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의 기억, 열도를 걷다]
오사카성(おおさかじょう, 大阪城)
기요미즈데라에서 오후 5시 10분 출발했다. 차창 너머로 스치는 도심의 불빛이 흔들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그 사이로 하루의 끝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거리의 야경을 보며 오후 6시 무렵, 드디어 오사카성에 닿았다.
이곳은 1583년, ‘태합(太閤)’이라 불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 최초의 통일을 이룬 뒤, 자신의 권세를 일본 전역에 각인시키고 천하 통치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축성에 착수한 곳이다. 오사카성의 부지는 예로부터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라는 거대한 사원 터였는데, 히데요시는 그곳을 허물고 새로운 정치·군사적 상징을 세웠다. 성벽에는 노다 강(淀川)과 인근 채석장에서 실어온 거대한 화강암이 쓰였고, 몇몇은 높이 5미터가 넘는 거석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태합석(太閤石)’이라 불렀다.
5년에 걸쳐 완성된 천수각(天守閣)은 5층 8단 구조로, 검은 옻칠 판자에 금박 기와와 금장식이 번쩍였다고 한다. 그 화려함은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권력자의 절대 권위를 드러내는 시각적 선언이었다. 하지만 1615년, 도요토미 사망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에도막부(江戶幕府)가 도요토미를 쓰러뜨리기 위해 벌인 전쟁 '오사카 여름의 전투'에서 도요토미의 오사카성은 천수각과 함께 불길에 휩싸여 무너졌다.
그 후 1626년 도쿠가와 2대 쇼군 히데타다(秀忠)가 오사카성을 재건했으나, 1665년 벼락을 맞고 또다시 소실되었다. 그렇게 불타고,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 속에서 일본의 정치 격변과 권력의 변천사가 겹겹이 쌓였고 인간의 집념이 얽혀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역사의 일부를 따라 걷고 있었다. 불빛 아래 비치는 천수각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듯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천수각은 1931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재건된 세 번째 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폭격을 피해 살아남았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성으로 향하는 길목, 어둠 속에서도 깊고 넓은 해자가 차갑게 숨을 쉬고 있었다. 물결 위로 조명이 드리워져,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은빛 물 비늘이 일었다. 해자를 따라 이어진 석벽은 견고하게 성을 감싸고 있었고, 그 위로 흰 벽의 성채가 불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났다. 금장식은 그 빛을 흡수하듯, 다시 반짝이며 밤하늘로 번져 나갔다. 금장식과 함께 성채에 비치는 야간 조명으로 화려함마저 느껴졌다. 마치 벚꽃에 야간조명을 비추었을 때 볼 수 있는 화려함이랄까. 천하를 쥐려 했던 권력의 상징이었던 오사카 성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선명히 살아 있었다.
천수각의 지붕은 층마다 선명한 곡선을 그리며 위로 솟아 있었고, 야간 조명이 그 윤곽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냈다. 멀리서 보면 성은 마치 밤 속에서 떠오른 거대한 등불 같았고, 가까이서 보면 금빛과 흰빛, 그림자가 어우러진 한 폭의 병풍 같았다. 바람결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와, 해자 위를 지나가는 작은 파문이 묘하게 어우러져, 오래된 권력의 숨결을 속삭이는 듯했다.
주변 공원에는 늦은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그 발자국 소리가 겨울밤의 공기를 깨우듯 가볍게 울렸다. 멀리 오사카 시내의 불빛들이 성을 둘러싸듯 반짝였고, 그 사이에서 오사카성은 여전히 고독하게, 그러나 당당히 서 있었다.
아무튼 죽기 전에 곡 봐야 할 역사유적 중 하나로 꼽히는 서일본 간사이 지방의 랜드마크인 오사카성 야경을 둘러보며 일본여행을 갈무리한다.
성 밖으로 나서자, 오늘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내의 회전초밥집, ‘쿠라스시’. 접시 하나 100엔이라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가격에, 몇 접시를 먹든 상관없이 양 것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유명한 집이다. 스시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이, 그날의 기록에 도전하는 것처럼 유쾌했다.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한 즐거움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사카 시내의 밤거리를 걸으며 투어에 나선다. 오사카 야경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지 싶어 걸어서 호텔로 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번화가 거리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퇴근 시간도 지났고 식사 시간도 조금 지난 시점이어서인지 번화가 거리를 제외하고 대부분 거리에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오히려 그 고요함이 더없이 좋았다. 일식과 양식을 혼합한 식단으로 영업하는 식당(和洋)이 궁금했으나 초밥으로 식사를 마친 터라 광고판 내용만 살펴보고 걸음을 옮긴다. 평평한 지형 덕에 자전거가 많은 오사카는 거리 곳곳이 자전거 주차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나누어 걸었다. 불빛 아래 반짝이는 산토리(Suntory) 광고가 일본의 밤공기 속에서 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사진을 부탁하자 웃으며 응해주는 현지인들과 잠시 눈을 맞추었다. 짧지만 선명한 교감이 그날의 밤을 더욱 깊게 했다. 그렇게 오사카에서의 밤은 깊어 갔다.
그날 밤, 나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긴 숨을 내쉬며 호흡을 조절했다. 오늘 하루의 걸음마다 남겨진 풍경과 마음의 잔상들이 조용히 나를 감쌌다. 나라에서는 ‘침묵’을, 교토에서는 ‘정적’을, 오사카에서는 ‘이야기’를 만났다. 그리고 그 도시들의 표정과 온도를, 그 계절의 기온만큼이나 진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흰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고요가 나를 덮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천천히, 또 한 번 나를 마주했다.
설국의 기억은 그렇게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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