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함께 오르며, 인생의 길도 함께 그려보다”
오늘은 오랜만에 날씨가 맑았다.
햇살도, 바람도, 구름도 우리를 산으로 부르는 듯했다.
아내와 함께 집 근처 500미터 남짓한 산을 올랐다.
올라가는 데 두 시간,
내려오는 데 한 시간.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산행 속에서
나는 아내와 나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 걸었다.
이번 퇴직은
나에게도 충격이었지만
곁에 있던 아내에게는
더 크고 복잡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겠지만,
산길을 오르며 그녀는
천천히 조용히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주었다.
“당신이 그 회사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이렇게 갑자기 멈추게 된 게 나도 참 허무하고 마음이 복잡했어….
이렇게 일찍 퇴직할 줄은 상상 자체를 해보지 않았어.
내가 생각하는 노후 계획에 매우 큰 차질이 생겼네.”
나는 그 말이
산속 바람처럼 조용히, 그러나 깊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도 말문을 열었다.
퇴직 후 느낀 아쉬움과 서글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꿈들.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르면 숨이 차고,
내려오면 무릎이 아프다.
하지만 그 모든 길은 결국
어디로든 데려다주는 길이다.
내 인생도 그랬다.
직장이라는 산을 오르고,
27년을 거침없이 달려왔고,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내려와야 했다.
그 내려오는 과정은
서글픔도 있었고, 섭섭함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여기서 끝인가?" 하는
조용한 불안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내와 함께 다시 산을 오르며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나는, 또 다른 산을 오르려는 길목에 서 있다.”
그 길은 조금 낯설고,
이정표도 희미하지만,
내 옆에 동행자가 있고,
그녀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반쯤은 오른 셈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걸
한번 제대로 시작해봐요.
나도 응원할게요.
그리고 우리 같이 잘 살아봐요.”
그 말은
한줄기 봄 햇살처럼 가슴을 데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용기’라는 이름의 지지였다.
오늘의 산행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함께 걸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여정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인생 3막의 오름길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작게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산은 높아서 두려운 게 아니라,
올라가는 동안 혼자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오늘 나는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두 번째 산을 향해 발을 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