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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Mar 18. 2023

개리 리네커 vs. BBC, 자세히 톺아보기

정치적 중립, 공정성이 문제라고? 그게 아니라 '불편부당성'이 핵심!


BBC 간판 축구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 MOTD)'의 오랜 MC인 게리 리네커 사건이 뜨겁다. 리네커가 보수당의 난민 정책을 두고 1930년대 독일 나치와 비유하며 트위터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큰 문제가 바로 촉발됐다. BBC 편집 가이드라인에 따라 BBC는 곧장 징계 절차 차원에서 리네커에게 출연 정지를 내렸고, 그 주 방송은 MC와 패널들이 등장하는 스튜디오 장면들은 생략된 채 경기 하이라이트로만 구성됐다.


반발은 거셌다. 프리미어리그 등 축구계 인사들은 리네커를 두둔했고, 동료 방송인도 리네커에 연대한 움직임을 보였다. BBC을 보이콧하자는 해시태그가 등장했고 시민 청원도 등장했다. 축구 팬들도 경기장에서 리네커를 위한 손팻말을 들었다. 


결국 BBC는 반발 여론에 한발 물러났다. 이틀 만에 출연 정지를 해제했다. 그리고 징계 절차의 근거가 됐던 규정을 검토하고 쟁점이 됐던 지점들을 돌아보겠다고 발표했다.



국내에도 비중 있게 보도됐다. 스포츠, 언론, 정치를 아우르는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내신을 통해 전달된 내용으로는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공정과 중립을 중시하는 BBC가 집권당을 날 서게 비판한 자사 프리랜서 방송인에 강한 징계를 내림으로 정치적 중립 원칙을 깨뜨린 것."


그러나 이 사건의 이면은 좀 더 깊은 층위의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의 본질과 표현의 자유까지 확장될 수 있는 다층적인 논쟁에 가깝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얘기들은 쉽게 들을 수 있다. "BBC는 중립적이어서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반쯤 맞고 반쯤 틀리다. BBC는 명시적으로 중립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말이 의미하는 건 BBC의 편집 가이드라인 항목 중 'Impartiality'를 지시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로는 '불편부당성'으로 흔히 번역된다. 

그러나 불편부당이란 번역은 수동적인 뉘앙스만 보이는 것 같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불편부당 원칙은 '공정(Fair)'이나 '중립(Neutrality)'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확실하게 다르다. '공정'은 보도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 공정하게 말할 권리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에 가까운 표현이다. 가령 기사에서 누군가 피의자로 보도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의 해명이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줘야한다. 양측이 충돌하는 사안을 전달할 때 일방적으로 한쪽의 입장만 듣고 보도에 옮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BBC 가이드라인는 '공정'을 포함한다. 


그러나 '중립' 혹은 '균형'은 가이드라인에 없다. 사람마다 이해하는 '중립적인 언론'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다를 것이다. 대개 한 언론사가 편집 방향이나 정치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정치집단이나 조직들을 비판적인 시점에서 다르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영국에 대입하자면, 어떤 사안인지는 차치하고 보수당과 노동당을 고루고루 까야 한다는 언론의 역할을 의미한다. 나는 이를 흔히 말하는 기계적 중립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이 이런 중립을 지향해야 한다고 하기엔 '중립'엔 구멍이 많다.


이 사태를 이렇게 도식화한 사람이 많다. 

"BBC가 중립적인 관점에 벗어났다. 보수당을 비판하는 방송인에 징계를 내림으로써 보수당을 두둔하는 포지셔닝을 했다"라고 이해하고, 이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해선 안 된다. 다시 말해, BBC 혹은 BBC 수뇌부의 보수화 여부가 쟁점이 아니다.


집중해야 할 가이드라인 원칙은 '불편부당'이다. 이 원칙은 편향되지 않고, 배제적이지 않고, 협소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정당이나 집단에 치우치면 안 된다"라는 단순한 접근보다는 고차원적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나 정의로움에 맞닿아있다. 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 있는 보도, 주류든 비주류든 합리적으로 무엇이 올바르고 적절한지 따져보는 보도, 민주주의 원칙 아래 어떤 논쟁과 논란에서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게 돕고 가이드를 해주는 보도를 말한다. 


BBC가 난민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보면 리네커 사태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직접 BBC 뉴스 안에서 난민을 검색해보자. https://www.bbc.co.uk/search?q=refugee&d=SEARCH_PS 



BBC는 전 세계 여러 난민 사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기사가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에 대한 여러 소식들을 전하고 있고,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자들이 난민 발생의 이유와 그들이 처한 상황 그리고 각 정부들이 어떤 노력으로 난민 문제를 해소하고 타협해나갈 수 있는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다.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포용적인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이는 가이드라인의 '불편부당'의 원칙에 근거한 보도 결과다. BBC 내부에 개인적으로 난민에 무조건 반대하는 직원이 있을 순 있어도 난민을 무조건 비판하는 BBC 보도는 있을 수 없다. BBC에 난민에 반대하는 논조가 있고, 난민에 엄격한 정책을 내는 보수당에 BBC가 친화적이라고 주장하기엔 난민 포용적인 보도들과 큰 모순이 있다.


BBC가 게리 리네커를 징계하게 된 원인은 이렇다. 보수당의 난민 정책이 나온 시점에서 분명 시민들도 각자 찬반 입장이 있을 텐데, 게리 리네커가 이런 논의를 차단하게 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불편부당'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리네커의 의견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도 아니다. 리네커에게 표현의 자유가 박탈됐다고 따지는 것과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가이드라인 원칙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다소 과격했고, 시청자들로부터 숙고가 부족한 것처럼 보여진 것은 BBC가 명백히 잘못했다.

BBC 편집 가이드라인은 모든 BBC 직원들의 실제 업무와 소셜미디어 활동에 적용된다. 게리 리네커는 BBC에서 가장 많은 임금을 받는 직원이며,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20년 넘게 진행하며 충분히 저널리즘의 역할을 하며 영향력 또안 대단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남은 숙제도 있다. BBC 가이드라인이 한 개인으로서 표현의 자유와 맞닿아 있는 리네커 사례처럼 회색 지역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개선이 필요한 것. 소셜미디어라는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가 오고 가는 공간에서 기존 가이드라인이 상위호환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BBC 내부의 면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BBC 저널리즘 교육에서 가이드라인을 교육받을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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