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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 회고록 Feb 21. 2024

625전쟁 ③

할아버지 회고록 24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625전쟁 ③①ㅇ①




그들은 반드시 보복을 한다. 그날로 진지 임무교대를 했다. 우리는 임무를 인계하고 철수했다. 따발총 9정 중 7정만 보고 후송하고 2정은 중대에 은닉보관했다. 소총병들은 무공훈장이 신청됐다. 하지만 나는 통신병이라 비전투원이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그때 고참만 됐더라면 억지를 써서라도 신청자 명단에 포함시켰을 텐데. 약간의 서운함은 있었지만 탐이 나거나 미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보다 생명이 더 귀중하다. 다음날 경향신문이 특별배달되었다. 전과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기사에는 중공군 2개 중대의 공격을 1개 소대가 격퇴섬멸시켰다고 되어있었다. 사실은 우측 1개분대가 교전했고 좌측분대는 접적 하지 않고 엄호사격만 했다. 1~2개 소대가 공격해 왔을 것이다. 지형상으로도 많은 병력이 공격할 범위가 못된다. 항시 전황은 아군에게는 유리하게 적에게는 불리하게 보도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 무렵(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주야간 10일간의 계속된 교전으로 무려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고 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가히 짐작할만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기어이 보복을 해왔다. 오후 늦게부터 간간히 포탄이 그 전초 진지에 날아왔다. 기점사격을 해보는 것이다. 기점사격이란 야간에는 목표지점이 육안으로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사격지점을 관측해 놓는 것을 말한다. 해가질 무렵부터 차츰 더 많은 양의 포탄이 떨어졌다. 밤 9시경이 되니 맹렬한 포격이 점차적으로 증가했다. 선제사격으로 우리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탄착지점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다. 그 뒤에는 중공군이 필시 전진해오고 있을 것이다. 아군의 지원사격이 개시됐다. 사단 주화력인 105,155mm포와 61,81mm 박격포와 인접부대의 기관포사격, 아군이 쏘아 올린 조명탄이 대낮과 같이 밝았다. 피아간에 먹느냐 먹히느냐의 치열한 공방전이다. 나는 중대 OP에서 전초 진지의 상황보고를 받아 중대장에게 보고한다. 갑자기 통신이 두절되고 총격전도 멈춘다. 이상하다. 두절된 통신은 교신이 되지 않는다.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밤에는 중대 OP에서 전초 진지까지 육성이 들리는 거리다. 그렇다고 야간에 소리 내어 부를 수도 없고 안타깝다. 조금 있으니 다른 전초 진지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적 중공군에 기습점령 당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젯밤 적 중공군을 격퇴시킨 바로 그 능선고지(일명 독립봉이라 칭했다) 지금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완전점령 당한 것이다. 아군의 직사포와 곡사포, 그리고 기관총 등 전 화력이 집중사격으로 섬멸작전이 개시되었다. 하늘은 조명탄으로 대낮과 같이 밝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포성도 멈추고 조명탄의 불도 꺼지고 사방이 조용하다. 다만 달빛만이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밝아있을 뿐이다. 다행히 아군의 피해는 없었다. 적의 피해도 없었던 것 같다. 피아가 철수, 무인지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아군의 병력이 진출해 들어갔다. 통신망을 구성하기 위해 파괴된 전화선을 다시 가설해야 했다. 선발대와 함께 내가 전화선을 메고 따라갔다.


선을 연결시키고 전화선을 풀며 가설해 가면서 뒤따라 계곡을 내려갔다. 희미한 달밤인데 계곡으로 내려가니 나무숲이 우거져 칠흑과 같다. 앞에 가는 사람만 믿고 발자국소리만 듣고 따라 내려갔다. 어느 지점에 가서는 우측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만 앞사람을 놓쳐버렸다. 무심코 골짝 밑으로만 내려간다. 아뿔싸 앞에 가는 사람을 잃어버렸다. 앞을 내려다보니 적지다. 머리끝이 솟구쳐 올랐다. 이것이 진퇴양난이라는 것인가. 겁이 났다. 다급한 나머지 길옆 수풀 속으로 숨었다. 그 순간 적의 박격포탄이 날아왔다.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로 방향을 알 수가 있다. 슛, 슛, 슛 하는 소리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온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죽었다. WIRE통을 메고 앉아있으니 일어설 수도 없고 피할 방법이 없다. 바로 내 옆 불과 1m 정도 떨어진 곳에 포탄이 떨어졌다. 퍽 하고 땅에 박혔다. 아찔했다. 죽었다는 생각도 가질 여유도 없었다. 퍽 하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불발이다. 살았다. 이것이 아마도 천명이라는 것일까. "주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라 나 같은 자에게도 훗날에 쓰시고자 보호하신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두 번째의 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 목석과 같이 그대로 앉아있었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위쪽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지가 가까우니 아주 작은 소리로. 이젠 살았다, 반가워서 WIRE통을 멘 채 뛰쳐나갔다. 그들은 가다가 내가 따라오지 않아 뒤돌아 전화선을 따라 내려온 것이다. 다시 그들의 뒤를 따라 선을 가설해 가면서 전초에 도착했다. 중대본부와 통화를 하고 전초부대에 인계하고 날이 새기 전에 중대본부로 돌아왔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생과 사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사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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