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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Mar 11. 2024

좋아하는 대상을 함부로 규정할 때 벌어지는 일

데이식스와 실리카겔 록 밴드로 규정했다가 얻은 깨달음

음악 평론이라든지 음악 기획이라든지 음악을 즐기다가 산업 쪽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웹진 '이즘(IZM)'에도 신청서를 쓰고 면접도 봤다가 추가 전형을 포기한 적도 있었고, 더 진지한 마음으로 JYP엔터테인먼트에 프로덕션 코디네이터로 입사지원을 한 적도 있다. ('이즘'의 과제는 참고로, 티아라 '롤리폴리'랑 마이클 잭슨 '빌리진'을 비교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미치게 소름 돋고 흥분되는 주제였다.)


청담동에 있는 구 JYP 사옥에서 면접을 봤는데, 면접 전 과제는 하위 레이블인 Studio J 소속 아티스트 두 팀 중 한 팀을 골라 차기 뮤직비디오와 앨범 커버 이미지에 대한 발표였다. 박지민과 백예린의 15&, 데이식스(Day6)였다. 


발표 준비로 누구보다 열심히 데이식스를 디깅하다


발표를 준비하며 열심히 들여다본 데이식스는 충분히 매력이 넘쳤다. 충분히 음악 산업에서 성공할 요소들이 많았던 데이식스는 록 밴드의 형태까지 갖추고 있으니, 록 덕후의 삶은 살아왔던 나에겐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발표 과제였다. 아이디어 내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 작전은 이랬다. 뮤직비디오는 진성 록 음악 팬이라는 걸 풍기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알 법한 대중성 있는 록 아티스트에서 아이디어를 따오자고. 그러면 록 음악에 탁월함도 보여줄 수 있고, 데이식스의 대중성도 챙기려고 하는 시각도 드러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프레젠테이션 제목은 "데이식스는 록밴드다"로 정했다.


발표는 딱히 막힘없었고, 아이디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전형을 안내하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차디찬 탈락이었다. 면접 대기 중에 전소미 님과 인사를 나눈 게 이 전형에서 얻은 유일한 낙이였다.


지금 돌아보니, 패인은 분명했다. 데이식스라는 그룹을 록이라는 울타리에 가뒀기 때문이었다. 데이식스가 취한 형태가 록 음악이었을 뿐이지, 그들은 굳이 전설적인 록 밴드를 벤치마킹할 필요도 없었고, 한물 간 이전 시대 록 아티스트의 레거시를 좇을 필요도 없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그 당시에 어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던 것인데, 나는 옛날옛적 고리타분한 레퍼런스를 들고 온 것이었다. 성수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쌍방울이 입점한 느낌이었겠지. 그럼에도 그때 내가 느낀 그 산뜻한 느낌 그대로 데이식스는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년 뒤 또 다른 산뜻한 밴드를 만났는데, 실리카겔이다. 이들을 처음 본 건 2022년 EBS 공감 '헬로루키' 결선에서였다. 조금 늦게 도착한 공연장에서는 '헬로루키' 출신으로서 축하 무대를 하러 온 실리카겔이 공연을 하던 중이었다. 푸른 조명들과 멤버들이 맞춰 입은 실리카겔 로고가 새겨진 회색 스웨트셔츠와 바지가 돋보였다. 기타리스트 김춘추가 열심히 기타 솔로를 하는 순간이었고, 보컬 김한주가 부드럽게 노래를 이어받아 부르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찾아 들은 그 곡은 '9'라는 곡이었다. 연주, 갬성, 패션 모두 한눈에 사로잡았다.

 

사실 저 옷 사고 싶다


적당히 큰 공연장에서 이제 막 신인을 벗어난 듯 한 4인 밴드의 연주는 축하 무대, 그 이상이었다. 무대를 기다리는 루키들에겐 축하인 동시에 프로씬이 주는 신고식, 그러니까 "너네도 이 정도 해야 프로가 될 수 있다"라는 위압감을 주는 듯한 관록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누군가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보컬과 자유도 매우 높아 예측할 수 없는 곡 전개에 불친절한 음악이고 개성이 과하다면서 호불호가 갈리는 밴드였다.


그리고 1년 뒤, 프로 무대에서 실리카겔을 제대로 다시 만났다. 펜타포트에서였다. 사실 한 해 전 이들은 펜타포트에도 왔었지만, 무더위에 굳이 공연을 봐야 하나 하며 패스했던 팀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꼭 봐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이들은 성장하고 존재감 내뿜는 밴드가 됐다.


펜타포트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록밴드의 진수라고 느껴지는 무대도 가졌다. 당시엔 미발매 곡이었던 'Tik Tak Tok'이었다. 강렬한 기타 인트로로 시작되는 곡은 중반에 다가가니 기타 솔로와 연주 파트가 3분 넘게 이어졌다. 으레 록 페스티벌에서 밴드들이 세트 리스트를 록 친화적으로 꾸린다거나 기존 곡을 편곡해 좀 더 세션 파트를 늘리는 방향으로 잡는데, 그런 팬 서비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앨범에 실리는 곡은 분명 연주 부분이 적당히 짧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록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연주 부분이 1분 넘게 길게 뽑히는 건 수십 년 전 감성이지, 요즘 트렌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Tik Tak Tok’이 발매되자 깜짝 놀랐다. 펜타포트에서 선보인 무대가 스튜디오 음원 버전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6분 18초짜리 곡은 2분이 넘는 지점부터 끝날 때까지 기타 솔로가 이어졌다. 드러머이자 리더인 김건재의 열정 넘치는 퍼포먼스도 짜릿했다. 뙤약볕이었음에도 4분 동안의 열성적인 록 질주를 보자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걸 보고 났을 때 드는 생각은 ”아, 실리카겔이 정말 록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록을 하려는구나!"였다.


실리카겔의 'Tik Tak Tok' 무대. 2023년 펜타포트에서 내게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또 반전이 있었다. 실리카겔은 정작 록 밴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유튜브채널 '머니그라피' 인터뷰에 나온 김한주는 "록 밴드로서 활동하는 것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밴드맨이라는 의식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그야말로 띠용..


그 이유는 명쾌했다. 록 밴드라는 어떤 의미를 극복해야 한다거나 하는 점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지금의 실리카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오히려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음악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렇다. 나는 다시 한 그룹을 가두려는 도전을 했고, 그 도전이 또 틀리다는 경험을 깨쳤다. 만약 내가 생각한 대로, 원했던 대로 이들이 록 밴드의 형태 안에서 음악 활동을 했으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발매하고 더 많은 사람이 만끽할 음악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데이식스와 실리카겔, 두 밴드가 내게 선물한 교훈은 그래서 이렇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나만의 시각으로 규정하고 정의하지 말자. 그러는 순간 그 대상은 본유의 아름다움과 그것다움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



2024년 초 실리카겔은 이미 정점에 올랐다. 록의 화신, 록의 계승자, 록의 부활 등 이런 구차한 수식어가 없이도 실리카겔은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K팝 아이돌과 나란히 무대에 올라 보란 듯이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공연했다. 또 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 그리고 올해의 음악인상을 받았다. 올해의 음악인상은 이전에 뉴진스 음악을 프로듀싱한 250, 방탄소년단, 이날치, 김오키, 박재범 등이 받았던 국내에서 음악 분야에선 가장 영예로운 상이다.


이러니 누군가는 "밴드 음악의 붐은 정말 온 걸까?", "한국에서 록이 부활했다"라며 희망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엔 동의하지 않는다. 록 음악의 시대가 다시 온 게 아니라, 실리카겔이 잘하는 거야.


"실리카겔이 승리한 것이지 록이 승리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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