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더 크지 못한 이유(?)
운동을 마친 저녁,
오랜만에 찾은 동네 목욕탕.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문득 오래된 기억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유레카.
퇴직 이후,
내가 조직에서 왜 더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까?
왜 결국 그 자리를 떠나야 했을까?
그 수많은 질문의 실마리가,
이 뜨거운 물 속에서 조용히 떠올랐다.
나는 유난히 많은 곳을 경험해왔다.
공장, 본사, 해외법인, 연구소.
그리고 노무, 인사, 조직문화, 총무, 안전, 리더십.
말 그대로 조직의 혈관 구석구석을 다 경험했고,
나는 거기서 늘 변화와 혁신의 열정으로 뛰었다.
게다가 이 모든 정점에 " 어떻게 하면 국내.해외에서도 통용되는 조화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수 있을까?" .
천착! 27년간 연구해왔다.
한발 더 나아가 상기 경험들을 융합코자 국내 최고 대학의 노사관계학 석사. 박사 과정(수료)도 '내돈내산' 개념으로 열심히 아카데미 공부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은 자꾸 한 부서, 한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든 단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연결하고, 통합하고, 조율하려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그게 업무 경계 침범이었고,
오지랖 넓은 간섭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마치 욕조 안의 물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조 안에 담긴 물은
그 안에선 평온하지만,
조금만 넘치면 타인의 공간을 적시게 된다.
내 열정과 통찰은
욕조의 물처럼 자꾸 넘쳤고,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그 넘치는 물이 다른 사람들의 발을 적시며
그들을 불편하게 했던 건 아닐까?
그러나 문제는
내가 물이 많았던 게 아니라,
욕조의 크기가 나를 담기엔 작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문제를 다면적으로 보고,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해결책을 고민했을 뿐인데,
그 넓은 시야는 때로 위협으로, 간섭으로 보였던 것이다.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조직이 나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조직이라는 구조가 융합형 인재를 포용할 그릇이 아니었던 것.
이제와 돌아보니,
나는 낭중지추(囊中之錐)형 인재였다.
주머니에 넣어둬도 튀어나오는 바늘처럼
내 존재는 조직 안에서 조용히 숨겨질 수 없었고,
그게 때로는 나를 빛나게도,
때로는 불편하게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조직이라는 욕조에 담겨 있지 않다.
이제는
욕조를 넘은 물처럼,
경계를 넘은 마음처럼,
나만의 흐름과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시기.
이제는 조직에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내 그릇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오늘 목욕탕에서의 유레카는,
그동안 내 안에 쌓여 있던
감정과 의문들을
조용히 씻어내주는 따뜻한 물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