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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도다이지(東大寺)

교토, 시간을 걷는 법

by 조영환

[설국의 기억, 열도를 걷다]

나라 도다이지(東大寺)


동대사(東大寺),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나라(奈良) 시대를 대표하는 절, 도다이지(東大寺)는 쇼무천황(聖武天皇)이 불교를 중심으로 한 국가 건설을 추진하며 세운 거대한 사찰이다.

천천히 남대문을 지나 대불전(大仏殿)으로 향했다. 적막이 감도는 참배길, 그 길의 끝에서 마주한 거대한 목조 건축물. 수많은 세월을 견뎌낸 나무들이 쌓아 올린 공간 속에는 인간의 손이 아닌, 자연과 시간의 흔적이 녹아 있었다.


745년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본전의 비로자나불은 앉은키만 16m, 얼굴길이가 5m, 손가락 길이가 1,6m에 달한다. 루샤나 불의 눈꺼풀은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손끝은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조용한 축복을 내리는 듯했다. ‘나라대불’이라 불리는 이유를 눈앞에 두고 마주하니, 그 위엄이 피부로 느껴지며 모과 마음이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그 앞에 선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차가운 겨울바람, 사찰 내부의 향내, 은은한 빛 속에서 드러나는 불상의 미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온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 앞에 서 있었다. 기도도, 고백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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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어쩌면, 이런 시간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많은 것을 보려 하기보다, 깊은 한 곳에 머무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 나라의 이 하루는, 내게 그런 여운을 남겼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대불전(大佛殿)은 높이 48m, 좌우 57m, 앞뒤 50.5m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로 기록되어 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그 웅장한 지붕을 바라보자, 잠시 숨이 멎는 듯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웅장한 모습의 동대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곳은 일본만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다. 고대 한반도와도 깊은 연이 닿아 있어, 당시 활발했던 교류의 흔적과 함께 여러 논란의 그림자도 품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다만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목조의 거대한 품. 그 앞에서 나는 그저 작아졌다.

대불전 안쪽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굵은 기둥 아래 뚫린 작은 구멍 속으로 사람들이 몸을 구겨 넣고는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 구멍을 통과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이라 한다. 크기로 보아 어른이 지나가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안내문에는 그 구멍이 비로자나불의 콧구멍 크기와 같다고 적혀 있다. 우리 일행 중 서너 명이 도전했고, 나도 호기심에 구멍 앞에 서 보았다. 속설을 믿는다기보다, 여행길의 소소한 웃음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대불전 옆에는 붉은 천을 두르고 약병을 들고 있는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의 불상이 서 있다. 무릎이 유난히 반질거리는 이유를 물으니, 아픈 부위와 같은 곳을 문지르면 병이 낫는다고 믿는 풍습 때문이란다.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여 그의 무릎을 어루만졌다. 믿음이든 호기심이든, 여행 속 이런 순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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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거닐다 보니, 깨알같이 글자가 적혀 있는 나무패를 발견한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데 사찰이나 산사, 특히 유명한 관광지마다 이런 나무패를 볼 수 있다. ‘合格祈願繪馬’라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기복신앙적인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소원을 빌면서 말을 신사나 절에 바쳐오던 것이, 후에 마구간을 나타내는 나무판에 말을 그려서 사용하게 되었고, 이런 연유로 에마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이 나무판에 말 이외의 다양한 글과 그림이 그려지고 있으며 특히 입시철에 일본의 부모들이나 학생들은 사찰이나 신사를 찾아가 합격의 기원을 에마에 적어 경건하게 신에게 바친다고 한다. 작은 나무패마다의 사연이 바람결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대불전에서 나오니, 오후의 햇빛 속에 경내가 한층 평화롭게 보였다. 커다란 향로 앞에서 저마다의 바람을 위하여 향을 태우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사슴에게 먹이를 주며 웃음 짓는 여행객들, 그리고 도다이지를 배경으로 추억으로 남길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여전히 사람들 사이를 여유롭게 오가는 사슴들. 모든 것이 하나의 오래된 풍경화 속 장면 같았다. 참으로 평화롭게 느껴지는 동대사에서의 오후다.


나라에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이곳의 공기는 달랐다. 높은 빌딩도, 분주한 소음도 없이,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도시. 사슴들이 거리를 천천히 걸어 다니는 모습은, 사람보다 더 사람을 닮아 있었다. 그런 나라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말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서의 오후, 꽃사슴(花鹿)


이른 아침 출발하여 나라까지 4시간을 달려와 동대사 여기저기를 구경하였으니 이제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예약한 식당 간판에도 사슴을 뜻하는 鹿(しか) 자가 들어 있다. 혹시 사슴고기 요릿집인가? 사슴 고긴 아직 먹어보지 않은 음식인데... 조금 긴장했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맛도 궁금해졌다. 뭐든 새로운 경험이 되는 게 여행이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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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상호는 꽃사슴(花鹿)이라 불리는 일식당으로, 奈良市奈保町2-12에 위치한다. 점심으로는 신선한 회(刺身 sashimi)를 즐기며, 식당 곳곳에 전시된 옛 물건들을 구경한다. 안주인은 식당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사진 촬영도 흔쾌히 허락해 준다. 소소한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식사의 맛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마당으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잠시의 달콤한 휴식이지만, 奈良여행에서 맛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소중한 선물과도 같다.



교토, 시간을 걷는 법


나라를 떠나, 다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창밖의 풍경은 점점 깊어진 겨울로 향한다. 가끔은 여행지의 거리보다 마음속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토는, 마음의 오래된 골목을 걷는 일 같았다.


천년 고도, 교토(京都).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울림이 있는 도시다. 기온 거리의 돌바닥은 수천만 발자국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겹겹이 쌓인 시간, 스쳐간 사람들, 그리고 아직 떠나지 않은 기억들이 길모퉁이마다 조용히 머물러 있다.


겨울의 교토는 소란스럽지 않다. 햇살은 차분하고, 바람은 담백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계절일지도 모른다.


처음 향한 곳은 후시미 이나리 신사(伏見稲荷大社). 붉은 도리이(鳥居)가 천 개 넘게 이어진 그 길은 하나의 신사라기보단, 의식의 통로에 가까웠다. 나는 문득, 하나의 문을 통과하고 또 다른 문에 다다르는 순례자가 된 듯했다. 무언가를 잊고, 무엇을 다시 받아들이는 시간. 도리이의 붉은 기둥 사이로 겨울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결엔 종소리와 나뭇잎 부딪는 소리, 그리고 어쩌면 오래전 기도의 숨결이 섞여 있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아라시야마(嵐山). 겨울의 대나무숲은 여름의 그것보다 훨씬 단단한 느낌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의 마디마디는 마치 오랜 침묵 끝에 꺼낸 짧은 말처럼 절제되어 있었다. 죽림 사이를 걷다 보면, 이곳이 현실인지 혹은 고즈넉한 꿈인지 모를 기분에 빠진다. 속도가 차분해지고, 호흡이 깊어진다.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나를 조용히 받아주는 듯하다.


대나무 사이, 작은 연못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얼어붙은 수면 아래 투명한 시간이 눌려 있었다. 겨울은 모든 걸 멈추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사유를 허락하는 계절이다.


저녁 무렵, 교토식 정식을 파는 작은 찻집에 들러 두부를 중심으로 한 차분하고 가벼운, 이른 식사를 즐긴다. 온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중간, 이 도시와 닮아 있었다. 창가에 앉아 밥을 먹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 질문은 장소의 의미라기보다, 마음의 위치를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교토는, 그런 질문을 조용히 들어주는 곳인지도 모른다.


해가 기울 무렵, 기요미즈데라(清水寺)를 찾았다. 나무로 된 기둥과 마루가 마치 하늘을 향해 내디딘 다리처럼 걸려 있었다. 그 위에서 바라본 도시의 윤곽은 뿌연 안갯속에 잠겨 있었다. 그 순간, 교토는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저 머물러도 좋은, 마음의 여백이 되어주었다.


이제 여행의 끝이 다가온다. 센다이에서 시작하여 도쿄를 거쳐 도요하시에서 나라를 지나 교토에 닿기까지, 나는 수많은 시간을 거닐었다. 과거의 흔적, 현재의 기척, 그리고 조용한 미래까지. 느린 여행은 속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을 ‘느껴냈느냐’의 문제다.


교토에서 나는, 다시 걷고 싶어지는 마음을 얻었다. 잊고 있던 것을 하나씩 되살리는 듯한 감각. 그 감각은 계절이 끝나도, 여행이 끝나도 내 안에 조용히 남아 있을 것이다.


속도를 낮춘다는 건, 시간의 결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는 일이다. 겨울의 교토는 그렇게, 내게 시간을 걷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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