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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노트 24.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알아가기.

“말하지 못한 순간,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다”

by 사무엘


2025년 4월 , 비 오는 날


오늘은 하루 종일

잔잔한 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엔

내 마음 안에 묻혀 있던 작은 파편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것 같다.


오후엔 평소처럼 골프 연습장에 들렀고,

운동을 마치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아주 작은 장면 하나가

내 안의 어떤 질문을 크게 울려주었다.


샤워장에 70~80대로 보이는 어르신이 들어오셨다.

그런데 아무런 샤워도 없이,

그냥 탕 안으로 곧장 들어가셨다.


나는 순간

작게 얼어붙었다.


“이걸 말해야 할까?”

“그냥 눈감고 넘어가야 하나?”


아이들이었다면

나는 정중하게 말했을 것이다.

“먼저 씻고 들어가자고.”

하지만 연세 많은 어르신에게는

그 말 한마디가

왠지 무례하게 느껴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찜찜함은

샤워실을 나와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분은,

평생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어릴 적부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지금도 아무 의식 없이 몰상식한 행동을 반복하고 계신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누군가가 정중히, 조용히

한 번쯤 이야기해주었다면

그분의 습관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상대가 불편할까 봐,

분위기를 깨트릴까 봐

정중한 침묵을 선택하지만

그 침묵이 때로는

한 사람의 품격을 세울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까.


그날 나는,

그런 경계선 위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 혼자 조용히 돌아서는 선택을 했다.


그 순간은 지나갔지만,

나는 그 장면을 통해 다시금

나 자신의 본성과 일관된 삶의 태도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불합리한 상황을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사람.

그게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왜 그래야 하죠?”라고 묻고,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라고 행동하려는 사람.


회사에서의 지난 27년,

나는 수많은 현장을 다니며

때로는 공장의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았고,

때로는 리더십의 부족을 메우려 했고,

때로는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질문을 먼저 던지곤 했다.


그것이 조직 내에서는

때때로 불편한 사람으로,

조용히 튀는 사람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이 나의 진심이자, 나의 존재 방식이었다고 믿는다.


오늘 목욕탕에서 말하지 못했던 한마디.

그 침묵은 찜찜함으로 남았지만,

그 침묵이 내 안에 남긴 질문과 성찰은,

오히려 내 삶의 방향성을 더 분명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나는

무례하지 않게, 그러나 용기 있게

삶의 품격을 지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위해서도,

또 누군가를 위해서도.


“말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침묵은 때때로, 그 시작을 유예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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