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연습장에서 느끼는 소회
퇴직후 모처럼 골프 연습장에 나가 한 타 한 타 스윙을 해보았다.
그 순간, 문득 현역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연습장을 찾으면,
온갖 복잡한 현안 문제들—노사 이슈, 조직 과제, 리더십 고민 같은 것들을
한 손엔 클럽을, 한 손엔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쥔 채
공과 함께 쳐내곤 했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늘 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시간.
그래서 골프 연습장은
어찌 보면 조용한 전쟁터이자 작은 해법의 실험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같은 스윙인데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퇴직 이후 처음 찾은 연습장.
그립을 잡는 순간,
손끝에 닿는 감촉이 묘하게 낯설고 또 익숙했다.
음식의 손맛이 세월을 건너 기억을 소환하듯,
그립을 잡고 스윙하는 몸의 기억은
내 안에 남아 있던 삶의 조각들—기쁨, 억울함, 미련, 뿌듯함—을
하나하나 꺼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한 타를 치면 울그락,
회사에서 못다 한 말들이 밀려오고.
두 타를 치면 불그락,
억울했던 순간과 참았던 감정이 머리를 스친다.
세 타쯤 되면 잠시 평정,
하지만 네 타를 치면 다시 섭섭함이 가슴을 건드린다.
다섯 번째 타에는 울분,
그리고 여섯 번째 타에는
"그래도 이제는 뭔가 해야겠다"는 결의.
공이 날아가는 궤적마다
내 감정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한 타, 한 타
흩날리는 내 마음의 조각들이 드러났다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타 한 타가 나의 흩날리는 마음이지만,
다 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그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의 리듬이었다.
골프는 공을 치는 운동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이 되고 있었다.
공이 맞지 않을 땐 나를 탓하지 않기로.
감정이 일렁일 땐 억누르지 않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시간을 ‘흔들려도 괜찮은 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생각해보면
현역 시절의 연습장은
현안을 정리하는 ‘두뇌의 골프’였다면,
퇴직 이후의 연습장은
감정을 정리하는 ‘마음의 골프’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오늘도,
한 타 한 타를 치며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리하고,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