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유적지에서 만난 요한계시록의 교훈
튀르키예 여행기 – 라오디게아 고대 도시 Laodikeia Antik Kenti와 요한계시록
그는 짧은 1박 2일 일정의 안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파묵칼레로 향한다. 그와 일행들을 태운 버스는 E87 도로를 따라 안탈리아 주에서 부르드루 주 경계를 지나 소윗(Söğüt) 마을을 통과한다. 소윗 인근의 작은 도로변 마을인 차브디르(Çavdır)에서 잠시 멈춰 튀르키예 전통 음식점 아간 테시슬레리(Ağan Tesisleri) 식당에서 닭고기, 고등어를 곁들인 케밥 등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데니즐리(Denizli) 주 파묵칼레(Pamukkale)의 라오디게아 고대 도시(Laodikeia Antik Kenti)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터키 역사와 문화를 더욱 깊이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문지이다.
안탈리아에서 오전 10시쯤 출발한 버스가 E87번 도로를 따라 북서쪽 내륙을 향해 달린다. 약 2시간 후, 정오 무렵에 부르드루 주의 작은 마을 차브디르(Çavdır)에 위치한 전통 음식점, 아간 테시슬레리(Ağan Tesisleri)에 도착한다. 식당의 출입구에는 순한 누렁이 한 마리가 나른하게 앉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해안가 도시인 안탈리아를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서며 점차 한기가 느껴졌는데, 식당 한가운데 자리 잡은 화목난로가 그 온기를 채워주니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오, 따듯하다!’ 며 꽤나 반가운 기색이다.
이곳은 뷔페 형식의 식당으로, 원하는 음식을 자유롭게 접시에 담아 먹을 수 있다. 당근채와 매콤한 고추, 그리고 닭다리 요리와 케밥, 스파게티 등 다양한 메뉴가 마련되어 있지만 오늘은 고등어 케밥이 준비되지 않은 모양이다. 고등어 케밥은 튀르키예 여행자들에게 반드시 한 번쯤은 맛을 봐야 하는 특별한 음식인데, 고등어 요리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일종의 ‘소울 푸드’나 다름없었다. 아쉽지만 그는 닭다리 요리와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접시에 담고, 스파게티도 한 접시 가져와 깔끔하게 비운다. 외국 음식에 비교적 익숙한 편인 그에게는 이 정도면 만족스럽고 충분한 점심이다.
식사를 마친 그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그의 시선은 이곳저곳을 가로지르며, 작은 공간 속에 고스란히 담긴 터키의 정취를 하나씩 살핀다. 벽 한쪽에는 투박한 글씨로 쓰인 관광 안내 책자가 빼곡히 놓여 있고, 그 옆 선반에는 소소한 기념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나무로 만든 열쇠고리부터 손바닥만 한 도자기 접시, 그리고 이국적인 향이 묻어나는 비누와 향초, 목욕탕 앞에 깔면 딱 좋은 크기의 양탄자까지, 각기 다른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절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튀르키예와 파묵칼레 등 관광지를 소개한 책자가 가판대 위에 진열되어 있는데, 한글판 책자 앞에 ‘KOREA’라고 손 글씨로 큼직하게 적어 놓았다. 잠시 호기심에 끌려 ‘터키’라 적힌 책자 한 권을 들어 펼쳐 보기도 하며 식당 안에 마련된 기념품코너를 둘러본다. 터키의 거친 산맥과 부드러운 지중해 풍경이 담긴 사진들, 낯선 곳에 있지만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이미 그가 다녀왔던 곳의 풍경 사진을 차례로 뒤적거리며, 그는 마치 이 작은 기념품 가게에 튀르키예의 환대와 온기가 가득 차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튀르키예 디저트 카이막 Kaymak
접시에 카이막을 담아 상점 밖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따듯한 햇살이 너무 좋아, 파는 사람, 사려는 사람, 먹는 사람들이 붐비는 실내에서 먹기엔 너무 좋은 날이기에 야외 테이블을 선택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30여 분 정도 이동한 그는 이번엔 아치파얌(Acipayam) 시의 작은 마을 쿠마프샤르(Kumafşarı)에 위치한 꿀 판매 상점, 더 허니 하우스 The Honey House에 들른다. 튀르키예는 품질 좋은 꿀로 유명한데, 점심 식사 후에 이곳을 찾은 목적은 백종원 씨가 극찬한 튀르키예 디저트 카이막(Kaymak)을 맛보기 위해서다.
상점 안에서 카이막을 접시에 담아 그는 따스한 햇살 아래 자리한 야외 테이블을 골라 앉는다. 파는 사람, 사려는 사람, 먹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는 실내에서 먹기엔 너무 좋은 날이기에, 맑고 포근한 날씨가 한층 카이막의 풍미를 더해 주는 야외 테이블을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이 따듯한 오후 햇살 아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튀르키예의 꿀로 만든 진한 크림 같은 카이막을 맛보는 호사는 그에게 잠시 주변의 모든 소음을 잊게 만들었다.
카이막은 사르시르 sarshir 또는 카슈타/아슈타 qashta/ashta라고도 하는데, 생우유를 천천히 끓인 후 약불에서 60시간을 끓여 크림을 걷어내고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식히고 발효시킨 응고된 유제품이다. 전통적인 튀르키예식 아침 식사와 함께 주로 먹는 디저트인데, 이라크, 이란, 발칸반도의 일부 국가, 아프카니스탄, 그리스 등 주변 국가에서도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우리나라에는 백종원 씨가 소개하면서 유명해진 튀르키예 디저트이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카이막엔 치즈크림과 꿀, 양귀비 씨앗, 그리고 빵을 함께 담아주는데, 뭐 천상의 맛까진 아니어도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커피를 한 잔 곁들이면 더 좋을 것 같아 커피도 한 잔 주문하여 함께 먹어본 소감이다.
사철 꽃이 피니 좋은 꿀도 많이 생산되는 모양이다. 카이막과 곁들여 먹은 꿀이 맛이 있어 매장에서 사려다 벌집채로 포장된 것을 보고 짐이 될까도 싶고 세관 통관 때 검역상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 싶어 구매를 보류한다. 사실 튀르키예에 오기 전에 카이막이란 음식이 있는지조차 몰랐었는데, 함께 온 일행들 중 꽤나 많은 사람들이 카이막을 이야기하여 어떤 음식인지 궁금했던 차에 때 마침 파묵칼레로 가는 길에 데니즐리에서 카이막을 난생처음 먹어본 셈이다. 잠시 테이블에 앉아 오후 햇살을 쬐며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며 튀르키예 여행을 즐긴다. 이러한 잠시의 휴식도 유적지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여행이라 생각하는 그에겐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라오디게아 고대 도시 Laodikeia Antik Kenti
다시 버스에 올라 평야지역을 달린다. 붉은 속살을 드러낸 경작지와 풀이 난 휴경지가 교차되며 빠르게 지나간다. 들판이 달리고 가로수가 뒷걸음질 치며 빠르게 지나친다. 농사를 한 번 짓고는 1년이나 2년을 묵힌다고 한다. 비료를 쓰지 않아도 농사가 잘된다고 하니 축복의 땅이지 싶다. 이곳의 기후는 사철 따듯하다. 땅은 넓고 비옥하며 겨울이 없다시피 하니 농사짓기엔 이만한 땅이 없으리라. 그래서인지 먹을 것이 풍부한 이 땅에 예로부터 제국의 흥망성쇠가 반복되었고 세력과 세력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땅이다. 히타이트 문명 등 인류 문명이 일어났었고 로마뿐만 아니라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제국과 왕조가 일어날 때마다 전쟁 또한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지질적인 것이긴 하지만 지진 또한 빈번했었다. 오늘 그가 둘러볼 예정인 라오디게아도 지진으로 무너진 채 남아있는 한때 번성했던 고대 도시 유적지이다.
그렇게 평야지역을 달려 오후 2시 40분경에 라오디게아에 당도한다. 안탈리아에서 오전 10시경에 출발하였으니 족히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중간에 점심 식사와 디저트로 카이막을 먹었으니 1시간을 제한다 쳐도 4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한 셈이다.
라오디게아 고대 도시 유적지는 데니즐리 주 파묵칼레에 있는 고대 도시 유적지로 지진으로 무너진 그대로 남아있는 유적지이다. 2002년부터 데니즐리의 파묵칼레 대학교 고고학 팀이 현재까지도 발굴, 복원작업 중이다. 2013년 고고학 유적지는 튀르키예의 잠정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고 하니 고대 도시 라오디게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데, 튀르키예 당국에서 이 일대를 전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 놓았다고 한다. 구글 지도를 확인해 보면 라오디게아를 중심으로 사방 상당히 넓은 땅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경우 선택상품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은데,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하든 튀르키예를 여행할 예정인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꼭 가 보길 추천한다.
라오디게아로 입장하는 입구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허물어진 벽체만 남아있다. 입구를 지나 유적지로 들어서면 돌을 깔아 만든 고대 도시의 중앙도로 양옆으로 석조 기둥이 줄지어 이어지는데, 라오디게아의 콜로나드 거리(Laodikya'da sütunlu cadde)이다. 라오디게아는 목측으로 보더라도 다른 지형보다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근방에 아소푸스(Asopus) 강과 카프루스(Caprus) 강이 흐르며 형성된 좁고 긴 계곡 사이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였다. 남아있는 석조 기둥이나 허물어진 건축물 등을 보면 상당히 부유했던 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라오디게아 건설은 기원전 2천 년경 그리스 이오니아인들이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하고 정착하면서 세워진 디오스폴리스(Diospolis ‘제우스의 도시’) 또는 로아스(Rhoas)라 기록된 도시였으나, 알렉산더 대왕 사후 기원전 261-253년 시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셀레우코스(Seleucus) 제국의 왕인 안티오코스(Antiochos) 2세가 부인인 라오디케(Laodike)를 기리기 위해 도시를 재건하며 붙인 이름으로 라오디게아라 했다. 이후 AD 60년 네로 황제가 통지하던 때에 발생된 큰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에도 몇 차례의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 고대 도시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개의 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요한계시록 1: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역사적인 고대 도시 유적지를 본다는 것 또한 튀르키예 여행을 오기 전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고대 도시 라오디게아의 콜로나드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튀르키예로 여행을 온 것은 참으로 잘한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감개무량’이라 표현하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엔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땅이지만 성경에 기록된 도시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남다르고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지진으로 허물어지고 남은 도시의 흔적들만으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이니 온전한 도시였을 적엔, 그것도 과거 수천 년 전에 이러한 도시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직접 피부에 와닿게 느끼니 그저 경이로움 그 자체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천천히 걸으며 유적지를 살펴본다. 남아있는 흔적으로 과거의 용도를 추정하는 것은 발굴조사팀이나 전문가가 할 일이겠지만 교회터와 경기장, 원형극장, 목욕탕, 체육관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 등은 비교적 비전문가인 그의 눈으로도 구분이 되는 정도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지는 보존을 위하여 구조물을 세우고 지붕을 씌웠다. 안내판의 설명을 더듬더듬 읽어보니 초기 기독교 교회의 나르텍스 Narthex Room 구조에 대하여 설명을 적어 놓았다. narthex는 주요 제단 맞은편 본당 서쪽 끝에 위치한 입구의 설계로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대성당 및 교회 건축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요한 계시록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전하는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부유했던 도시, 실크로드의 관문에 위치하여 부를 누리고 살았던 도시와 무관하지 않은 기록이다. 과거에 성경을 정독하며 성경 속의 지명이나 인물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졌던 그였지만, 당시엔 그저 피상적이었음을 잘 알고 있는 터에 이곳 라오디게아에 와서 유적지를 돌아보니 그 기록이 결코 문자로 남아있는, 그저 교훈적인 메시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부유하게 살았던,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했던 라오디게아 사람들을 꾸짖는 메시지였음을 절실하게 느끼며 스마트폰을 꺼내어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성경의 기록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계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전엔 알지 못했던, 당시 라오디게아의 지정학적인 주변환경과 기술과 주요 산업 등이 비유된 것을 발견한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실크로드의 관문도시로 부유하고 풍요로웠다. 주변엔 두 개의 강이 흘러 식수뿐만 아니라 생활용수가 풍부했으며, 면직산업의 발달로 의식주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의복을 자랑했지만, 요한 계시록엔 벌거벗은 자와 같다고 비유했으며 눈병을 치료하는 의술(안약)의 발달로 자신들의 눈이 먼 줄 모르는 일을 꾸짖었다. 또한, 긴 거리를 흘러와 라오디게아로 들어오는 미지근한 물(히에라볼리와 골로새로부터 라오디게아로 흘러오는 물, 아무리 차가운 물도 긴 거리를 흐르다 보면 미지근해지는 물)같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믿음을 훈계하고 있는 메시지였다.
그는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한 번쯤은 곱씹어 생각할 만한 기록임을 폐허가 된 라오디게아에서 새삼 느끼며 당시엔 교회 내부였을 이곳에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잘 그려지진 않지만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예배드리는 그림을 상상 속으로 그려본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간 낯선 곳으로 여행을 온 그 자신을 그 그림 속으로 슬쩍 밀어 넣어 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이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물질문명의 발달로 살기는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절실함은 그전만 못하다는 것을 육십여 년을 살아온 그도 어느 정도 느끼는 바인데, 수천 년 전 사람들 틈에 그 자신을 끼워 넣어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잊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로병사를 거듭하여도 돌은 세상에 남는다. 남아서 과거의 흔적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하여 라오디게아는 폐허나 다름없이 돌무더기만 남아있는 셈이었다. 한때 멋지고 부유하게 살았던 라오디게아이지만 거듭되는 지진으로 이렇게 돌무더기만 남은 것이다. 1710년, 1899년 라오디게아는 두 차례의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다.
시간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고대 도시의 흔적을 눈에 담는다. 눈앞에 펼쳐진 라오디게아의 폐허는 세월의 무게를 품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무너진 돌기둥들과 금이 간 아치,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조각들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증거였다. 그 사이를 걸으며 그는 마치 당시 사람들의 일상이 스쳐가는 듯한 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수많은 생과 사가 오갔을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 순간 아주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때는 번성했을 도시가 지금은 황량한 돌무더기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쓸쓸하게 다가오면서도, 그 위대한 역사의 흔적을 직접 마주한 벅참이 가슴속에 잔잔히 울린다. 유적지를 떠나며 그는 아직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그의 마음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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