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겐 친숙 그러나 2024년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수지리와 음양오행
음양오행, 풍수지리,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란 이들에겐 자세하게 알진 못하지만 당연하고 친숙한 것으로 인식된다.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군가는 토속문화에 심취해 있기 마련이다. 조부모 묫자리를 알아보거나 할 때 풍수지리에 따라 심사숙고하는 모습 정도는 여느 집이나 겪었을 테다. 풍수지리를 모르고 그게 좋은 터인지 나쁜 터인지 객관적으로 검증 불가능하고, 가성비를 따지기 어려울 테지만, 이왕이면 다들 풍수지리설에 따라 좋은 땅을 돌아가신 고인에게 마련해 준다. 이런 문화는 비과학적이고 미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효용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좋지 못한 곳에 모셔놓고 유족들이 항상 신경 쓰이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스트레스와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다. 반대로 좋은 곳에 모셔 고인과 깔끔한 작별을 하고 열심히 이승에서 현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당연히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후자의 경우에 행복할 것이다. 좋고 나쁨을 따지는 데 무조건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 그게 사람들의 문화다. 이왕이면 문지방 안 밟기, 굳이 빨간 펜으로 이름을 쓰지 않기,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물이 흐르는 집을 선호하기. 우리는 어련히 이런 풍습 속에 살아간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의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설이 있다. 어릴 적만 해도 이를 주제로 TV 방송 프로그램이 종종 편성되기도 했다. 어느 시골에서 안 좋은 일들이 있어서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보니 어디에 커다란 쇠말뚝이 어디 박혀 있었다거나 하는 스토리였다. 그러나 쇠말뚝과 민족정기 스토리는 현대화가 고조되고 과학기술과 역사학이 진보하며 토지 측량에 활용된 도구라고 보며 쇠말뚝과 민족정기 간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는 게 정설이 됐다. 일본인들도 의도를 갖고 그런 행위를 했는지도 불투명하고, 실제로 영토 어딘가에 쇠말뚝이 박혀 있다고 해서 그게 국운에 영향을 끼치는지도 불분명했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의 침탈과 수탈의 아픔이 있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면 쇠말뚝 이야기가 등장하고 널리 퍼지게 된 것도 응당 납득이 간다. 대한민국이 산업화 이후에도 그런 설이 힘을 얻은 건 오랫동안 풍속이었던 음양오행과 풍수지리가 일본의 잇단 침략의 역사와 맞물리면서 쇠말뚝 담론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이 오랜 시간, 세대를 넘어 풍수지리를 수용하는 것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2024년에 풍수지리를 보고 비이성과 몰지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이처럼 문화를 특정 시기에 그 결과물만 보고 좋고 나쁨을 따지고, 이해할 영역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문화가 탄생하고 진보하고 변모하는 과정은 분명 그 지역, 그 사람들, 그 지리, 그 주변 환경에 맞는 특수한 맥락에서 오랫동안 스며들고 섞이고 재발견되는 총체적인 과정에 형성되고 굳혀졌기 때문이다. 각 문화가 갖는 특수한 맥락을 숙지하지 못하고 그 고유한 문화를 각자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감상해 버리는 건 명백한 오류다. 어느 문화나 풍습엔 외부인이 쉬이 납득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2024년에 풍수지리를 비과학적이고 몰상식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수천 년 역사가 있는 다른 지역 종교와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건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야만 할 수 있는 용기 가상한 행동이다. 새해를 앞두고 점쟁이나 역술가를 만나 새해 길흉화복을 따져보는 나라라고 먼 나라 아무개가 혀를 차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영화 ’ 파묘‘는 그런 토속적인 문화와 현대인들이 조화롭게 한 데 살아가는 모습을 오컬트적인 요소로 버무린 극이었다. '파묘'는 한국만의 특수한 문화 맥락을 포착해 흥미로운 오컬트 소재로 승화한 절묘한 작품이다. 스토리텔링에서도 참신했고, 그 설득력과 핍진성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동시에 다채롭고 조화로웠다. 풍수지리로 삶을 영위하는 아버지와 항공우주를 공부해 첨단과학인이 된 딸. 대통령 염을 하고 민간신앙적인 장례로 돈과 명예를 얻었지만 열렬한 기독교 신자. 굿이 시작하면 귀신처럼 무아지경에 빠지지만 쉬는 날엔 스피닝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MZ 무당.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보기 쉽다. 생명공학자이면서도 주일마다 창조 이야기가 담긴 성경을 보러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평소엔 포덕에 열중하지만 학교에 나가서는 서양학을 공부할 수도 있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나와 다른 문화를 함부로 미워하지 말자는 거다.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다른 언어, 다른 풍습을 마주할 때 가타부타 손가락질하고, 오직 내가 아는 문화적 가치와 지식의 관점으로 그것을 폄하하지 말자는 거다. 우리가 2024년에도 풍수지리, 음양오행, 도깨비불, 묫바람이라는 소재를 즐기면서 스릴과 공포를 만끽하는 것만큼 이 세상 모든 문화에도 저마다 몰입해서 즐기고 여러 감정으로 향유할 이유와 맥락이 있다.
과학기술의 꽃이 활짝 핀 2024년이라고 할지라도 음양오행과 풍수지리처럼 여전히 전근대적인 요소를 간직한 공간과 지역사회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걸 마주할 때 눈살을 찌푸리기보다 먼저 존중해 보는 건 어떨까. 여력이 되면 그걸 알아보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다. 이해할 줄 알면, 풍수지리도 외국인들에게도 이해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는 유혈사태가 발생했을 때 반달곰이나 야생 동물의 횡포로만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반면 누군가는 500년 전 땅에 묻힌 귀신과 목숨 건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지, 누가 압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