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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清水寺), 흑백영화 속 같은 시간 여행

by 조영환

[설국의 기억, 일본 열도를 걷다]


기요미즈데라(清水寺), 흑백영화 속 같은 시간 여행


기요미즈데라로 오르는 몬젠마치와 산도를 따라 걸으면,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검은색에 가까운 2층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그 길은, 전통가옥 특유의 중후한 아름다움과 세월의 흔적이 깃든 따스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흑백영화 필름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그곳에 스며든 정취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목재의 질감과 가옥의 선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흑백영화 특유의 고즈넉한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골목을 따라 걸으며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상점에서 풍겨오는 다과의 향기는, 현대적이면서도 과거와 끊임없이 연결된 이 공간의 특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처럼 몬젠마치와 산도는 단순한 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길을 걷는 이들에게 시간 여행의 문을 열어주는 장소로 남아 있다.


기요미즈데라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의 소원을 품고 그 언덕을 오른다. 이 언덕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기요미즈데라로 이어지는 길은 몬젠마치(門前町)와 산도(參道)로, 오래된 흑백영화 속 풍경처럼 전통가옥 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다. 조용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느새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양손 가득 기념품 봉투를 든 관광객, 유카타를 차려입고 셀카를 찍는 연인들, 그리고 가게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환하게 웃는 주인장들. 탁발 중인 탁발승, 골목의 각종 상점에서는 전통 과자부터 아기자기한 장식품, 그리고 운세를 봐주는 부적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를 끄는 것은 유리로 만든 작은 풍경들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은 이곳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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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 자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놀라운 유산이다. 교토가 일본의 수도가 되기 전부터 이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지였다. 천수관음(千手觀音)이 모셔져 있는 이 천년고찰은 오랜 세월 동안 희망과 안식을 찾아온 이들의 발길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방인에게까지도. 특히, 소원을 담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기요미즈데라의 유명한 관음보살상이다. 수많은 손과 눈을 가진 이 상은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자비의 상징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사람들은 흔히 소원을 빌 때, 자신만의 작은 의식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기도하고, 또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간절한 바람을 조용히 되뇐다. 기요미즈데라에서는 이런 모든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바람과 절에서 울리는 은은한 종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방문객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잠시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기요미즈데라에 오르는 길은 그저 단순히 절에 이르는 경로가 아님을 이방인인 필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길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희망과 소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정겨운 분위기와 고요한 울림은, 기요미즈데라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진 장소로 만든다. 이곳에선 누구든 마음속 깊이 간직한 소원을 천천히 꺼내어 바라보고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기요미즈데라를 찾은 모든 이들의 발걸음에는 묘한 기대와 설렘이 담겨 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 그들이 품은 소원은 무엇일까? 그 답은 기요미즈데라의 고즈넉한 경내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란 기대를 앉고 발걸음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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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걸으니, 무대 같은 곳이 눈에 띈다. 그저 평범한 무대여서 놓치기 십상인 ‘기요미즈의 부타이(清水の舞台)’는 혼도(本堂)에 모셔진 천수관음께 춤이나 공연 등으로 예를 올리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곳을 넘어, 일본 문화와 신앙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장소다. 혼도 자체도 일본의 국보(国宝)로 지정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와 함께 그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오후 4시 25분.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참배객들의 발길이 한산해진다. 덕분에 부타이의 공간은 더없이 고요하고 여유롭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천수관음께 마음을 다해 예를 올린다. 이어 고개를 들어 무대 끝자락에서 내려다본 교토의 전경은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겹겹이 늘어선 산과 도시의 풍경이 석양빛에 물들어가며, 그 장면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이곳에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품었던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그 마음들이 이 무대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묘한 울림이 느껴진다. 나 역시 잠시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바람 하나를 속으로 되뇌어 본다. 이 순간의 고요함과 평화가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듯하다.


혼도의 외진 곳을 천천히 살펴본 후, 넓게 펼쳐진 무대와 정갈한 회랑을 차례로 둘러본다. 각각의 공간마다 배어 있는 깊은 역사와 정취가 발길을 붙잡는다. 고요한 오후의 분위기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은, 그 자체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무대를 떠나 회랑을 지나면서, 발아래로 보이는 교토의 풍경은 한층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유구한 시간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지나갔을 회랑의 바닥을 천천히 걸으며,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이곳에 담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랑을 빠져나와 측면으로 이어진 산도(參道)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내 오쿠노인(奥の院)에 다다른다. 이곳은 또 다른 성스러운 공간으로,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본존인 삼면 천수 관세음보살 좌상(三面千手観世菩薩坐像)이 모셔져 있다. 삼면의 얼굴과 수천 개의 손을 가진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소원을 듣고 들어주는 자비로움의 상징이다.


오쿠노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혼도와는 또 다르다. 혼도가 웅장하고 고결한 느낌이라면, 오쿠노인은 좀 더 고요하고 사색적인 공간이다. 이곳에 머물며 천천히 본존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묘한 평온함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본존인 천수관음을 모시는 기요미즈데라의 혼도는 험난한 절벽 위에 세워져 있음에도 그 규모와 아름다움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혼도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물은 격자형으로 설계된 수많은 기둥과 들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조화를 이루며 '기요미즈 무대'를 견고히 지탱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전형적인 가케즈쿠리 (かけつくり, 懸造り) 기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가케즈쿠리는 평지가 아닌 절벽이나 험지에서 건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본 전통의 절벽 건축 기법이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견고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이 기법은, 그 자체로 일본 건축의 독창성과 실용성을 보여준다. 특히, 기둥을 여러 방향으로 배치하고 들보를 교차시켜 하중을 분산시키는 설계는, 기술적으로도 매우 정교하고 세련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 일본 건축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Ando Tadao)의 1983년작 록코 집합주택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자연 지형의 기울기 60도를 그대로 활용하여 설계된 이 주택은 ‘현대판 가케즈쿠리’로 평가받는다. 안도 다다오는 기존의 건축물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 냈다.


기요미즈데라의 혼도와 기요미즈 무대를 바라보면서, 전통과 현대의 건축이 어떻게 서로 대화하며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깊은 감탄과 영감을 느끼게 된다. 자연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으로 구축된 이 건축물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의 삶에 무언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기요미즈(清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맑은 물'을 뜻한다. 이 맑은 물과 관련된 명소 중 하나가 바로 오토와 폭포(音羽の瀧)다. 오토와 폭포는 기요미즈데라의 오쿠노인(奥の院)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에서 나오는 물은 특별한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참배객들은 이 물을 마시면 지혜, 연애, 장수 등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을 믿고 방문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폭포라는 이름에 비해 규모는 소박하다. 세 줄기로 흐르는 물이 조용히 흘러내리는 모습은 오히려 잔잔한 샘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속설을 진지하게 믿는 편은 아니지만, 여행 중에 이런 작은 재미를 놓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도 세 줄기 중 한 곳에서 맑은 물을 받아 잠시 목을 축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 물을 마실 때에도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줄기의 물을 모두 마시면 욕심이 지나쳐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소원조차도 적당히 간절해야 이루어진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야기가 주는 유쾌함과 여운 덕분에 오토와 폭포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물 한 모금을 넘어서 여행의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게 된다.


속설의 진위를 떠나,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잠시 머물렀던 그 순간, 나를 감싸 안은 맑고 고요한 감정으로 복잡했던 마음 한 구석이 평화로움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맑은 물'이란 이름처럼, 기요미즈의 물은 단지 물 이상의 의미를 전하는 것 같았다. 욕심을 내려놓고, 소박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그 순간이야말로 기요미즈가 주는 진짜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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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미즈데라, 그곳을 방문하면 누구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경내를 오르는 계단 왼쪽에 있는 작은 신사, 지슈 신사이다. 이 신사는 일본 건국 이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그곳에는 ‘낭연기원(郞緣祈願)’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바로 사랑을 이루어주는 신을 모신 신사이다. 연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비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본의 사찰을 돌아보면 종종 이런 작은 신사들을 경내에서 볼 수 있다. 사찰의 공간 안에 신사를 두는 것이 일본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유 신앙인 신도와 불교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존재해 왔다. 신도는 일본의 토착 신앙이고, 불교는 인도에서 전해진 종교로, 두 종교는 한동안 서로 얽혀 있었다. 이를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종교 문화에서 이러한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19세기말,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후 상황은 달라진다. 신불분리 정책이 시행되면서 불교와 신사는 완전히 분리되어 각기 다른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 경내에 신사가 존재하는 풍경은 여전히 일본의 독특한 종교 문화를 보여준다. 지슈 신사 역시 메이지 유신 이후 독립된 신사로 인정받았으며, 오늘날에는 신사로서 독립적인 존재로 그 역할을 다한다.


흥미로운 점은, 경내에 있는 이 신사는 사찰의 일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신사와 사찰은 분명히 구별된다는 사실이다. 신사에는 반드시 ㅠ 모양의 도리이(鳥居)가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도리이는 신사가 시작되는 곳을 표시하는 상징적인 구조물로, 사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찰과 신사를 구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신사의 문을 지나면, 신성한 공간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도리이의 역할이다.


이처럼, 키요미즈데라와 지슈 신사는 일본의 독특한 종교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일본의 신앙은 그만큼 다채롭고, 오랜 세월을 거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그 깊은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한층 깊어질 것이다.


기요미즈데라는 오토와 산(音羽山) 중턱 절벽 위에 위치한 아름다운 사찰로, 그 경내는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처럼 펼쳐진다. 기요미즈데라 혼도(本堂)와 사랑을 이루어준다고 전해지는 지슈신사(地主神社), 그리고 오토와 폭포(音羽の瀧)에서의 전설처럼, 물이 흐를 때마다 학업, 장수, 연애 등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한, 다이니치뇨라이(大日如来, 대일여래)가 모셔져 있는 삼층탑(三重塔)과 즈이구도(随求殿), 니오문(仁王門), 고야스칸논(子安観音, 순산기원의 명소)까지 다양한 성스러운 장소가 경내를 가득 채운다.


이곳을 돌아 나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전통가옥 골목상가 몬젠마치(門前町)에 들어서면, 그 고요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차분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따뜻한 맛차(抹茶) 한 잔을 마시며, 기요미즈데라에서의 여운을 마음속에 남긴다. 교토의 흑백영화처럼, 그 풍경과 기억은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차르르 돌아가며 끝날 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목적지, 오사카(大阪)로 떠날 시간이다. 교토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오사카의 새로운 풍경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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