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서 멈췄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되는가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프랑스 소설가)
퇴직한지 어언 1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힘들다.
한달이 지난후부터의 내 감정을 정리해 보았다.
2025년 3월, 나는 인생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27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그것도 예상치 못한 비자발적 퇴직으로 떠났다.
준비된 이별도 아니었고, 내가 먼저 선택한 계절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씁쓸했고, 허탈했고, 무엇보다도 내 안에 묻혀 있던 질문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여기서 멈추었을까?”
“그리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할까?”
많은 이들이 말한다.
“당신은 충분히 성공했어요. 대기업 임원까지 하고, 27년을 성실히 일했잖아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 질문이 생긴다.
이제 남은 30여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단순히 다음 회사에 다시 들어가 일할 것인가?
아니면 이 시간을 내 삶의 ‘후반전’이 아닌 ‘재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가?
나는 노사관계 분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고,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천착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늘 바쁘고 치열했던 현실 속에서
논문은 항상 '나중에'의 목록에만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나중'이 바로 지금 내 앞에 도착한 것 같다.
박사학위 마감 시한은 2029년.
지금 이 1~2년을 나 자신과, 나의 사유와, 나의 글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나는 단순한 ‘수료자’가 아니라
지식을 실천하고 전하는 사람,
강의하고, 책을 쓰고,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들.
“지금은 불안정한 시기인데 너무 이상만 좇는 건 아닐까?”
“당장 경제적 기반은 어떻게 하지?”
이런 현실적인 걱정은 때로 나의 ‘비전’을 향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다시 프루스트의 말을 떠올린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이다.”
이제는 외부의 지도를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지도를 그리는 삶을 시작해야 할 시기다.
지금 이 글은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다.
이건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이고,
그 질문에 답하며 다시 써내려가는 삶의 문장이다.
나는 지금
‘해야 하는 삶’에서
‘하고 싶은 삶’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방향을 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