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의 거리에서, 나만의 등불을 발견하다”
어제 저녁,
같은 시기에 퇴직한 동료와 술 한잔을 나눈 뒤
서울 테헤란로를 걸었다.
선릉역에서 시작해 역삼역을 지나 강남역까지—
야경은 여전히 화려했고,
수많은 고층 빌딩들이 하얗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은 마치
도시의 심장처럼 살아 있었고,
그 안을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맴도는 무언의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우리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불나방이구나.”
불나방.
불빛이 생명의 방향인 줄 알고
그 열기가 치명적인 줄도 모른 채
무조건 날아드는 곤충.
그 끝이 파멸인지도 모른 채
“저기만 닿으면 살 것 같다”는 본능으로
불빛 속으로 몸을 던진다.
사람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랬다.
팀장,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까지
그 길의 끝에 내가 있을 거라 믿으며
불빛의 핵심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대기업이라는 조직 안에서 우리는
불빛을 향한 경쟁 속에서,
내 존재를 증명하려 애썼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 자리까지 가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걸.
그 구조가 얼마나 협소하고 불확실한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희망 고문’을 걸며
또 한 해를 버텨냈고, 또 하나의 프로젝트에 몸을 던졌다.
그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성과급이라는 연료,
승진이라는 불쏘시개,
복지와 사내 문화라는 장식불.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계속 불빛 근처에 머물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몰랐다.
내가 지금 불을 향해 날아드는 건지,
불 안에서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는 건지.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불빛을 밖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다.
처음으로, 거리에서.
그 순간
불빛은 더 이상 나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너는 이제,
나를 좇는 삶에서
너만의 불빛을 켜는 삶으로 가야 할 때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이제 나는 등불을 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을 태우지 않고,
지친 이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온기로,
내가 걸어온 시간과 이야기가
누군가의 밤길을 비춰주는 불빛이 되도록.
불나방은 끝을 모른 채
불을 향해 달려든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불에서 한 발 물러나
불빛이 아닌 의미를 향해 살아가기로 한다.
그것이
나의 인생 3막,
그리고 내가 켜고 싶은 삶의 불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