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노트 8. 에스프레소 vs 아메리카노

밀라노의 커피 잔에서 마주한 나 – 에스프레소로 시작된 오해와 통찰

by 사무엘


처음엔 그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것이었다.

“Hot Americano, please.”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것은…

작고 깊은 잔, 진한 갈색의 액체 한 모금.


에스프레소.

당황스러웠다. ‘이게 내 주문인가?’ 싶다가 곁에 조용히 놓인 하얀 물병을 보고야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아… 알아서 부어 마시는 거구나.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그게 아메리카노지.”


주문과 결과 사이의 어긋남.

문화의 차이, 혹은 내가 낯선 세계에 들어왔다는 증거.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불일치가 내 하루를 무척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낯설고, 그래서 선명한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커피숍,

사람들이 오가고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가 바쁘게 들리는 그곳에서 나는 커피잔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실수로 건네받은 커피였지만,

그 안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한 모금의 여유가 들어 있었다.

강하고 짧은 맛.

어쩌면 내 지난 삶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살았고, 강하게 버텼고, 하지만 그래서 놓친 것들도 많았다.


에스프레소 한 잔, 나를 천천히 마시게 하다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으며,

나는 내 커피를 '아메리카노화'했다.

그 과정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그렇다.

처음에는 다소 강하고 거칠 수 있지만,

경험이라는 물을 부으며 점점 부드러워진다.”


지금 나는 인생의 에스프레소를 지나

천천히 나만의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중이다.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하고, 더 오래 음미할 수 있는 삶을.


혼자지만, 나와 함께 있는 시간

이탈리아 중심가에서 커피잔 앞에 앉아 있는 나.

지금 이 순간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내 안의 고요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누가 보면 그냥 커피 한 잔일지 몰라도,

나는 지금 나라는 존재를

다시 우려내고, 다시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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