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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 회고록 Feb 24. 2024

625전쟁 ⑥

할아버지 회고록 27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625전쟁 ⑥



 전초 진지에(독립봉) 배치 방어하던 1대대가 중공군의 공격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대대장이 전사하고 우리 3대대 부대대장이 대위인데 소령진급과 동시에 임시중령 계급을 달고 1 대대장으로 가고 우리 대대는 선임대위인 중화기 중대장이 겸임하게 됐다. 그즈음 휴전은 합의했지만 쌍방 간 협정서에 조인 서명만이 남아있던 때라 쌍방 최후의 발악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지형적으로도 더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기 위해서 발악적인 치열한 전투가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어둠이 땅거미 칠 무렵 신병보충병이 약 200명가량이 우리 대대에 도착했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철모는 썼지만 탄띠도 없고 다만 M1소총과 실탄두줄 그리고 모포한장이 고작이다. 전지로 가는 병사라 죽을지도 모르는 것, 장비의 손실을 적게 하기 위함인지는 모르지만 단순했다. 노무자가 저녁식사를 운반해 왔다. 주먹밥이다. 신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빨리 식사를 마치게 하고 전방으로 투입준비를 했다. 전방고지에 중대병력이 배치되어 있는데 전투손실로 병력이 부족해 그를 보충하기 위해 신병을 투입하는 것이다. 인솔지휘관으로 중위가 차출되어 왔다. 야음을 이용해서 투입된다. 통신병으로 내가 따라가게 됐다. 밤이 되니 비가 내린다. 신병들은 훈련소에서 이제 막 온 병사라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가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어차피 가야 할 것 인솔지휘관이 선두에 서서 고지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앞사람만 보고 따라간다. 나와 연락병과 후미에 따라갔다. 골짜기를 내려가 전방고지 하단으로 해서 서서히 진출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적의 박격포탄이 날아와 이동해 가는 우리에게 포격을 하는 것이다. 이동해 가는 병력은 여기저기 흩어져버렸다. 나와 연락병은 바위밑으로 피했다. 적이 우리 병력이 이동하는 것을 탐지한 것 같다. 섬광이 번쩍번쩍하니 신병들 공포에 질렸겠지. 어데가 숨었는지 꼼짝하지 않는다. 선임병들이 중간중간에 몇 명 따라갔는데 그들이 낮은 소리로 신병들을 부르고 있다. 포격은 멈추었다. 그리고 병력은 또 이동해 진출했다. 날이 샐 무렵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바위틈에 숨었다. 일어나면서 땅에다 손을 댔더니 뭉클하게 닿는 것이 있었다. 보니 죽은 병사의 시체를 짚은 것이다. 오싹 머리털이 솟구친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다.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던 시체들이라. 전지에서는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포탄이나 총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밤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언제 나를 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200명가량 됐던 병력은 불과 수십 명만이 따라왔다. 다 죽었을까. 있는 병력만을 인계하고 우리는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날이 밝으니 갈 수가 없다. 적으로부터 노출되기 때문에 밤이 될 때까지 적당한 곳에 숨어있어야 했다. 그 고지가 아군이 점령했던 곳인데 중공군에 밀려 후사면 7,8부 능선에 배치하고 있다. 주간에는 아군의 포 지원사격과 폭격으로 고지정상에 올라가 배치(점령)하고 있다가 밤이 되면 그들의 공격에 밀려 중간능선까지 밀려내려 온다. 적도 그 밑에까지는 밀고 오지 않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단다. 주간에 정상까지 올라갔던 병력이 밤이 되어 적군에 밀려 내려왔는데 병사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단다. 어쩔 수 없이 실종으로 보고처리됐다. 며칠 후에 다른 때와 같이 낮에 정상을 점령했는데 그 넘어 파인곳에서 인기척이 나서 소대향도가 용기를 내어 포복을 해 접근하고 보니 실종된 그 병사가 부상당한 채 있었단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병사들을 몇 명 데리고 가서 구출해 왔다. 그 병사의 말에 의하면 포탄에 부상당하고 꼼짝 못 하고 쓰러져 있었는데 아군은 철수하고 중공군이 그곳을 점령했다. 중공군 병사가 신음하는 병사의 소리를 듣고 접근해 왔단다. 부상자임을 알고 위생병을 불러와 치료를 해 주었단다. 그리고 음식도 가져다 먹여주고 날이 새면 그들은 부상한 그를 그곳에 그대로 두고 철수, 밤이 되면 와서 치료와 음식을 먹여주곤 했단다. 그러던 차에 이틀이 지나고 아군에 발견되어 구출된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생각했다. 만약 중공군이 아닌 북 괴뢰군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살해했을까, 포로로 잡혀갔을까, 아니면 중공군 병사와 같이 인도적으로 치료를 해 주었을까. 어쨌든 살아왔으니 천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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