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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로 오르는 몬젠마치, 산도(參道)

by 조영환

[설국의 기억, 일본 열도를 걷다]


기요미즈데라로 오르는 몬젠마치, 산도(參道)

금각사에서 약 30분을 달려, 천년 고도 교토의 또 다른 명소, 기요미즈데라 (清水寺)에 닿았다. 이 사찰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교토 문화재의 일부이다.


기요미즈데라(清水寺, きよみずでら)로 오르는 길,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京'자가 새겨진 상의를 입은 인력거꾼들이 줄지어 서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교토(京都) 시에서 허가받은 인력거꾼들이다. 기모노를 입고 곱게 차려입고 나들이 나온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일본 전통의상 체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골목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살펴보니 관광객 보다 현지인 방문객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이 골목길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님을 쉽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식당, 카페, 상점이 늘어선 골목길에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극히 일본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요미즈데라로 오르는 볼거리 가득한 전형적인 골목상가, 몬젠마치 산도(參道)이다.


이 길은 ‘몬젠마치(門前町) 산도(參道)’, 일본의 전통적인 사찰이나 신사 앞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점가나 마을을 뜻하는 용어다. 식당, 카페, 기념품점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은 일본 특유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구마모토 아소신사 앞의 아소 몬젠마치도 유명한 산도이다. 이 두 개념은, 걷는 행위 자체가 참배의 일부로 여겨지는 문화적 의미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종교적 가치를 동시에 담고 있으며, 동시에 지역 상권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중요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런 옛 모습을 간직한 공간에 늘 마음이 끌리는 편이다. 개발의 손길을 최소화하고,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채 사람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장소, 관광객이 찾아와 소비하는 장면조차도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되는 공간,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고 품격 있는 관광자원이다. 그런 곳에서 관광객은 지갑을 열며 즐기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오래된 마을을 걸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밀려왔다. 300~400년 된 집들 안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외벽과 형태는 옛 모습을 유지하되, 내부는 개조하거나 수선해 생활하는 방식이었다. 민속촌처럼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그곳에는 옷 가게, 기념품점, 카페, 식당 등 다양한 상점들이 상권을 이루고, 문화유적과 조화를 이루며 잘 보존된 구도심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경험은 교토의 골목길, 몬젠마치 산도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 모습은 필자가 어렸을 적 자랐던 고향 마을의 기억과도 겹쳐져,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또 한편으로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런 마을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한 골목을 거닐며 받았던 인상은, 지금도 그 어떤 유명 관광지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필자의 짧은 생각이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관광지는 정비사업을 통해 기존의 구 상가지역을 헐어내고 새로운 신단지를 조성해 왔다. 구획은 반듯하고 정비가 잘 되어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옛 모습을 잃어버린 사례가 대부분이다. 원래 그 지역만의 특징적이고 특별했던 '무언가 다운' 정체성은 사라지고, 차별화되지 않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장소로 개발(?)된 셈이다. 도시나 관광지 할 거 없이 보존의 가치는 ‘재정비’라는 이름 아래 희생되었고, 누군가의 추억이 깃든 이야기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머물고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자연히 상권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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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교토의 골목길에서는 그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진풍경을 즐기며, 제법 가파른 경사를 따라 걷다 보면 입구에 줄지어 서 있던 인력거꾼들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여행의 재미를 위해 인력거를 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경사진 길을 걷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인력거가 사실상 유일한 이동 수단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런 세세한 부분들까지 눈여겨본다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교토 여행이다.


결코 화려하거나 과하게 치장하지 않은 무채색에 가까운 옛 모습을 간직한 목조 건축물, 반성을 모르는 일본의 민 낮을 드러내며 군국주의 일본을 상징하는 욱일기를 일장기와 함께 걸어놓은 상점, 염주 등 불교용품을 팔고 있음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끼는 상점, 도자기를 굽고 판매하는 공방, 화지(和紙)를 붙여 만든 대나무 부채와 우산을 비롯해 더없이 일본 스러운 작고 예쁜 잡화, 교토 특산품, 기념품, 인형공방, 과자류와 군것질거리, 가락국수, 소바, 꼬치, 커피와 일본 전통 차, 기모노 등 수 없이 많은 물건을 진열해 놓은 상점 앞에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토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골목길을 따라 오르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기요미즈데라로 향한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오르는 아이, 아기를 품에 안고 힘겹게 올라가는 아빠,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고 나들이 나온 여성들, 상점마다 물건을 구경하며 흥정을 하고, 간식을 먹으며 가끔은 그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경전을 외우며 오르내리는 이들로부터 시주를 받는 승려, 필자처럼 손주들 손을 잡고 오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그리고 지슈 신사 덕분인지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걷는 젊은 연인들까지, 골목은 다양한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길은 단순히 사찰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녹아든 하나의 풍경이다.


이 활기찬 골목상점가(몬젠마치, 門前町)를 지나면,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곳곳에 펼쳐진다. ‘萬年修行’이라는 휘호가 적힌 안내판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인사를 건네듯 기울어져 있다. 안내판에 쓰인 것처럼 만년을 수행했을 법한 이 소나무조차 발길을 멈추게 하는 몬젠마치 산도, 오래된 돌계단과 정갈한 연못, 나지막한 주택과 오래된 상점들의 목재 외벽. 작은 것 하나하나가 수백 년을 견뎌온 도시의 기억을 담고 있다. 이 골목길이 참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산도를 오르는 동안 나는 걷는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추게 된다. 사람들의 소소한 웃음, 상점 앞에서 흘러나오는 차 향,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풍경의 잔향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스며든다.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요미즈데라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교토의 시간과 사람, 역사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경험이다.

기요미즈데라의 본당이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 기둥과 나무 마루, 하늘을 향해 내민 건물의 발코니, 그리고 아래로 펼쳐진 교토 시내 풍경. 골목길에서 느꼈던 삶의 숨결과 시간의 결이,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정지된 듯 나를 감싼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 이 길, 이 골목, 산도는 여행자가 아닌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 속을 걸으며 느끼는 감각과 정서가, 기요미즈데라의 장엄함과 맞닿아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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