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크로와상
나는 빵을 그리 즐겨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유독 크로와상은 좋아한다. 커피와 함께 크로와상을 먹는 건 그야말로 혀가 천국을 맛본다고나 할까. 바삭하고 부드러운 결이 특징인 크로와상은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식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빵이다. 크로와상(Croissant)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의미하며, 그 모양이 초승달을 닮아 이름 붙여졌다. 하지만 크로와상의 기원은 프랑스보다 오스트리아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튀르키예를 두 차례 여행하며 커피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커피가 오스만 제국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 이야기는 흥미롭고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 전쟁의 참혹함 뒤에 남은 커피의 유래는 역설적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이러한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커피의 기원은 9세기 에티오피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의 염소 목동 칼디(Kaldi)가 자신의 염소들이 특정 열매를 먹고 활기를 띠는 것을 보고 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이 열매는 아라비아 반도로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커피의 초기 형태로 발전했다.
오스만 제국은 15세기에 예멘에서 커피를 수입하여 자신들의 문화 속에 통합했다. 커피는 제국의 도시들에서 빠르게 인기를 끌었고, 1550년대에는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세워졌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문학과 예술, 정치 이야기를 공유하는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크로와상의 시작은 17세기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들어진 키프를(Kipferl)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프를은 현재의 크로와상과 비슷한 초승달 모양의 빵으로, 주로 단맛이 나는 반죽으로 만들어졌다.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간식인 키프를은 축제나 특별한 날에 즐기던 음식으로, 당시 유럽에서 이미 친숙한 존재였다.
빈 전투(1683년), 커피와 크로와상의 탄생 배경
1683년, 오스만 제국이 유럽으로 커피를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빈 전투이다.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 빈을 포위했을 때, 유럽 연합군이 이를 방어하며 오스만 제국을 물리쳤다. 전투 후, 유럽인들은 오스만 제국군이 남기고 간 다양한 물품 중 커피를 발견했다. 전설에 따르면, 폴란드 출신 군인 프란치스코 쿨츠키(Franz Kolschitzky)가 남겨진 커피 원두를 발견했고, 이를 활용해 빈에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해 벌어진 빈 전투는 크로와상의 탄생 배경에 얽힌 흥미로운 전설을 제공한다. 전설에 따르면,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밤에 몰래 땅굴을 파고 도시를 기습하려 했지만, 이를 제빵사들이 알아차리고 당국에 경고를 전했다. 이로 인해 도시를 방어할 수 있었고, 오스트리아 군대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빵사들이 오스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을 본뜬 빵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초승달 모양의 빵이 바로 크로와상의 시초라는 설이다.
빈 전투 이후, 커피는 유럽 사회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오스트리아 빈에서 커피와 휘핑크림, 설탕을 곁들인 전통적인 "빈식 커피(Viennese coffee, 비엔나 커피)"가 탄생하며 유럽 커피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커피하우스는 유럽 전역에서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문화와 혁신의 중심지가 되었다.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는 금융과 경제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프랑스의 커피하우스는 계몽사상의 확산에 기여했다.
크로와상이 프랑스에 전파된 계기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왕비로 시집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즐기던 고향의 빵, 키프를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프랑스 제빵사들은 이 빵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바삭한 페이스트리로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키프를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크로와상으로 변화했다. 특히 밀가루, 버터, 물, 소금을 겹겹이 접어 만드는 ‘라미네이팅’ 공정을 통해 바삭하고 결이 살아 있는 독특한 식감을 완성했다.
커피는 단순히 오스만 제국의 유산을 넘어 세계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방식으로 커피를 즐길 수 있으며, 카페 문화는 여전히 사교와 창의적인 교류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커피가 유럽으로 전파된 이야기는 한 음료가 가진 역사적, 문화적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크로와상은 이제 단순한 빵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베이커리의 상징이 되었다. 기본 크로와상 외에도 초콜릿을 넣은 팽 오 쇼콜라(Pain au Chocolat), 아몬드 크림을 채운 아몬드 크로와상, 햄과 치즈로 속을 채운 세이보리 크로와상 등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각국의 제빵사들은 크로와상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맛과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의 크로와상은 단순한 아침 식사나 간식을 넘어, 제빵 기술과 창의력의 결정체로 자리 잡았다. 한입 베어물 때마다 느껴지는 바삭함과 부드러움 속에는 유럽의 역사적 사건과 문화가 빚어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크로와상은 단순히 맛있는 빵이 아니라, 그 풍미 속에 깊은 역사를 품은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커피와 크로와상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어쩌면 이 역사적이고 독창적인 배경과도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크로와상의 유래를 알게 된 지금, 커피 한 잔을 하며 크로와상을 먹을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문화를 곱씹으며 더욱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와 크로와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작은 축제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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