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스페인광장과 마요르 광장을 거쳐 프라도미술관에서 중세 스페인의 수작으로 알려진 그림들을 본 필자는 잠시 마드릿 레판토 면세점에 들렸다.
레판토는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스페인원산의 자사브랜드 가죽제품을 취급하고 있는 상점이다. 중세 시대에나 필요했을 철제 갑옷도 상점에 있다. 금색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철제 갑옷에 긴 창을 들고 서있는 돈키호테 모형 옆에서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축소되어 만들어진 범선과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 다양한 방패와 도검류들이 과거 대항해시대 이들의 영화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들의 과거의 영화가 상점 안으로 들어와 박제된 듯 느껴졌다. 레판토 상점의 여직원에게 ‘레판토’라는 상호에 대하여 물어보았더니 이네들이 잘 쓰지 않는 영어를 동원하여 레판토 해전을 아주 열렬히 설명하였다. 상점들 사이로 여행객은 넘치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꼬리를 잇는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레판토 해전
여기서 잠깐, 면세점 여직원이 필자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했던 레판토 해전에 대하여 조사를 좀 했다. ‘Lepanto 해전’은 1571년 10월 7일 베네치아 공화국(교황 비오 5세 치하의), 교황령(나폴리와 시칠리아, 사르데냐를 포함한), 스페인 왕국과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 공국, 몰타 기사단 등이 연합한 신성 동맹의 갤리선 함대가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제국과 벌인 해상 전투로 오직 노를 젓는 전함들만으로 치러진 전투이다. 이 마지막 중요한 해상 전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결정적인 전투 가운데 하나로 레판토 전투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추는 다른 쪽으로 흔들리기 시작해, 부유함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세계의 패턴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바뀌지 않아 중동과 유럽 사이의 계속된 다툼의 전환점이 되었다.
면세점을 나온 우리는 이곳의 한국식 레스토랑에서 무늬만 한식 정도인 점심 식사를 한다. 그런대로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빈 접시가 많은 것을 보니 그런대로 맛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오후 일정의 목적지인 톨레도*로 향한다.
A) 톨레도
스페인 똘레도 톨레도
B) 톨레도 대성당
Calle Cardenal Cisneros, 1, 45002 Toledo, 스페인
C) Alcantara Bridge
스페인 45006 똘레도 톨레도
D) San Martin
스페인 45004 Toledo, Bajada San Martín, 산마르틴 다리
마드릿에서 60여 분 남짓 달려왔다. 천년의 고도 톨레도를 건너다보며 다리 앞에서 내린다. 이곳은 불법정차구역이란다. 스페인 관광법은 불법 주정차의 경우 엄청난 벌금을 물린다 한다. 현지 가이드가 상황을 설명하며 서둘러 내리라 한다. 말없고 사람 좋은 버스기사 엔리케는 우리 일행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휑하니 달려간다.
* Toledo 톨레도, 발음상의 문제이니 톨레도건 똘레도건 문제되지 않는데, 필자는 똘레도로 읽고 톨레도로 쓰기로 한다. 각자 편한 대로...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도시를 감싸고 타호강이 휘감아 돌면서 흐른다. 과거 로마시대에는 ‘정복되지 않는 도시’라는 의미로 ‘똘레툼’이라 하였다. 이후 1) 서고트 왕국과 2)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같은 의미로 ‘톨레도’로 불렸다. 771년에는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3) 무어인들의 수도였고 요새였다. 그 이후 1085년 알폰소 6세가 다시 탈환하고 1561년 마드릿으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톨레도는 이베리아반도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하여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 문화 유적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필자 주]
1) 서고트 왕국(Goth, 톨레도왕국, Reino visigodo): 서고트족이 415년 로마에서 아키텐을 정식으로 양도받아 건설한 게르만 부족 국가로 711년 이슬람교도의 침입을 받아 멸망함,
2) 카스티야 왕국 (Reino de Castilla)은 중세 유럽 이베리아 반도 중앙부에 있었던 왕국이다. 레콩키스타에서 주도적 역할을 완수하였으며, 훗날 아라곤 왕국과 통합하여 통일 스페인 왕국의 핵심부가 되었다.
3) 이베리아 반도(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를 정복했던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 세력이다. 이들은 8세기 초, 우마이야 왕조의 지원을 받아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여 기독교 세력을 몰아내고 약 800년 동안 이 지역을 지배했다.
에스칼레라스 데 라 그랑하 Escaleras de La Granja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성곽을 따라 걷는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른다. 가파른 로다데로(Rodadero) 언덕을 따라 산을 절개하지 않고 돌산을 일정한 높이로 파고 들어가 기둥을 세우지 않은 에스컬레이터다. 언덕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며 경관 훼손을 최소화한 디자인으로 설계, 시공되었다. 스페인의 건축가 마르티네즈라페나(Jose Antonio Martinez Lapena)의 설계로 2001년에 카스티야 라만차 건축상(Premios Castilla La Mancha de Arquitectura)을 받기도 한 ‘에스칼레라스 데 라 그랑하’이다. 마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중세 시대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Escaleras Mecanicas de la Granja - All You Need to Know BEFORE You Go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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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곳, 톨레도로 들어가는 방법은 싼 마르틴(San Martin) 다리와 알칸타라 다리 (Puente de Alcántara) 두 개밖에 없다. 차량 진입은 불가한 다리들이다. 싼 마르틴 다리 위쪽으로 최근에 놓은 다리가 차량 통행용 다리다. 사진에 담아 봐도 그리 큰 다리가 아니다. 톨레도로 들어가는 차량은 모두 하나의 다리로 출입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아무튼 다리만 봉쇄하면 타호강이 천연의 해자 역할을 하여 적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요새였다.
스페인 역사와 문화를 탐방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다리다. 다리의 사전적 의미와 기능은 물을 건너는 시설물(橋梁)이지만 스페인에서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역사, 문화, 그리고 지리적 특성을 아우르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산이다.
특히 톨레도의 싼 마르틴 다리와 알칸타라 다리는 각각의 독특한 매력과 역사를 간직하며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싼 마르틴 다리 (Puente de San Martín)
톨레도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12세기 중반에 건설되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톨레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타호 강과 톨레도 시내의 전경은 가히 장관인데, 다리의 양쪽에는 탑이 있으며, 과거에는 도시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1280px-St._Martins_Bridge,_Toledo_Public Domain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t._Martins_Bridge,_Toledo.png
톨레도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으며, 싼 마르틴 다리는 도시의 번영과 함께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톨레도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의미의 유산이다.
알칸타라 (Puente de Alcantara) 다리
톨레도를 감싸고 부드럽게 타호강이 흐르고 있고 두 개의 암벽 언덕 사이로 강폭이 좁은 협곡을 택하여 건설된 다리다.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를 뜻하는 말이다. 교각 하나가 성채 쪽 강안으로 세워져 있고 교각을 지지 삼아 아치형으로 축조된 다리다. 단순하게 그냥 보더라도 저런 형태의 다리 축조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아니, 옛날 옛날에 그것도 아주 오랜 옛날(104년에서 106년)에 지은 다리가 이리 오래 서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현대 공법으로도 과히 쉽게 지어질 것 같지 않은 다리의 구조를 보고 나는 내심 놀란다. 로마 시대의 건축기술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다리다. 자재 또한 석재여서 다리에 걸리는 하중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로마시대에 세워졌다는 저 다리,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도 견고하게 남아 있는 알칸타라 다리는 톨레도의 역사를 켜켜이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다.
1449px-001_Alcantara_-_the_roman_bridge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001_Alcantara_-_the_roman_bridge.jpg
Alcántara Bridge by Juan Laurent, c. 1864–1870, Department of Image Collections, National Gallery of Art Library, Washington, DC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c%C3%A1ntara_Bridge_by_Juan_Laurent.jpg
더구나 그 아래로 흐르고 있는 저 타호강(Rio Tajo)도 만만치 않은 강이다. 궁금해서 조사해 보니 타호강은 포르투갈어로 테주(Tejo), 영어와 라틴어로는 타구스강(Tagus River)이라 부른다. 길이 1,007km로 이베리아반도에서는 가장 긴 강이다. 스페인의 중심부 카스티야 지방에서 발원하여 포르투갈 리스본을 통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저 물살이 항상 평온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1257년 홍수로 크게 훼손된 교각에 보강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칠지만 육중한 석재 난간 사이를 꺾쇠 모양의 철물로 보강하여 더욱 굳건한 모습이다. 과거 고트족을 물리치고 톨레도를 장악했던 이슬람 세력이 다리 양쪽 입구에 성벽처럼 쌓은 방어시설인 망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성채 쪽에만 망루가 남아있다. 이슬람 건축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이다. 다리 입구에 육중한 문이 세워져 있다. 문 위에 독수리 문장이 보인다. 중세 시대에 새겨진 왕가의 문장이다.
톨레도 Toledo
톨레도의 구도심을 걸어 보면 누구나 쉬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수도로서는 너무나도 협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지만 평시에는 도시 확장이 불가능한 도시였다. 아니 6세기경 로마 시대에 형성된 도시가 아직도 저렇게 멀쩡하게 존재하다니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기막힐 노릇이다. 물론 그간 많은 전쟁과 내란으로 불타고 훼손되고 다시 복원하기를 거듭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크게 변할 수 없는 것이 타호강이 도심을 감싸고 있기에 더 넓히지도 어쩌지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예전의 형태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심 내부를 둘러봐도 길은 여전히 협소하고 아직도 현지인들은 그 길을 이용한다. 이슬람 문화가 지배했던 도시들은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톨레도의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전혀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위를 올려다보니 좁은 골목 양옆으로 3층 정도로 지어진 집들은 서로 맞닿을 기세다. 그러나 열악해 보이거나 궁핍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풍요로운 느낌은 왜일까?
여기서부터 잠시만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자. 거리 벤치에선 집들 사이에 드리워진 따듯한 겨울 햇살을 즐기며 두 남녀가 자신들의 얘기에 열중하고 있다. 무엇인가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여자는 허리를 앞으로 굽혀 고개와 몸을 살짝 왼쪽으로 돌려 앉아 남자를 쳐다보고 있고 남자는 몸을 뒤로 젖혀 등받이에 느긋하게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여자의 말을 듣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화로운 모습이다. 나는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내가 저 벤치에 앉아있고 누군가 내 모습을 담고 있는 상상에 잠시 잠겨본다. 벤치의 남녀 뒤로 햇빛을 받아 붉은빛을 띠는 황토색 벽체가 더욱 반짝인다. 우리로선 상당히 좁게 느껴지는 그곳에서 카페도 내고 상점을 꾸려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노천카페에서 따듯한 햇살을 즐기며 커피도 마시면서 중세의 흔적들과 살아가는 현지인들이 한편으로 부럽기까지 했다.
우리는 상점을 잠시 들러 구경하기로 한다. 톨레도는 일찍이 칼과 갑옷 등 무기 생산과 금세공이 발달되었다. 우리가 들른 상점에서도 장인들이 아주 작은 손망치와 정을 들고 세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금사를 들고 금박을 입히는 과정도 볼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접시 모양의 작은 쇠붙이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세공하는 장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여행객들의 눈은 장인의 손을 따라 움직인다. 상점들마다 금은 세공품이 가득하고 중세 시대 기사들이 쓸법한 칼부터 아주 작은 도검류들까지 다양한 칼들을 진열해 놓고 판매한다.
톨레도의 공기는 맑았다. 도심의 매연, 그것은 아예 이곳과 거리 먼 이야기였다.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좁은 길로 차량이 다녀봐야 얼마나 다니겠는가? 모든 게 낯선 우리에게도 친근한 천년의 숨결이 느껴지는 옛 도시였다. 콘크리트 주거문화에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다. 이곳 아이들은 아토피로 시달리지는 않을 거 같다. 집들은 하나같이 흙을 구워 만든 붉은 기와로 지붕을 올렸다. 벽체는 붉은색을 띠는 점토벽돌로 쌓아 진흙을 발라 마감되어 있다. 크기만 크고 깃발이 게양되어 있을 뿐 관공서 건물도 민가와 다르지 않았다. 관공서로 쓰이는 건물 안을 잠시 들여다보니 책상이나 집기들 배치가 여유가 있었고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단지 우리의 시각과 느낌이 다소 불편할 거 같아 보였지 이네들은 전혀 그런 표정들이 아니다.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적게 잡아도 족히 몇 백 년은 되어 보인다. 유적은 말할 것도 없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하다. 무엇이 유적이고 어떤 것이 유적이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도시 전체가 유적인 셈이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바닥까지도 문화유산인 셈이었다.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도시와 건물에서 실생활을 하는 톨레도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들 보다 행복지수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톨레도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de Toledo
우리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톨레도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de Toledo)에 다다른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톨레도 카테드랄이 보인다. 그 골목으로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우리는 완전한 중세도시로 순간 이동을 한다. 위를 쳐다보며 방향을 바꾸어 걷다 보면 하늘 모양이 제 각각이다. 좁은 골목길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이렇게 하늘을 쳐다보며 오래 걷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좁은 골목이어서 인지 무척 어지럽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리의 악사는 비스듬한 내리막길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아코디언 연주에 열중이다. 거리 악사의 아코디언 연주로 천년고도의 골목은 더욱 따스하게 느껴진다.
톨레도 대성당은 1226년,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 시대에 짓기 시작하여, 가톨릭 군주 시대인 1493년에 완성된 성당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다. 은은하게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 채광이 성당 내부를 신비스럽게 만든다. 트란스파렌데(El Transparente)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은 환상적이다. 위로 솟아올라가는 고딕건축 양식의 약점인 채광을 보안하기 위해 천장을 뚫어 만든,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의 채광창이다. 채광창 주변의 조각상들이 성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마치 구원을 주려는 천사들처럼 말이다. 빛이 비치는 중심부로 네 명의 대천사 즉 라파엘, 가브리엘, 미겔, 그리고 우리엘 천사가 조각되어 있다. 금박을 입힌 조각상에 부딪치는 빛은 더욱 신성한 분위기와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잠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엘 그레코 El Greco
이 성당은 톨레도를 사랑한 화가, 엘그레코의 그림 '엘 에스폴리오(El Espolio, 옷이 벗겨지는 그리스도)'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엘 그레코는 톨레도에서 노년을 보낸다. 지금도 집과 그의 작품이 톨레도에 남아있다. 붉은 성의를 걸친 예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며, 예수를 못 박으라는 군중, 손목에 묶은 줄을 단단히 감아쥐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어달 준비를 하고 있는 예수 왼쪽의 녹색 옷을 입은 남자, 십자가에 구멍을 뚫고 있는 남자, 예수의 발치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세 여인, 하늘을 향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예수의 눈빛이 담겨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화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인 예수의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이 붙어있었다. 붉은 성의 위의 손은 아주 섬세하게 그려졌다. 화폭 가득 빽빽하게 채워 넣은 사람들로 예수가 받은 심한 탄압을 표현하였다. 이 그림은 톨레도 대성당 성물실 제단에 들어갈 그림으로 제작되었다. 당시로서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기형적으로 그려진 이 그림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당시 톨레도의 안목(?) 있는 지도자들은 이 그림을 성당에 걸었다. 톨레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 성당을 둘러보고 이 그림을 본다. 아니 엘 그레코의 이 그림은 이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성당을 둘러보니 중앙제단 오른쪽에 엄청 큰 거인을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화폭의 주인공의 이름은 레프로보스라는 거인이다. 젊을 때 악행과 향락을 일삼던 사람이다. 붉은 옷을 입은 힘센 거인인 그는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왕과 악마를 찾아다닌다. 모두 그리스도를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리스도를 섬기기로 한다. 강가에서 여행자들을 어깨에 올려 태워 강을 건네주는 일을 하던 어느 날, 어린아이를 옮기게 되었다. 점점 무거워져 마치 전 세계를 짊어지고 가는 것 같이 무거워서 그 힘센 크리스토퍼(레프로보스의 세례명)마저도 지팡이에 의지하며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아이를 강 건너에 내려놓고 나서, "너 참 무겁구나?"라고 말하자, 그 아이가 "너는 지금 온 세상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네가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나자 물에 닿은 크리스토퍼의 종려나무 지팡이에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땅에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이후 레프로보스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업고 가는 사람’을 뜻하는 크리스토포로스'(Christophoros)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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