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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Dec 20. 2024

엘 그레코 ‘오르가스백작의 매장’


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스페인-엘 그레코 ‘오르가스백작의 매장’



톨레도 대성당을 두루 살펴보고, 톨레도의 골목길을 따라 걸어 산토 토메 성당(Iglesia de Santo Tome) 앞에서 입장을 기다린다. 성당 옆 카페 상호도 ‘엘 그레코’이다. 톨레도대성당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규모의 이 성당에 엘 그레코(El Greco)의 걸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이라는 성화가 걸려있다. 



교회 안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서 있었는데, 마치 그림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엘그레코의 또 하나의 명작 한 점을 보러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골목길을 따라 내려온 셈이었다. 이 성화를 보기 위해 순례자와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리는, 성당이긴 한데, 마치 미술관 같은 산토 토메 성당이다.



El entierro del señor de Orgaz, más conocido como 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 es un óleo sobre lienzo pintado en estilo manierista por El Greco entre los años 1586 y 1588. Fue realizado para la iglesia de Santo Tomé de Toledo, (España)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_entierro_del_se%C3%B1or_de_Orgaz_-_El_Greco.jpg



1586년부터 1588년까지 제작된 이 그림은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로, 천상과 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함께 세계 3대 성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톨레도 지방의 귀족으로 카스티야왕국의 수석 공증인을 지내고 1323년 죽은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매장되는 순간, 성 스테파노와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천국에서 내려와 오르가스 마을의 영주이자 1323년 사망한 곤잘로 루이즈 데 톨레도 (Gonzalo Ruiz de Toledo)를 직접 매장을 했다고 하는 전설이 이 성화의 주제이다. 


엘 그레코 (El Greco)는 1586년에 작품 제작 의뢰를 수락했는데, 이는 오르가스 백작이 매장된 지 2 세기 반이 조금 넘은 후였다. 1586년에서 1588년에 걸쳐 그린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오르가스 백작은 신앙이 매우 돈독하였고 동정심이 많아서 살아있는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산토 토메 성당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성직자와 신도들이 비교적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성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오르가스가 죽으면서 교회에 많은 재산을 유증(遺贈)했는데, 그 후세들이 이 사실을 부인하고 유언을 이행하지 않자 이 성당의 사제였던 안드레스 루네스(Andrés Núñez)는 법정 투쟁을 벌였고, 결국 승소하여 고인의 유언을 실행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기념하고 백작의 후원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백작 사후 250년쯤 지나서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 관한 전설을 그림으로 그려 성당에 전시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톨레도에 이주하여 작업했던 엘 그레코에게 성화를 주문 제작한 것이다.

이 그림은 단순한 장례식 그림을 넘어, 신성과 인간, 천상과 지상이 만나는 특별한 순간을 담고 있다. 그림은 천상계와 지상계를 명확하게 위아래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천상계(天上界) 위쪽 중앙에 오른팔을 뻗고 있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림 한가운데 배치된 천사가 오르가스 백작의 ‘의로운 영혼’을 어머니의 태(胎)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El_Greco_The_Burial_of_the_Count_of_Orgazdetal_Detalle de la Gloria_Dominio públicover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_Greco_-_The_Burial_of_the_Count_of_Orgazdetal7.jpg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잠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고민을 했었다. 그 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좌우편에 성모 마리아와 요한 세례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또 마리아 뒤쪽으로는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노란색 옷)도 보인다. 요한의 뒤 여러 인물 중, 검은 머리의 뚜렷한 옆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스페인 왕이었던 '펠리페 2세'이다. 마리아와 성 요한의 아래쪽으로는 날개를 펄럭이면서 죽은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며 날아가는 천사가 들고 있는 흐릿한 영혼이 죽은 오르가스의 영혼이다. 바로 이 오르가스 영혼이 하늘에 당도하자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이 그 영혼을 천국의 세계로 받아줄 것을 예수에게 간청하는 형상이다. 그리고 이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려고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El_Greco_-_The_Burial_of_the_Count_of_Orgazdetal_Detalle de la parte terrenal_Dominio públicover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_Greco_-_The_Burial_of_the_Count_of_Orgazdetal1.jpg



지상계(地上界)의 하단부는 질서 정연하고 그 형상들이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인물들 중에는 화가 자신(성인 모자 뒤)과 그의 아들(좌측 하단) 호르헤이도 보이며, 그가 가리키는 손수건에는 자신이(엘 그레코의 아들 호르헤이) 태어난 1578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기도 하다. 그 아래로 섬세하게 표현된 갑옷을 입은 죽은 오르가스 백작과 양쪽에서 그를 들고 있는 두 성인이 보인다. 왼편의 부제복을 입은 사람은 성 스테파노로, 서기 35년 부제로서 최초로 순교한 성인이다. 그가 입은 예복에는 성난 군중에게 돌을 맞고 있는 순교 장면이 그려져 있다. 성자의 예복을 입고 주교관을 쓴, 오른편에 있는 사람은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이다. 두 성인이 백작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화 오른쪽 하단에 투명한 중백의(소매가 넓은 흰 성직자복)를 입은 사제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 이 성당의 사제인 안드레스 루네스이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 종교, 철학, 예술이 어우러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삶과 죽음, 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톨레도를 방문해 이런 그림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일인데, 의외의 그림 감상으로 신장이 좋지 않아 투병 중인 아내와 대장암 수술을 받은 나에겐 삶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림 속 인물들은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엘 그레코의 독특한 화풍은 당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그는 예술계에서 고립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의 그림은 후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정작 그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975px-El_Greco_-_Portrait_of_a_Man_-_WGA10554_Public Domain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_Greco_-_Portrait_of_a_Man_-_WGA10554.jpg


975px-El_Greco_-_Portrait_of_a_Man_-_WGA10554_Public Domain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_Greco_-_Portrait_of_a_Man_-_WGA10554.jpg



생전의 그레코는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지 못해 늘 빚에 쪼들리고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도 성당 측으로부터 정당한 그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자 채권자들의 빛 독촉에 의해 소송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예술가로서 창작활동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던 엘 그레코의 생활고는 그림 속에도 잘 나타나 있는 듯했다. 인물들의 긴 얼굴과 날카로운 윤곽선은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엘 그레코의 고독하고 절박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그의 고뇌와 열정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만의 표현 방식이 아니었을까? 


세계 3대 성화로 꼽히는 이 그림은 거위도 아닌데 황금알을 낳고 있었다. 입장료가 2.5~3유로,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람객이 끊이질 않는다. 성화 밑으로 백작의 무덤이 있다. 묘비에 ‘여기 곤살로가 잠들어 있다(AQVI YACE)’고 적혀 있다. 성당은 물론이고 이곳 사람들까지 백작의 선행으로 비롯되어 그려진 성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A) 톨레도

스페인 똘레도 톨레도

B) 산토 토메 성당

Pl. del Conde, 4, 45002 Toledo, 스페인

C) Monasterio de San Juan de los Reyes

C. de los Reyes Católicos, 17, 45002 Toledo, 스페인

D) 톨레도 대성당

Calle Cardenal Cisneros, 1, 45002 Toledo, 스페인

E) 스페인 45004 Toledo, Bajada San Martín, 산마르틴 다리

스페인 45004 Toledo, Bajada San Martín, 산마르틴 다리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 수도원 Monastery of San Juan de los Reyes


http://www.sanjuandelosreyes.org/en/welcome-to-san-juan-de-los-reyes/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7006&docId=6120301&categoryId=67682


San_Juan_de_los_Reyes,_Toledo_(Jenaro_Pérez_Villaamil *)_Public Domain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n_Juan_de_los_Reyes,_Toledo_(Jenaro_P%C3%A9rez_Villaamil).jpg


Jenaro Pérez de Villaamil y d'Huguet (3 February 1807 – 5 June 1854) was a Spanish painter in the Romantic style who specialized in landscapes with figures and architectural scenes. He often inflated the scale of the buildings relative to the figures to make them more impressive. [출처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Jenaro_Pérez_Villaamil ]


https://en.wikipedia.org/wiki/Jenaro_Pérez_Villaamil


1280px-Escudos_de_los_Reyes_Católicos_en_San_Juan_de_los_Reyes_(Toledo,España)_Public Domain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scudos_de_los_Reyes_Cat%C3%B3licos_en_San_Juan_de_los_Reyes_(Toledo,Espa%C3%B1a).JPG


1280px-Escudos_de_los_Reyes_Católicos_en_San_Juan_de_los_Reyes_(Toledo,España)_Public Domain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scudos_de_los_Reyes_Cat%C3%B3licos_en_San_Juan_de_los_Reyes_(Toledo,Espa%C3%B1a).JPG




우리는 다시 골목길을 돌며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 수도원을 보고 또 골목길을 다시 돌아 두 개의 다리 중 하나인 싼 마르틴(San Martin) 다리를 걸어 톨레도를 빠져나온다. 다리 오른쪽에 언덕에 야생으로 자란 알로에가 지천이다. 알로에 꽃대가 나무같이 길게 자라고 있었다. 중세 역사 속에 손을 얹은 느낌으로 싼 마르틴 다리 난간의 울퉁불퉁한 석재 위로 손을 얹어 본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날씨는 온화하였다. 그러나 온몸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살짝 느껴지는 톨레도의 겨울 날씨다. 1월에 여행을 한다면 두터운 점퍼는 여전히 유용하다. 우리는 이곳 레스토랑 ‘라 쿠바나’에서 하몽에 레드와인을 한 잔씩 하며 톨레도 골목을 걸으며 몸에 스며들었던 한기를 덜어낸다.


하몽은 소금에 절인 돼지 뒷다리를 얇게 저며서 먹는 음식으로 이곳 사람들은 빵과 함께 먹기도 하고 와인에 곁들여 즐겨 먹는다. 이어서 생선 요리가 나왔다. 우리네 생태 같은 생선에 소스를 얹은 요리인데 메를루사라 한다. 맛은 밋밋하다. 깨끗하게 접시를 비우고 시장기를 채운다. 나는 여행을 하면 주로 현지식을 좋아한다. 여행 내내 현지식을 먹어도 그다지 불편함을 모른다. 가끔 보면 소주, 고추장, 컵라면 등을 가져와 먹고 마시는 분들을 보게 된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0942&docId=1092591&categoryId=32571


입맛은 오랜 시간 길들여진 습관일까, 아니면 단순한 취향의 차이일까? 오랫동안 길들여진 입맛은 변하기 어려운 것일까? 물론, 익숙한 맛을 떠올리며 향수병을 느끼는 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겠지만, 나는 새로운 맛과 문화를 경험하며 넓어지는 식도락 세계에 더 매료되는 편이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미각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가능한, 그리고 적극적으로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현지인들이 마시는 술과 음료를 마시는 편이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도 무난히 먹는다. 아니, ‘잘 먹는다.’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물론 약간의 노력은 필요한 일이지만, 입에 맞든 안 맞든 음식도 문화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익숙한 맛을 찾고, 누군가는 새로운 맛에 도전한다. 어떤 방식이든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다만, 나는 현지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지식을 선호한다. 주는 대로 잘 먹는 것도 여행이고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는 음식이면 더욱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으로 비위가 좋은 모양이다. 어머니께 감사할 일이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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