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의 기억, 열도를 걷다]
교토, 황금빛 정적의 금각사
기타야마 문화(北山文化)의 상징 킨카쿠지(金閣寺), 교토(京都) 킨카쿠지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다. 鹿苑, '사슴정원'이란 뜻에서 알 수 있듯, 교토는 사슴과 깊은 연관을 가진 도시다. 곳곳에 ‘鹿’라는 글자를 볼 수 있고, 사슴은 도시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었다.
나라에서 교토까지의 이동은 짧지만, 풍경은 다시금 도시의 결을 따라 바뀌어간다. 전철 창 너머로 넘어가는 산과 하늘, 조금씩 짙어지는 오후의 그림자. 나는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조용히 움직인다. 도착지는 금각사, 황금의 누각으로 알려진 그곳이다.
금각사(金閣寺)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이었다. 겨울의 햇빛은 금각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고, 연못 위로 드리워진 누각의 반영은 황금보다도 더 황홀한 기운을 뿜어냈다. 3층 누각의 황금빛이 햇빛을 머금고 반짝였지만, 그것은 눈부시다기보다는 조용히 마음을 울리는 종류의 빛이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차 줄어들었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금각을 바라보았다. 반영된 풍경이 바람에 일렁이고, 그것이 마치 과거의 기억처럼 흔들렸다. 금각사는 찰나의 찬란함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 끝에 도달한 정적이었다. 나는 그 빛 앞에서 오늘의 모든 피로와 생각을 잠시 내려놓았다.
킨카쿠지의 황금빛 누각은 금박을 입힌 것으로, 가로세로 10cm의 금박 20만 장이 사용되었다 하니, 당시 사람들의 불심과 장인들의 정성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로쿠온지보다는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른다. 기요미즈데라(清水寺)와 함께 교토의 대표적인 명소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킨카쿠지는 1397년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은퇴 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산장이었는데, 그의 사후 유언에 따라 로쿠온지로 개칭해 선종 사찰이 되었다. 1950년에 화재로 큰 피해를 보았으나 1955년에 재건되어 지금에 이른다.
금각사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를 담는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장편소설 『금각사(金閣寺)』는 1950년 화재를 소재로, 아름다움과 인간 존재의 단절, 그리고 파괴와 구원에 대한 내적 고뇌를 묘사한다. 미사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당시 화재를 소재로 1956년 장편소설 '金閣寺'를 발표하여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다. 누각 앞에서 나는 잠시 그의 글을 떠올렸다.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와 격차, 그리고 삶과 예술, 현실과 환상의 경계. 금각의 빛은 그 자체로 오래된 사유를 불러일으켰다.
"소년 시절부터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인생과의 소외의식에 괴로워하는 나는 금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 그것과의 단절감에 괴로워한다. 전쟁의 말기 나는 금각과 함께 타 죽는 것으로 나와 금각이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금각은 타지 않은 채로 전쟁은 끝나게 된다.
“파멸의 불길 속에서 현실의 미와 환영의 미가 합일되길 기대했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금각과 나와의 관계는 끊어졌다고 생각한다. 금각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인생과의 연결을 저지당한 나는 금각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금각을 불태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의한다. 나는 금각에 불을 지르고 화염에 둘러싸여 구경정(究竟頂)에서 죽으려고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거절당하고 있는 느낌, 불타는 금각을 보면서 자살을 단념한다. 나는 담배를 피워물며 살려고 생각했다." (출처: 김용안, '일본소설 명인명작 감상 ' 2011. 8. 31.' )"
소설의 줄거리이다.
쿄코치(鏡湖池) 연못 위로 비친 금각의 반영은 실제 누각보다 더 황홀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빛은 눈부시다기보다 조용히 마음을 울리는 빛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불교사찰에 왕왕 들리게 되는데 불상에 금을 입힌 금불상은 종종 볼 수 있지만 금으로 덮인 절은 처음이다. 잠시 금박으로 덮인 킨카쿠지를 바라보며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종교와 예술, 그리고 믿음에 기대고 싶은 이유를 이해하려 애쓰며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일본의 국가 특별사적지, 국가 특별경관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금각사는 3층 구조다. 지붕 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봉황인지, 일본인이 길조라 여기는 까마귀인지 모를 새 한 마리가 곧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다. 산책로처럼 정비된 길을 따라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며 걷는다. 수목과 연못이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져 정갈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마음을 정돈하기에 더없이 좋다.
굵은 대나무 틀을 세우고 줄을 메어 놓은 곳에 뭔가 기원을 적은 흰 종이가 리본처럼 가지런히 묶여 있다. 경내 여기저기 발복과 소원을 기원하는 일본 스러운 풍광이 눈길을 끈다. 굵은 대나무 틀에 흰 종이를 묶어 놓은 기원, 부적(お守り)을 파는 가판대 앞에 사람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참으로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풍광이다.
우리나라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전(佛錢)함과 같은 새전(賽錢, さいせん)함이 놓인 곳에선 봉납을 올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새전함을 기준으로 양쪽 처마에 걸려있는 타지니천(吒枳尼天)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궁금해서 안을 들여다보니 빨간 귀를 쫑긋 세운 동물상이 보인다. 이나리 신의 사자(使者)인 여우다.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축소하여 집의 정원 또는 기업의 건물 안에도 이나리 신을 모시고 있다 한다. 즉, 이곳은 금각사 경내에 있는 이나리 신사를 초소형으로 축소해 모셔놓은 아주 작은 이나리 신사인 셈이다. 이나리 신은 여우를 사자로 삼는 농경신으로 일본의 수없이 많은 신사중 일본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신사가 이나리 신사(稲荷神社)라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신사의 상징인 주홍색 도리이도 아주 작게 축소해 놓았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신사는 물론이고 곳곳에서 도리이(鳥居, とりい)를 흔히 볼 수 있다. 도리이는 소원성취 또는 성공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봉납한다.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伏見稲荷神社)는 전국 3만여 개의 이나리 신사 총본산으로 봉납된 수 천 개의 도리이로 유명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금각사 경내를 구경한다. 불상이라 하기엔 뭔가 좀 흐릿한 류몬타키(龍門滝) 폭포옆 돌부처상에 사람들이 발복과 소원을 빌기 위하여 동전을 던지고 있다. 둥그런 지붕에 이끼가 잔뜩 덮인 목조건물, 섹카타이(夕佳亭) 다실이다. 석양이 예쁜 곳이라 하는데 관람 종료시간이 오후 5시면 석양을 보기는 어렵겠다.
물론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아무튼 산책하기엔 참으로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걷다 '안민타쿠(安民澤)'라 쓰인 팻말을 발견한다. 연못 한가운데 있는 작은 탑이 보인다. 안내 팻말에 '白蛇の塚'이라 적혀있다. 백사(白蛇)의 무덤이라는 얘긴데 금각사가 지어지기 이전부터 있다고 한다. 백사는 예능 복을 주는 신이라고 한다. 아무튼 연애의 신도 있다 하니 사람의 삶과 연관지은 온갖 종류의 신이 있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신들의 정원이자 인간 삶과 연결된 경이로운 공간 금각사였고, 가히 신들의 나라 일본인 셈이다.
숲 한편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일본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和式카페) 앞 나무 밑 그늘에 붉은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기념품 상점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조차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햇빛을 받아 휘황찬란한 금각사를 뒤로하고 경내를 빠져나와 천년 역사고도 교토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키요미즈데라(清水寺, kiyomizudera)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버스 창 너머 산과 하늘, 짙어지는 오후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 금각사에서 느낀 정적과 빛의 기억을 마음속에 담는다.
금각사는 눈부신 찰나가 아니라, 오래 기다린 정적과 사유의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시간과 마음을 걷는 경험임을 깨닫는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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