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의 흔적을 걷는 색다른 경험 파묵칼레

파묵칼레(Pamukkale)의 붉은 햇살

by 조영환

파묵칼레(Pamukkale)의 붉은 햇살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보이는 튀르키예 남서부의 데니즐리, 히에라폴리스 동쪽 끝 언덕, 이곳엔 자연이 빚어낸 신비한 지형이 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 신비한 지형을 목화(Pamuk)처럼 하얀, 성(kale)과 같다 하여 “목화의 성 cotton castle", 파묵칼레(pamukkale)라 부른다. 이 지역은 수천 년간 수백 개의 샘(온천공)에서 미네랄이 풍부한 뜨거운 광천수가 솟아 지표로 흐르면서 일찍이 온천이 만들어지고 온천을 찾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도시가 만들어진다. 히에라폴리스는 그렇게 석회층 위에 세워진, 길이 2,700m 너비 600m에 달하는 온천 도시였다.



지표로 솟는 뜨거운 물에 함유된 탄산칼슘이 산소와 결합해 흐르면서 지표면에 탄산칼슘 결정체를 남기는데, 탄산칼슘이 물과 결합하면서 이산화탄소는 분리되고 탄산칼슘만 침전되어 나중에는 딱딱한 석회층이 형성되면서 파묵칼레와 같은 하얀 대규모 석회붕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질적으로 온천 주변에 퇴적, 형성되는 석회암의 한 형태를 석회붕(Travertines)이라 한다. 파묵칼레 온천수는 류머티즘, 심장, 신장, 위, 동맥경화, 혈압, 피부질환 등 순환기 질환에 특히 뛰어난 치유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온천이다. 지금도 평균 35°C의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지이기도 하다.



필자가 히에라폴리스 유적지를 들러 보고 파묵칼레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일몰이 시작되기 시작한 오후 5시 30분경이었다. 새하얀 석회붕이 붉게 물드는 시간이다. 태양이 낮게 뜨는 시간과는 또 다른 풍경으로 변하는 파묵칼레는 시간마다 다른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한다.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도 조금은 다른 빛깔을 띠는 것으로 보아 낮에는 물이 고인 웅덩이(terraces 또는 Pools)에 파란 하늘이 내려올 것이고 빛의 굴절에 따라 분홍 빛깔, 옥빛깔로도 바뀔 것 같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물이 흐르는 수로를 따라 발을 담그고 간단하게나마 온천을 즐기고 있다. 새하얀 석회붕 위로 내려앉은 붉은 빛깔은 신비롭기까지 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튀르키예를 여행하다 보면 축복받은 땅이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파묵칼레 또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남는 곳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파묵칼레 언덕으로 들어간다. 따듯한 물이 발에 닿고 흐르는 물결처럼 퇴적된 석회층 위를 걸어본다. 이렇게 수천 년을 흐르며 만들어진 석회층 위를 걷는 지금의 이 기분,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천 년은 족히 되고도 남을 오랜 시간의 흔적을 걷고 있는 느낌은 꽤나 색다르고 멋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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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물이 흐르는 수로에 발을 담그고 그렇게 붉게 물드는 파묵칼레 언덕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경이로운 자연 앞에 어찌할 줄 모르고 어린애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이 순간을 사진에 담기 위하여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파묵칼레 언덕에 내려앉는 붉은 햇살을 만끽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햇살만큼 가득 품에 안는다. 발을 담근 채 멀리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해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있다 보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아니 그간의 여독이 싹 풀리는 듯한 나른함이 찾아온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나른함을 즐기기로 한다. 계단식 다랑이 논처럼 파인 웅덩이, 영어권 사람들은 테라스라고 하는 그 웅덩이에 찰랑거리며 흘러넘치는 물이 붉은 햇살을 받아 얼마나 예쁘던지… 잠시 뭔가 홀린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런 보석 같은 물이 찰랑찰랑 넘쳐흘러 한 단 아래의 웅덩이로 흐르고 그렇게 수십 개의 웅덩이를 만들며 언덕 아래로 이어진다. 그렇게 흘러넘친 물이 절벽을 만나 급전직하로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니 그 또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폭포는 언덕 아래 커다란 호수를 이루고 사람들은 호수 주변에 머물며 오늘 하루의 삶을 위로받는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풍경이어서 이곳이 지상낙원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풍경을 마주하며 잠시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본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전혀 다른, 말로 이루 다 이야기할 수 없는 너무나도 멋진 풍경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풍경과 하나가 되어 빠져든다. 그러고 한참을 있다 보니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된다. 먼저 간 사람도 생각이 난다. 함께 왔더라면 엄청 좋아했을 그 사람, 애틋함만 남기고 먼저 간 그 사람을 잠시 생각하며 천천히 언덕을 거닐며 발바닥을 간질이는 온천수와 석회층에 온전히 자신을 맡겨본다. 소금처럼 새하얀 절벽에 기대어 사진도 한 장 남기고 물이 마른 깔끄러운 언덕도 걸어본다.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수천 년을 흘러 내게 닿았을 이 물결을 느끼는 것은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경이로운 경험이기에 가능한 오감을 열어 기억에 담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함께 온 친구들이 이제 가자고 보채는 소릴 듣고서야 언덕을 빠져나온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석회붕 언덕을 바라보았지만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자연의 신비라 아니할 수 없는 파묵칼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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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묵을 호텔은 골로새(Colossae) 호텔이다. 파묵칼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국제 온천 센터인 카라하이트(Karahayit) 마을에 온천수를 이용하여 스파(Spa)를 즐길 수 있는 5성급 호텔이다. 골로새는 과거 골로새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 골로새서 기록,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폰이 남긴 "인구가 많고 부유하고 규모가 큰 도시"라는 기록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대도시였을 것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15㎞ 거리에 있는 유적지인데, 구글 지도를 열어보니 일대가 전부 녹색으로 표시된 땅에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인근에 작은 도시가 있고 도로도 이 땅을 비켜 이어진다. 사람이 사는 도시의 기본적인 도로나 시가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벌판이나 다름없는 땅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고대도시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어떤 사연으로 도시가 무너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지진으로 땅속에 도시 전체가 묻혔다 하고 혹자는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설만 분분하다. 잡초만 무성한 곳에 흩어진 돌, 덩그러니 세운 표지판, 그리고 무심히 부는 바람만이 이곳이 골로새였음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아득한 시간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는 골로새가 세상에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잊힌 이 도시는 이제 무성한 잡초와 흩어진 돌무더기, 그리고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속에만 그 존재를 내비칠 뿐이다. 이곳을 거닐며 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들과 마주한다. 과연 골로새는 어떤 모습으로 번성했을까? 그 도시는 왜,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들은 그렇게 땅 속 깊이 감추어졌고, 언제가 되어야 비로소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아무튼, 골로새 호텔에 짐을 풀고 인근에 양갈비를 잘하는 곳이 있다 하여 일행들 중 원하는 사람들만 따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식당에서 보내준 승합차를 타고 출발한다. 차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귀에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식당 한편 부스에서 한국 노래를 썩 잘 부르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흥이나 함께 장단을 맞춰주니 엄지손가락을 펴서 보여주는 센스까지 있는 사람이다. 튀르키예 사람이라는데, 한국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른다. 어떻게 배웠냐고 물어보니 인터넷을 찾아보고 배웠다 한다. 그러면서 유튜브가 열려 있는 스마트폰을 들어 보인다. 한국말도 곧잘 하는 편이다. 모든 것이 낯선 땅을 여행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분위기가 여행자를 편안하고 푸근하게 해 준다. Yörük Evi란 식당인데, 편안하게 여흥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노래를 마치더니 필자더라 한 곡 하라며 마이크를 넘겨준다. 내친김에 멋지게 한 곡 부르고 자리를 잡아 앉는다. 노래 한 곡으로 일행들이 살짝 고무된 분위기가 되었다. 상위에 음식이 차려지고 작은 숯불 화로에 양갈비가 올려진다. 맛을 보니 양갈비 특유의 냄새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향신료가 강하게 가미된 것도 아닌데, 뭘로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냄새를 잘 잡았다. 우리는 취향대로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여 맛있는 양갈비로 저녁식사를 하고 추가로 술도 좀 더 시키고 양갈비도 조금 추가해서 넉넉하게 먹고 마시며 여행지에서의 만찬을 즐긴다. 여독을 푸는데 약간의 술과 노래는 그만이지 싶은데, 종업원들이 어리다 할 정도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주 뻘 정도 되지 싶을 정도로 젊은 편임에도 꽤나 친절한 편이니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그렇게 즐거운 만찬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9시, 온천수로 목욕을 하고 푹 자기 딱 좋은 시간이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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