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레시피가 있다면"
오늘은 조금 색다른 하루였다.
퇴직 임원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요리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평생 ‘요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멀리서 바라본 사람이다.
집에서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늘 해줬고,
회사에서는 회식이나 구내식당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먹는 일은
라면, 김치볶음 같은 단순한 요리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요리 실습은
단순한 체험이라기보다
내 일상에서 비워져 있던 한 공간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닭도리탕과 소고기 장조림.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재료 손질, 양념 계량, 불 조절, 시간 맞추기…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며
문득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레시피 아닌가?”
모두가 같은 재료를 받았고,
같은 설명을 들으며,
같은 시간 안에 요리를 완성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결과물은 대부분
비슷한 모양과 맛으로 나왔다.
그건 뛰어난 강사의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레시피라는 명확한 매뉴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요리뿐 아니라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늘 더 나은 삶, 성공적인 인생,
행복한 방향을 꿈꾸면서
그에 맞는 결과를 원한다.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레시피 즉, ‘나만의 방식’은
과연 얼마나 명확하게 갖고 있을까?
닭도리탕을 만들면서
나는 나의 지난 인생 2막을 떠올렸다.
뜨겁고 빠르고, 간이 배도록 푹 끓이는 시간들.
조금만 방심해도 타버릴 것 같은
치열한 직장 생활 속에서
나는 열정과 의무로 자신을 조리해왔다.
그리고
소고기 장조림을 만들며
인생 3막을 상상했다.
좀 더 부드럽고 단단한 맛,
오래도록 곁에 둘 수 있는
천천히 깊어지는 삶의 감각.
그렇다면 나는,
내 삶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남이 써준 방식대로 살아온 건 아닐까?
직장에서 주어진 미션,
사회가 정해준 역할,
제도 안의 성공 공식을 따르며
그저 하루하루를 끓여온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생각해본다.
나만의 인생 레시피는 무엇이어야 할까.
어떤 재료로 나를 채우고,
어떤 불의 온도로 나를 익혀야
지금보다 더 나다운 맛을 낼 수 있을까.
내가 잘 알고 있는 향신료는 무엇이고,
버려야 할 자극적인 양념은 또 무엇일까.
요리책은 따라 쓰면 그 맛이 나온다.
하지만 인생은 다르다.
그렇기에 더더욱
스스로 써야 할 레시피가 필요하다.
남이 만든 성공 공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맛이 사라진다.
이제부터는
나라는 사람의 손맛으로,
삶의 간을 직접 보며
조금씩 조절해가야 할 때다.
오늘의 요리는,
단지 밥 한 끼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묻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나는
내 안의 재료를 모으고,
내 리듬대로 불을 올리고,
나만의 맛을 써 내려갈 것이다.
이제,
나만의 레시피를 써 내려갈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