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를 이해하게 만드는 가장 조용한 도구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남아, 나중에 더 추한 방식으로 튀어나온다.”
—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퇴직 후 50일이 다되어 간다.
마음노트를 시작한 것도, 감정노트를 쓰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 어떤 이성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라
마음 안쪽 깊은 곳에서 꿈틀대던 감정 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처음엔 그냥 ‘써보자’였다.
그러다 점점,
글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었고,
생각을 꿰어주는 바늘이 되었고,
흩어진 감정을 정리하는 선반이 되었다.
융은 말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언젠가
다른 형태로, 다른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오고
나조차 당황하게 만든다.
억눌러두고 참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왔지만,
그 미덕은 때로
내 안의 감정을 부정하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제라도 솔직해지려 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알게 됐다.
나의 감정은 고작 한두 개가 아니라
섭섭함, 분노, 기대, 회복, 후회, 그리고 희망까지
이해와 정리, 사유와 통찰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내 감정은 이제 ‘무의식의 덩어리’가 아니라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조각들’이 되어가고 있다.
감정은 쓰는 순간,
이름을 갖는다.
이름을 가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집어삼키지 않는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다듬는 순간,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