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그 가치가 빛나는 문화재

by 조영환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1887년, 지금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로잔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의 뒤를 있는 국가로 정통성을 인정받는 해가 1923년이니 오스만 제국시대의 일이라 봐야겠다. 1864년 독일의 철도 기술자인 칼 유먼(Carl Humann)은 1867년부터 착공되는 도로공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파묵칼레 방문하여 현장조사를 하던 중 산기슭 끝자락에서 가공된 대리석 돌조각이 흩어져 있는 유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1873년 도로 건설을 마친 후 독일정부의 지원과 오스만 정부의 공식허가를 받아 1880년부터 역사적인 발굴을 시작한다. 파묵칼레(Pamukkale) 근방의 뷔위크 멘데레스(Büyük Menderes) 언덕에서, 1354년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된 후 533년 만에 원형극장, 공동묘지, 목욕탕, 교회, 신전 등이 폐허가 된 채 넓게 흩어져 있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를 세상에 드러낸 엄청난 발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고고학은 공부한 적조차도 없는 엔지니어가 이 역사적인 발굴로 유럽사회에 일약 유명한 고고학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일이기도 하다. 1887년의 일이다. 1887년은 조선의 경복궁에서 전등이 처음으로 켜진 해이다. 이렇게 무명의 엔지니어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진 히에라폴리스는 이후 1957년부터 2008년까지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재발굴되어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유네스코는 데니즐리 파묵칼레의 아름다운 석회층과 온천은 자연유산으로 히에라폴리스 역사유적은 문화유산으로 1988년 복합 세계유산으로 지정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세계유산 지정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이다.


무명의 한 철도 기술자가 발견한 히에라폴리스는 이후 수 차례 발굴작업과 복원이 이루어졌는데, 2016년 튀르키예의 데니즐리 Denizli 고고학자들은 히에라폴리스 북부지역의 묘지발굴 작업을 통하여 리쿠스 Lykos 강의 넓은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체켈레스 Çökelez산의 측면이 고대사회 정착지의 중심지였음을 밝혀내는 엄청난 고고학적 성과를 거둔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대사회의 정착지요 도시였음이 밝혀졌는데 아직도 발굴을 기다리는 북부지역의 묘지가 남아있다고 하니 과연 어느 정도 규모의 유적지일지는 가히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구글 지도를 열어 확대해 보면, 체켈레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Lykos 강의 넓은 평야는 고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및 경제적 이점이 있는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히에라폴리스는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 지역에서 진행될 추가적인 발굴이 매우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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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20분, 라오디게아 고대도시 유적지를 떠나 파묵칼레 근처 히에라폴리스에 당도한 필자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무수히 많은 돌과 하단부가 남아있는 석축, 그리고 물을 끌어올 때 쓰였을 도랑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과거 이곳에 있었던 도시의 흔적이 깨지거나 부서진 돌들만 흩어져 있는 언덕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고대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하였을 정착지였던 이곳에 생명과도 같은 물을 공급하는 수로였을 도랑에 하얗게 석회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아 이곳의 물은 석회성분이 많이 함유된 수질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단층을 뚫고 나온 석회함량이 높은 온천수가 언덕을 따라 흐르며 탄산칼슘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진귀한 지형지물(地形地物)을 튀르키예 사람들이 ‘목화의 성’을 의미하는 파묵칼레(Pamukkale)라 이름 붙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본격적으로 히에라폴리스 유적지를 돌아보기로 하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입장을 한다.


히에라폴리스는 언제 만들어진 도시일까? 히에라폴리스 안내도엔 16개의 유적지를 3개 국어로 설명하고 있다. 영어로 병기되어 의미를 알 수 있어 잠시 안내도를 살펴본다. 나지막한 산 끝자락 기슭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고대도시 유적지 중 16개만 기재되어 있다.

1) Kuzey nekropolü / Northern Necropolis 북쪽 고대묘지

2) Hamam-kilise / Baths – basilica 목욕탕 – 바실리카

3) Şehir dışındaki Tiyatro / Suburban Theatre 교외 극장

4) Frontinus Kapisi / Frontinus Gate 프론티누스 문

5) Umumi Tuvalet / Latrina 공중 화장실

6) Triton Çeşmesi / Nymphaeum of the Tritons 트리톤 샘

7) Agora / Agora 아고라

8) Frontinus Caddesi / Frontinus Street 프론티누스 거리

9) Tapinak Çeşmesi / Temple Nymphaeum 신전 샘

10) Apollon tapınağı / Temple of Apollon 아폴로 신전

11) Plutonium (Cehennem Kapisi) / Pioutonion 플루토니움 (지옥의 문)

12) Tiyatro / Theatre 극장

13) büyük Hamam / Large Baths 대형(중) 목욕탕

14) Gymnasium / Gymnasium 체육관

15) Güney Roman kapisi / South Roman Gate 남쪽 로마 문

16) Aziz Philippus Martyriumu / Saint Philippe Martyrion 성 필립 마르티리온

그리고 (A) Antik Havuz / Ancient Pool 고대 수영장


고대 그리스어 이에로스 ιερος (hieros)는 신성한, 성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폴리스 πολις (polis)는 도시를 뜻하는 단어이니 ‘신성한 도시’, ‘성스러운 도시’란 얘긴데, 기원전 3세기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아폴론 신전을 건축하면서 히에라폴리스가 건설된 것을 감안한다면 ‘거룩한 성’이나 ‘거룩한 신전’ 정도로 의역하는 것이 맞지 싶다. 성경에 기록된 일곱 교회는 아나톨리아 서쪽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몇 시간 전에 둘러봤던 고대유적지 라오디게아에서 북쪽으로 약 10㎞, 골로새(Colosse)에서는 약 20㎞ 거리에 히에라폴리스가 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 4:13을 보면, 히에라폴리스 기록이 나온다. 바울은 골로새인들에 보내는 편지에서 동료 에바브라가 골로새,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사람들을 위하여 수고한 것을 증언하고 있다. 골로새 사람 에바(Ephah)가 이 세 곳에 회중(會衆), 교회를 설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을 보이는 기록이다.

(골 4:13)“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I vouch for him that he is working hard for you and for those at Laodicea and Hierapolis.”


안내도 2) 번의 Hamam-kilise / Baths – basilica? 목욕탕과 성당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안내도 16개의 유적 중 가장 궁금한 사항이었는데, 성경의 기록과 히에라폴리스의 건설, 그리고 당시 기독교의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납득이 된다. 로마식 목욕탕(Hamam)이 대성당(Basilica)으로 재건축되었다는 설명으로 이해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BC10세기경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배하였던 히타이트 제국은 급격하게 붕괴된다. 히타이트 제국의 붕괴는 아직도 제대로 알려진 사실들이 거의 없는 역사적인 미스터리인데, 당시 고대 그리이스인 중 한 부류인 도리아 인(Dorians)이 발칸반도로 남하하자 이에 밀린 발칸반도의 원주민이었던 프르지아인(Frigyalılar, Phrygians) 들이 아나톨리아로 이주하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세력 판도에 영향을 주는 대사건이 일어난다. 프르지아인들은 당시 트로이의 속국이었는데, 트로이 전쟁 이후 트로이 왕국의 멸망과 함께 힘을 키우더니 그리스 세력을 피하여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동한 것이다. 이들이 히타이트 제국의 붕괴와 직접적인 관련 있는지, 이들의 아나톨리아 반도의 진출 시기와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과 상관관계는 있는지는 정확하지도 않고 학계의 이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들이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인 하투사(Hattusa: 지금의 튀르키예 앙카라 동쪽 150㎞ 지역)를 함락시키며 히타이트 제국은 급격하게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BC 8세기경 프르지아(Phrygia) 왕국은 고르디움(Gordion), 지금의 앙카라 남서쪽으로 약 94km 떨어진 Yassıhüyük를 수도로 삼으며 아나톨리아 중서부를 지배하는 강자로 역사 전면에 이름을 올린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7세기경 프리지아 왕국의 주요 도시로 건설되고 이후 기원전 2세기경에는 페르가몬 왕국의 땅이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지였던 이곳에 휘하의 장군 리시마코스를 주둔시키고 친정을 계속한다. 페르가몬 왕국은 리시마코스 사망 이후 이 땅을 지배했던 헬레니즘 왕조이다. 기원전 130년 로마제국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로마의 전형적인 도시형태로 발전된다.



비잔틴 남문 Güney Roman kapisi / South Roman Gate


히에라폴리스로 들어가는 남쪽 관문인 비잔틴 게이트 15)

Güney Roman kapisi/South Roman Gate

는 판석 위에 아치형태로 쌓은 관문과 좌우로 도시의 성벽이 이어진다.

아마도 대부분 붕괴되고 일부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크고 작은 돌을 짜 맞추는 방식으로 축성한 성벽이다.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석회암질의 돌에 거뭇거뭇 이끼가 앉아 변색된 돌이 지탱해 온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치를 받치고 있는 판석은 누렇고 벌건 빛깔을 띠는 것으로 보아 철분이 많이 섞여 있는 암질(巖質)인 모양이다. 유난히 파란 하늘은 필경 히에라폴리스의 번영과 붕괴를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기는 안고 빈 유모차를 끌고 관문을 나오는 부부, 그 뒤를 따르는 어린아이와 몇몇 사람들이 막 관문을 나서고 있다. 이들은 붕괴된 히에라폴리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관문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도시로 물을 공급하던 수로가 폐허가 된 옛 도시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물이 흘렀을 수로는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있다. 주변은 폐허가 된 채 크고 작은 돌만 흩어져 있다. 멀리 산 밑 구릉지에 비교적 형태가 제대로 남아있는 유적, 원형극장 3) Şehir dışındaki Tiyatro/Suburban Theatre을 바라보며 히에라폴리스로 들어간다.

철망으로 울타리를 하고 지붕을 씌운 유적지 모퉁이를 돌아 클레오파트라가 수영을 즐겼다는 온천 (A) Antik Havuz/Ancient Pool으로 향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수영을 즐겼다는 온천 Antik Havuz/Ancient Pool


히에라폴리스의 많은 부분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그런데,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알려진 것은 이 지역이 로마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로마는 가장 먼저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에 주목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에서 수영을 했다고도 하는데, 더 분명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산화칼슘, 중탄산염, 황산염 및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철분과 방사성 혼합물이 함유된 섭씨 35도의 뜨거운 물이 신경통을 치유하는데 그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고대 로마인들이 이곳에 수영장과 온천장을 만들었고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무르며 각종 질병을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수영장 바닥엔 지진으로 아폴론 신전이 무너지며 흩어진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단 하나의 수영장이다. 이른바 골동품이 잠겨 있는 곳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보다 물밑에 가라앉은 기둥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싶다. 수영장 옆 휴게시설에서 음료도 마실 수 있고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골동품 수영장에서 몸을 담그고 잠시 머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일정상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수영장 주변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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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극장 Şehir dışındaki Tiyatro/Suburban Theatre


히에라폴리스에는 극장 두 개가 안내도에 표시되어있다. 하나는 시가지 밖 교외에 있는 원형극장 3) Şehir dışındaki Tiyatro/Suburban Theatre이고 또 하나는 시가지 내에 있는 원형극장 12) Tiyatro/Theatre이다. 우리는 언덕길을 올라 교외의 원형극장으로 올라간다. 비교적 원형(原型)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는 원형(圓形) 극장이다. 특히, 거듭되는 지진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대부분 손상되지 않았다 하니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우선 고대도시에 살았던 사람이 앉아서 관람했을 관중석에 앉아 무대방향을 내려다본다. 사진이나 영상물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느낌이다. 실제 이곳에 앉아 있다 보니 조금은 흥분도 되고 또 조금은 빙의되는 느낌이다. 극장 너머로 신전의 조각상과 신전터가 들어온다. 돌로 쌓은 계단 높이가 한 걸음에 오르내리기엔 버거운 높이다. 서기 60년 지진 이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셉티무스 세베루스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좌석의 아래 절반 정도와 무대는 보존을 위하여 개방하지 않고 있다. 관중석 최상단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면 규모 또한 상당히 웅장하단 느낌이 든다. 극장 정면의 길이는 91m에 달하고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하니 당시 이 도시에 살았던 인구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가장 번성했을 때 인구를 1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는데, 상암 경기장의 수용인원이 약 1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수용 규모였을 것이다.



북부지역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 Kuzey nekropolü/Northern Necropolis


히에라폴리스의 북쪽 끝에 1,000여 기 이상의 묘지와 석관이 아직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다른 지역의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공동묘지와 달리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목욕탕과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다소 생경하기도 하고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던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의 이 석관들이 온천수를 이용한 치료와 휴양을 위해 몰려들었던 병자들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니 그렇게 이해하면 한편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도시와 온천은 뗄 수 없는 관계임이 분명한 사실일 것 같다. 온천을 찾는 사람들은 당연히 머물 곳이 있어야 했을 것이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하여 도시가 번성하고 확장되었을 것이다. 히에라폴리스의 번영은 온천 때문일 가능성이 클 것 같다. 또한, 필자는 유럽을 여행하며, 그리고 영국의 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인 일본을 여행하면서 마을 가까이에 있는 공동묘지를 본 적이 있는데, 유럽의 묘지는 산에 있지 않고 마을 주변 가까이 두는 장례문화를 이해한다면 뭐 그리 생경한 일은 아니지 싶다. 아무튼, 히에라폴리스와 구별하기 위하여 ‘죽은 자들의 도시’, 즉 네크로폴리스라 불렀는데, 일부는 뚜껑이 열려 있기도 하고 간간이 파손된 채 흩어져 있는 석관이 보인다. 정말 돌만 남은 유적지라는 생각을 유적지를 둘러보는 내내 하게 되는 히에라폴리스이다.



성 빌립보 성당 Aziz Philippus Martyriumu/Saint Philippe Martyrion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에서 기독교 전도 사역을 한 사도 빌립보(Philip)는 87년경에 도미티아누스(Domitian, Domitianus) 황제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한다. 기독교적으로 봤을 때 히에라폴리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사도 빌립보가 이곳에서 십자가형으로 죽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고대 프리기아 (Phrygia)의 주요 도시였던 히에라폴리스의 기독교 주교구이기도 하였다. 기독교 건축물로는 대성당, 세례당, 교회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크고 독창적인 건축물은 순교자 성 빌립보 기념 성당(martyrium of St Philip)이다.


히에라폴리스에는 이외에도 님파에움 신전 9) Tapinak Çeşmesi/Temple Nymphaeum과 아폴론 신전 10) Apollon tapınağı/Temple of Apollon, 체육관 14) Gymnasium/Gymnasium 등의 유적이 있지만, 광범위한 폐허에 깨지고 갈라진 돌기둥과 판석, 성채나 벽채에서 무너져 내린 돌들만 가득하고 시간도 부족하여 유적지 관람을 끝내기로 한다.


오늘 필자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고대도시 유적지를 두 곳이나 돌아봤다. 그런데, 유적지를 보며, 그리고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뭔가 허전하다. 유적지 자체도 폐허나 다름없는 곳에 깨지고 쓰러진 돌뿐이고 하다못해 그 흔한 조각상 등 당연히 있어야 할 유물들이 보이지 않으니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느낌이다. 오래 세월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유물은 없다 할 수 있는 그런 유적지를 돌아본 필자의 마음까지 덩달아 허전해지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어 마음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한 바람만 휑하니 불고 있달까. 뭔가 본 것 같기는 한데, 제대로 본 것은 없다는 느낌이랄까. 왜일까? 황량하리만큼 텅텅 비어 있다는 느낌은 필자만의 공허감이 아닐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란 꽃이 피는 곳에 가면 마음에도 꽃이 피는 법이다. 황량한 폐허와 같은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오니 마음까지도 공허해지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싶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독일 정부와 오스만제국 말기의 정부 간 협약에 의하여 발굴되었다손치더라도 너무나 많은 유물들이 발굴이라는 이름 하에 약탈된 느낌이 드는 것은 순전히 필자만의 생각일까? 사실 이곳의 유적 중 옮길 수 있는 것은 전부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머리가 없는 조각상 같은 것은 진품이 아니라고 한다. 없는 것 만도 못한 일이다. 히에라폴리스 부지 옆에 박물관을 지어 소장하고 보존하였더라면 좋았을, 이곳에 있어야 할 것들을, 당연히 이곳에 있어야 제구실을 할 유물들을 굳이 독일까지 가져가야 했을까?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다. 물론, 목욕탕 유적을 개조하여 지은 박물관이 있긴 하다. 일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는데, 목욕탕 유적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 자체가 유적의 훼손이라는 생각이 필자의 소견이다. 그리고,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과 추정인데, 오스만제국 말기에 히에라폴리스 유적 등 고대도시 유적에 대하여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는 이러한 유적들이 이슬람 유적들이 아니라는 점,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로마 유적이 대부분이라는 점 또한 오스만 정부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방치 수준으로 놔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쯤 되니, 일제 강점기 떼 문화재 약탈을 당해 본 바 있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필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도 뼈아픈 일이라 여기는데, 튀르키예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문화재 약탈은 불법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합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선을 넘는다면 야만스러운 탐욕이다. 발굴에 따른 협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 문화재요 유적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는 필자의 생각이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다면 그 절차가 아무리 합법적이었다 하더라도 선을 넘은 것이고 야만적인 약탈 아닐까? 발굴에 기여한 지대한 공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것을 가져다 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고 입장료를 받는 것이 과연 문명국가로서 합당한 일인가? 물론 협정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하여 가져간 것이지만, 합법이라는 포장으로 약자에게 들이댄 절차는 포장만 합법이지 또 다른 폭력 아닐까? 문명국인 독일 정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라며 하루빨리 유물들이 이곳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덧붙여 과거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과 일본은 제국주의 팽창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약탈한 것은 그들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니 하루빨리 그들이 약탈한 우리의 문화재도 있을 곳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글을 빌어 적어본다. 물론 삶은 호박에 젓가락도 들어가지 않을 일이겠지만, 이렇게나마 허전하고 공허했던 마음을 부여잡고 파묵칼레 석회 언덕(석회붕)으로 향한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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