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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Jan 14. 2023

나를 속이는 거짓말만 안 하면 잘 살 텐데

지오디와 빅뱅도 알려주지 않지만 가삿말엔 거짓말의 이데아가 있다고?

금탁과 첫째 딸 자인.  뒤엔 그가 수학 중인 본 대학교. 본에 놀러갔을 때 내가 찍었다!


금탁이가 독일에서 잠시 돌아왔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얻은 허리디스크와 성인 ADHD를 들고 귀국했다. 먹고사니즘을 둘러싼 현실적인 대화가 이어지다 금탁이가 철학 박사 논문을 정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식사 자리는 과방부터 술자리에서까지 매번 그랬듯 어느새 철학 담의로 변모했다.


금탁의 논문 주제는 플라톤이 논한 거짓말 담론이다. 아저씨들의 사담 중 흔한 추억팔이용 옛날 음악 얘기에서 지오디나 빅뱅의 거짓말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아테네까지 나아갔다. 거짓말은 역시 플라톤이지. 


금탁이 말한 논문 방향은 이렇다.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인 크리톤의 논변을 담은 '크리톤'에 거짓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거짓말 중에서 ‘고귀한 거짓말’이 있다. 이런 거짓말은 집단에 소속감을 주거나 사회가 조화되고 유지되는 데 필요하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구전되어 내려와 한 집단을 구성하는 근거나 바탕이 되는 신화나 전설이 대표적이다. 정치의 관점에서도 통치자를 위해서가 아닌 피통치자를 위해서라면 고귀한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본인이 빌런으로 쫓기고 대신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세운 것처럼 말이다.

법철학까지 확장해서 보면 법 역시 일종의 고귀한 거짓말이다. 인간 사회서 잘잘못을 가려야 할 순간이 있다면, 철학자가 하나하나가 지니는 특수성과 고유성을 그대로 고려하여 판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다. 전 세계 모든 갈등과 사건에서 각기 다른 철학자가 나서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보편적이고 완전무결하게 모든 송사를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법을 만들었고 법관을 세워 송사를 다룬다. 이런 측면에서 법 역시 고귀한 거짓말이다. 


금탁이는 플라톤이 말한 거짓말 담론을 현실 정치에 엮어낸다고 한다. 인간 말세 정치판에서 고귀한 거짓말 찾아내는 게 쉬울까. 금탁아 힘내라구!



더 나아가보자.


그러나 누구나 알듯 거짓말의 이데아는 분명 악함이다. 악한 개념을 ‘고귀’ 같은 개념으로 수식하면 ‘착한 사기꾼’처럼 형용모순이다. 플라톤에 따라 선의 이데아가 있다면, 거짓말의 이데아가 악한 것은 맞다. 그렇다면 고귀한 거짓말은 그럼 대관절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그래서 거짓말의 모방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거짓말의 이데아가 악하다면, 그 그림자 혹은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짓말은 악함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고, 어떤 경우엔 유익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 거짓말은 어떤 거짓말이냐에 따라 거짓말의 이데아와의 거리감과 층위가 달라진다. 선한 결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한 거짓말, 가령 누구나 알고 있는 하얀 거짓말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플라톤이 여기서 찐 거짓말이 뭔지 언급한다. ‘가장 괘씸하고 못된 거짓말’ 말이다. 그것은 바로 본인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위에 언급된 소위 ‘말을 통한 거짓말’은 대개 남을 속이는 데 그친다. 

나를 속이는 거짓말은 대표적으로 무지다. 무지한 상태서 하는 얘기, 자기가 알지 못함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 내가 정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거나 무시하며 사는 상태, 이런 것들이 거짓말의 이데아에 가장 근접한 형태겠다.


금탁이의 박사 논문 주제로 이어진 얘기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게 됐다. 내가 하는 이 행동과 판단이 내가 원하는 일인가, 본심은 이런데도 생뚱맞은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무엇에 관해 무지하지 않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나를 속이면서 나만의 원칙이 있고 합리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재밌게도 지오디와 빅뱅의 ‘거짓말’에서는 무지를 바탕으로 한 거짓말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플라톤이 가사를 들으면 꾸짖었겠지. 어쨌거나 연애사에서 나를 속이는 거짓말은 슬프고, 상대방을 속이는 거짓말은 아프다.


나를 속이는 거짓말 하나 하지 말자는 건데, 참 그것 하나 지키면서 사는 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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