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용기, 침묵할 지혜 – 그 사이에 선 나”
요즘은 자주 카페를 찾는다.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넘기거나
잠시 머리를 식히는 이 시간이 나름 소중하다.
그런데 며칠 전, 한 가지 경험이 나를 멈춰 세웠다.
내 옆 테이블엔 60대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 몇 분이 앉아 계셨다.
그분들의 대화는 커피보다 진하고, 음악보다도 더 컸다.
농담과 과시, 언성이 섞여
카페 전체가 그들의 이야기로 잠식되었다.
“조용히 말씀 좀 해달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이어폰을 끼고 참을까…”
그 작은 갈등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어릴 적에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았는데 난 회사를 다니면서 뭔가 잘못된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향이 되어 버린것 같다
회사에서도, 심지어 일상에서도
불합리하거나 무례한 장면을 보면 자꾸 신경이 거슬린다.
27년간의 직장 생활에서도 변화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것은 바꾸어 보려는
나는 그런 성향으로 살아왔다.
누군가는 “원칙적이다”라고 했고,
누군가는 “유난스럽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건 옳지 않다”고 느껴질 때
말하고, 고치고, 바꾸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즘,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5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젠 좀 둥글둥글해질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의 나이와 위치에선,
말하기보다 조용히 넘기는 게 더 지혜로운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편한 행동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무례한 장면을 보면 속이 답답하다.
그 감정은
나의 성격이라기보다
나의 정체성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에
앞장서서 외쳐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는 알고 있다.
말은 때로 사람을 바꾸지만,
침묵은 관계를 지킨다.
그래서 나는
“언제 말할 것인가, 언제 침묵할 것인가”의
경계에서
내 마음의 무게와 상대의 상황을 함께 저울질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0대의 열정은 밀어붙였고,
40대의 추진력은 끌고 갔으며,
50대의 품격은 말의 깊이로 남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성격을 다듬는 방식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나는 이제,
그 다듬는 시간 속에 있다.
오늘 카페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안에서
나는 또 한 번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앞으로 나는,
말할 때는 예의 있게,
침묵할 때는 의식 있게,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 살고 싶다.
“말은 삶의 경계를 긋고,
침묵은 삶의 깊이를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내가,
조금 더 따뜻해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