끝까지 푹 꺼져 있다가도 

갑작스럽게 날아든 분자 알갱이에

이렇듯 확 기뻐지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참 미미한 존재였구나, 다.


3년 전이었나.

제안서 마감 때문에 밤샘야근을 하던 날이었다.

최종기획서를 다듬기 위해

별 생각없이 같은 팀 대리님 옆으로 가게 됐는데,

그에게서 향이 나는 것이었다!

풋풋한 아기의 살냄새 같기도 하고, 

소풍 전날 이불 속에서 맡아 본 냄새 같기도 한,

그 어떤 향수도 흉내내지 못할 그런

섬유 유연제 특유의 착한 향기였다.

평소 무뚝뚝하고 꺼칠하던 그였기에

반전의 충격은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아주 찰나였지만,

위로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스트레스로 찌들어 있던 나를 

보이지 않는 품으로 감싸안고 달래주는 느낌. 

그날의 새로운 각성으로

사람을 기억할 때 후각에 의존하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사람에게서는
좋은 향이 난다.


내가 섬유 유연제 같은 향을 쫓는 건 어쩌면

오래 전 엄마 품에서 맡아 봤던

향수(鄕愁) 같은 냄새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잠깐이라도 나를 스쳐간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나에게서는 어떤 향이 나는지.

나를 어떤 향으로 기억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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