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노트 6. 골프에서 배운 인생의 전환점

이탈자가 아닌 전환자로서, 후반 9홀을 시작하며

by 사무엘


퇴직후 2개월만에 옛 회사 임원들과 골프 라운딩을 함께했다.

서로 다른 부서에 있어도, 눈빛만 봐도 통했던 동료들.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하고, 회의실에서 전략을 설계하기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카트를 타고 코스를 돌며 웃고 대화하는 그 순간은 마치 다시 회사에 몸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런데… 짧은 순간, 마음속에서 어떤 자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나는 이제 저 안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회의 이야기, 다음 인사이동, 경영실적 이야기 속에

내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는 사실이 문득 실감되었다.

그 자각은 약간의 씁쓸함을 동반했다.

나는 본궤도로부터 이탈자가 된 걸까?


하지만 흥미롭게도,

18홀 경기가 중반을 넘기고 페어웨이를 따라 걷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내 마음속 풍경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탈자라는 표현보다 더 적확한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전환자’였다. 그것도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피동적으로 시작 되었으나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전환자.


그들은 여전히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이제 그 시스템을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게임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동안 회사 안에서 ‘언젠가 해야지’ 하며 미뤄왔던 것들,

책으로 정리하려 했던 자료들, 강의로 풀어내고 싶었던 통찰들…

이제는 더 이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지 않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세상 밖으로 펼치고 있다.


돌아보면,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결코 꺼내지 못했을 귀중한 것들이었다.

보고서로는 표현되지 않던 경험들,

숱한 현장의 갈등과 타협에서 쌓인 감각들,

리더십의 이면에서 배운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27년 동안 온몸으로 체득한 암묵지(隱れた知識).

이제 그 모든 것이 내 인생 3막의 자산이자 콘텐츠가 되어가고 있다.


골프와 인생은 참 닮았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다 알 수 없는 세계.

한 번의 실수로 벙커에 빠질 수도 있지만,

다음 홀에서 회복할 기회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수가 아니라 리듬이다.

자신의 템포를 잃지 않고, 흐름을 유지하는 것.

이제 나는 누구의 템포에 맞출 필요 없이

내 인생의 리듬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골퍼이자 사람이 되었다.


이번 라운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과거를 완전히 끊어낸 것도 아니고, 미래로 무작정 도약한 것도 아니다.

그저 조용히, 자연스럽게

나의 자리를, 나의 역할을 다시 설정한 시간이었다.


그 날의 마지막 퍼팅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를 나서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그래, 나 지금 참 잘 가고 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진짜 시작이다.”


적어도 나에게 퇴직은 멈춤이 아니라, 인생의 암묵지를 세상에 꺼내는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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