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상 Mar 15. 2023

당신의 확신은 항상 틀릴 수밖에 없다

오스카, 페이커, 모하메드 살라...예상과 확신은 맞거나 틀리거나


예전에 복잡한 사람이 보자는 영화를 보자고 했다. 미묘한 동행인과 영화관에 걸린 애매한 영화들 사이에서 그나마 괜찮은 영화를 골랐다. 미묘함 속에서 본 그 영화는 끝내주게 재밌었다. 상황은 묘한데 영화는 짜릿했다. 이런 묘미가 있을 줄이야. MBTI에서 자신있게 N이라고 하는 주변인들에게 한정해서 꼭 보라고 강권했다.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뜨겁게 흥행하고 뜨거움이 가실 무렵. 계절이 바뀌고 오스카의 계절이 왔다. 아시아계 첫 여우주연상을 선사하면서 제95회 아카데미에서 7관왕을 휩쓸었다. 아침에 이 뉴스를 확인하며 나는 영화를 본 직후 짐짓 확신이라도 했던 것처럼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제95회 아카데미에서 깜짝 놀랄 만한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된 영화도 비슷했다. 요사이 볼 거 마땅치 않은 극장가에서 유일하게 낭중지추처럼 회자되던 영화였다. 그날 영화 관람이 목적이 아니라 만날 명분이 필요해서 보게 된 그 영화는 극장을 나오면서도 두 사람 모두에게 울림을 줬다. 다음날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그 영화의 주연이 '미이라' 시리즈 이후 20년 정도 개인사 얽힌 깊은 슬럼프에 빠진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고, 이 영화가 그 해방로가 되었다고 들었다. 한정적인 공간에서만 진행되는 극이었지만, 거구의 몸을 분장해서 쏟아내는 주연 배우의 연기는 극을 태평양처럼 거대하게 느끼게 했다.



유일하게 보는 e스포츠 리그가 있다. 정확히 한 선수가 있는 팀을 응원하는 편인데, 애초의 그 선수의 전성기는 2015년부터 3년 동안이었다. 전성기를 넘긴 모든 스포츠 선수처럼 그 화려함과 존재감은 내리막을 걸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선수는 2023년 여전히 세계 최고의 e스포츠 선수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내 예상은 틀렸다.여전히 매주 그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감탄한다. 


2005년부터 응원했던 리버풀FC에서 이 선수의 영입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우승 경쟁에는 다른 리그 혹은 다른 팀에서 탁월한 활약으로 굳게 증명을 한 선수여야 했는데, 이 선수는 빠른 주력 빼고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그러나 이 선수는 첫 시즌부터 폭발적이었고, 득점에 관한 여러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듬해엔 팀을 유럽 챔피언으로, 그다음 해엔 팀의 사상 첫 리그 우승컵은 안겼다. 올해 그는 결국 리버풀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그가 리버풀에 오면서 퍼뜩 들었던 내 직관과 예상은 완전히 그것도 매우 철저하게 틀렸다. 틀린 게 대수인가. 이 선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됐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상 혹은 예언.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분석 또 직관으로 내놓는 전망. 이것들은 모두 탁월할까? 나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꾸준히 틀린 예상과 전망도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의문을 좇던 차에 깨달았다. 나는 확증편향에도 탁월하다는 사실을. 이 사실을 인정하면 자유로워 진다.


주변사람을 비롯해 여러 크고 작은 인연에도 내 예상과 직감은 시시각각 발휘된다. 저 아무개는 나랑 찰떡이니 앞으로 죽을 때까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을 거야. 저분은 나랑은 스타일이 안 맞으니 웬만하면 대화를 피해야지. 저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이상형이니 평생을 같이 살 수 있을 거 같아. 그는  아쉬운 부분이 조금 있지만 훌륭한 부분이 다른 점을 압도할 정도니 대성할 거야. 그러나 그게 맞았던 적은 얼마나 있을까? 맞았던 확신은 트로피처럼 마음 한 구석에 장식해놓고, 틀린 확신들은 머릿속 세절기에 넣고 잘게 갈아버리고 있는 게 인간들 아닐까.


나는 매번 확신한다. 그리고 빈번하게 몇몇 확신은 종국에 가서 실패한다. 그렇다고 그 확신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가 끝까지 맞을 것만을 확신해야 한다고 했는가. 확신이 중요한 이유는 확신하기까지의 과정이 매번 창발적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내일부터 내릴 모든 확신은 필연적으로 그 이전에는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던 종류의 확신이다. 다시 말해, 확신은 변증법적인 절차를 거치면서 다음번에는 더 건전하고 성숙해진 확신을 낳는다. 이 과정에서 틀림은 반복되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지속해서 받겠지만, 그 확신하고 틀리는 과정이 올바르고 더 나은 확신과 판단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두 팔 벌려 즐기시라.



나는 왜 그런 확신을 머릿속으로 낳았고, 뱃속으로 집어삼켰는가. 어쩌다가 이 확신은 내 배를 가르고 세상에 나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일까. 그런 확신이 결국 나에게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스스로 후회하거나 책망할 필요는 없다. 매번 최고의 확신을 하겠다고 욕심내면 상처로 돌아오겠지만, 


모든 경험이 기쁘거나 슬프거나 아쉽거나 놀라운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과정은 흥미롭다. 이 점이 중요하다. 내 예상이 맞으면 맞는 대로 성취감이 느껴진다. 그 예상이 틀리면 내 무능함과 부족함에 허탈하게 웃어넘길 수 있다. 회고와 반성으로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낳을 확신의 밑거름과 재료가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작가의 이전글 나를 속이는 거짓말만 안 하면 잘 살 텐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